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재생] 아픈 역사 복원… 비릿한 항구서 ‘시간여행’ 명소로 기사의 사진
21일 군산시 장미동 군산근대역사박물관 옆 건물 옥상에서 내려다 본 근대문화벨트화지역. 왼쪽이 근대역사박물관. 앞쪽으로 옛 미즈상사(카페), 옛 일본 18은행(근대미술관), 옛 조선은행 군산지점(근대건축관) 등이 새단장된 뒤 연이어 들어서 있다(위 사진). 2008년 근대문화벨트화사업이 시작되기 전 장미동 일대 모습(아래 사진). 군산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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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인 지난 19일, 전북 군산시 장미동에 있는 근대역사박물관에는 하루 종일 방문객이 줄을 이었다. 이들은 해양물류역사관과 특별전시관 등을 둘러보며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사진을 찍기도 했다. 이날 하루 박물관을 찾은 이는 모두 4300여명. 이들은 바로 옆 옛 군산세관과 근대미술관(옛 일본 18은행), 근대건축관(옛 조선은행 군산지점) 등을 돌아보며 따사로운 봄볕을 즐겼다. 이 일대는 군산시가 심혈을 기울여 조성한 근대문화벨트화지역이다. 나운동·수송동 등 신시가지 개발로 사람이 빠져나가 침체됐던 이곳은 도심 재생으로 최근 활기가 넘치고 있다.

군산시는 2006년 문동신 시장이 취임한 이후 원도심 살리기에 적극 나섰다. 군산시는 먼저 비릿한 항구 내음이 가득하고 빈 집이 많았던 군산내항 주변을 재개발했다. 이 일대는 1899년 개항 이후 일제강점기 쌀 수탈의 전진기지로 활용됐던 곳으로 아픔의 잔재가 곳곳에 남아 있었다.

군산시는 장미동과 월명동, 영화동, 신흥동 지역에 있는 근대 건축물 등을 활용한 ‘근대문화도시 조성사업’을 시작했다. 군산내항 주변에 근대사를 재조명하는 공간을 만들고 역사 문화가 살아 숨 쉬는 곳으로 변신시키자는 의지였다.

2008년 정부가 주관한 지역문화재생공모사업에 선정된 뒤 이듬해 힘차게 첫 삽을 떴다. 내항 주변 일대 빈집 등을 차례차례 매입한 뒤 그곳에 ‘군산근대역사박물관’을 지었다. 일제때 지어진 5개 건축물은 하나의 문화촌으로 이어졌다.

수탈의 상징이었던 옛 조선은행 군산지점은 근대건축관으로, 옛 일본 제18은행은 근대미술관으로 새단장됐다. 수탈용 쌀 보관 창고였던 대한통운 창고는 장미공연장으로 변했다. 고려때 왜군을 무찔렀던 ‘진포대첩’의 현장인 내항 일대는 진포해양테마공원으로 꾸며졌다.

이들 사업엔 국비 222억원과 시비 399억원 등 모두 709억원이 투입돼 지난해 마무리됐다. 그 사이 군산은 근대역사를 품고 미래와 현재 과거를 오가는 ‘시간여행’의 명소로 자리 잡았다.

처음엔 부담이 컸다. “왜색이 짙다. 아픈 역사를 왜 되살리려고 하느냐”는 지적이었다. 이에 시는 옛 도심 활성화와 더불어 아픈 역사를 재조명해 미래 세대에 교훈이 될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점을 뒀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모토로 건물 내부에 시대상을 알 수 있는 자료와 사진을 꼼꼼히 채우고 태극기를 게시했다. 박물관 주변에는 무궁화나무를 심었다. 근대 건축물 보존과 정비, 기반시설, 지구 경관 정비사업 등에 이어 농특산물 홍보관도 세웠다.

