[삶의 향기-전정희] 화투짝 찾아주는 목사님 기사의 사진
‘고스톱 칠 때 짝 안 맞으면 전화하세요’ 김선주 목사(충북 영동 물한계곡교회) 올림.

이 무슨 소립니까. 산골교회 목사님이 쓴 ‘이럴 때 교회에 전화하세요’라는 10개항 인쇄물 중 하나입니다.

물한계곡교회가 있는 마을은 주민이 고작 80여명입니다. 팔순 전후의 노인이 대부분이죠. 그런데도 20명 가까이 교회에 출석합니다. 김 목사에게 고령화된 마을 주민은 돌봄 대상입니다. 그는 2011년 전도사로 부임했습니다. 9개항은 이렇습니다.

‘보일러가 고장 나면 전화합니다’ ‘텔레비전이 안 나오면 전화합니다’ ‘냉장고, 전기가 고장 나면 전화합니다’ ‘휴대전화나 집전화가 안 되면 전화합니다’ ‘무거운 것을 들거나 힘쓸 일이 있으면 전화합니다’ ‘농번기에 일손을 못 구할 때 전화합니다’ ‘마음이 슬프거나 괴로울 때 도움을 청합니다’ ‘몸이 아프면 이것저것 생각 말고 바로 전화합니다’ ‘갑자기 병원에 갈 일이 생겼을 때 전화합니다’

이 정도면 한마을에 사는 큰아들과 다름없습니다. ‘마음이 슬프거나 괴로울 때’ ‘몸이 아프면 이것저것 생각 말고’라는 항목은 왠지 애잔하고 더없이 감사하게 느껴집니다.

날 때가 있고 죽을 때(전 3:2)가 있는 인생인데 그 인생의 생명나무를 지키는 목자의 따뜻한 사랑이 느껴집니다. 출향한 자식들은 고향 부모가 우울증 있는지도 모르죠. 부모님은 아파도 ‘이것저것’ 생각하느라 중병 키우시잖아요.

김 목사는 고스톱 짝을 찾아줄 뿐만 아니라 생일 맞은 어르신들에게 파티 고깔모자도 쓰게 해드리는 분입니다. 어르신들은 “아이고 목사님, 남세스럽게…” 하며 손사래를 치지만 정작 얼굴은 환하시죠. 태어나 처음, 고깔모자를 써봤다며 즐거워하시죠.

복음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걸리더라도 늘 함께해야 한다는 게 김 목사의 목회 철학이죠.

이와 달리 도시의 수많은 교회는 공교회로서의 역할을 잊어버린 듯합니다. 가정 폭력, 자살 등과 같은 극한의 상황에 직면한 피난센터로서의 교회, 심리 및 신앙상담을 위한 변화와 치유센터로서의 교회, 양심과 평화를 지키는 성소로서의 교회 역할 말입니다.

필자는 지난 수년간 ‘아름다운 교회길’ ‘한국의 성읍교회’ 등의 취재를 위해 전국 교회에 전화 섭외를 시도했습니다. 한데 10통 중 8통화는 먹통이었죠. 신호가 가도 받지 않습니다.

휴대전화 있지 않으냐고 하겠지만 그건 교인 커뮤니티에 속한 사람들 얘기입니다. 긴급 피난이나 신앙상담을 원하는 이들은 어쩌란 말인가요. 정치·사회적 문제로 쫓기는 이들은 왜 명동성당이나 조계사는 찾아도 교회를 찾지 않을까요.

최근 후배 기자가 퇴근길 묵상을 위해 십자가 불빛을 보고 아무 교회나 찾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인근 교회 모두 굳게 문이 닫혀 있었죠. 어렵게 들어간 교회조차도 밤 10시 넘어선 있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교회가 잃을 것이 많은가 봅니다.

우리 사회의 분노조절 장애환자가 5년간 30% 늘었습니다. 불공정한 데서 오는 피해의식이 원인인 경우가 많죠. 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자살률이 10년째 1위입니다. 누군가 나를 숨차게 한다며 ‘데이트 폭력’ ‘층간 소음 살인’ ‘보복운전’ ‘자녀동반 자살’ 등이 끊이질 않습니다.

교회는 이제 닫힌 문을 열어야 합니다. 잃을 것이 없도록 비워야 하고, 잃더라도 억울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김 목사님처럼 외로운 어르신들을 위해 언제든 화투짝 찾으러 달려 가주어야 합니다.

슬픔이 꾸역꾸역 올라오던 제 청년 시절. 돼지저금통 뜯어 10원짜리 한 움큼씩 나눠주며 청년부원들과 고스톱을 치셨던 친구 같았던 목사님이 왜 그러셨는지 이제 알 듯합니다. 숨차게 하는 대한민국에 교회는 영적 피난처가 되어야 합니다.

전정희 종교부장 jhj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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