군산시 문화예술계 강희갑(49)씨는 “나라 잃은 아픔의 역사와 오명을 재조명해 근대역사를 체험하는 한편, 수탈의 역사 속에서 항거했던 민족의 혼을 느끼도록 힘을 모았다”고 말했다.

이후 성과는 기대보다 훨씬 컸다. 군산을 찾는 발길이 늘어갔다. 한적했던 동네에 연인은 물론 가족 단위로 걷고 카메라를 들이대는 외지인들이 급증했다. 근대박물관의 유료 관람객만 2013년 22만여 명에서 2년 전 41만 명, 지난해 81만여 명으로 해마다 2배 가까이 늘었다. 입장수입만 10억원에 이르렀다. 박물관을 다녀가지 않은 일반 관광객을 포함하면 200만 명은 거뜬히 넘을 것으로 군산시는 보고 있다.

항구도시, 산업도시로만 알려졌던 군산이 어느새 관광도시로 멋지게 탈바꿈한 것이다. 서울 대방동에서 왔다는 최두준(30)씨는 “군산에 볼 것이 많더라. 일제 때의 건물을 보면 그 상황이 떠올라 안타까웠다. 그러나 역사적인 일들을 되새겨 보는 것도 의미가 있었다”고 말했다.

여기에는 세계 최장(33.9㎞)인 새만금방조제와 풍성한 먹을거리가 한몫했다. 또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 이성당과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의 배경이었던 초원사진관 등으로 이야기가 덧입혀져 외지인들에게 손짓했다. 박물관에서 신흥동 히로쓰 가옥, 국내 유일의 일본식 사찰인 동국사 등이 걸어서 20여 분 거리 이내에 집중해 있는 것도 나들이객에게 호감을 줬다.

2014년에는 이런 열기에 가속도가 붙었다. 군산시가 국토교통부로부터 전국 12개 지역과 함께 ‘도시재생 선도지역’으로 선정된 것이다. ‘내항지구와 연계한 근대역사문화지구 활성화사업’이 펼쳐졌다. 도로와 담장 개선 등은 물론 ‘펀빌리지협동조합(도시민박업)’과 ‘컨츄리맨협동조합(커피전문점)’ 등의 협동조합이 설립되는 등 주민들의 참여도가 높아졌다.

이에 일대 부동산도 들썩이기 시작했다. ㎡당 50만원쯤 하던 땅값은 200만원 선으로 껑충 뛰었다. 월명동 한 상가 주인은 “평당 1000만원, 2000만원으로 오른 전주한옥마을을 보고 ‘우리도 그만큼 오르는 것 아니냐’며 건물을 팔지 않는다”고 귀띔했다.

군산시는 올해부터 5년간 신흥동 일대 1만㎡에 1930년대를 복원한 ‘근대마을’을 만들 계획이다. 또 1960년대 없어진 군산항역(驛)을 복원하고, 폐철도부지를 활용할 방법을 찾고 있다.

군산시 도시재생계 김대영(37)씨는 “현재 생활 터전을 개선하고 보완하는 등 주민 중심의 사업에 중점을 두고 추진되고 있다”며 “옛 도심을 살리고 아픈 역사를 통해 교훈을 일깨우는 작업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중규 군산근대역사박물관장 “기대이상 성과에 깜짝 놀랐죠”

“놀랐어요. 이처럼 빨리 안착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거든요.”

김중규(50) 군산근대역사박물관장은 19일 “박물관 내방객이 해마다 2배 가까이 늘고 있고, 그중 군산시민이 아닌 외지인이 96%에 이른다”고 설명하며 활짝 웃었다.

그가 맡고 있는 근대역사박물관은 군산 도시재생의 첫 터전이자 근대문화도시 조성사업의 산실이다.

김 관장은 2002년 군산시 학예연구사로 공직에 첫발을 내딛었다. 대학에서 역사학을 공부한 뒤 줄곧 고향에서 생활해 왔다. 지역 문화재 업무를 맡다 2008년 ‘근대산업유산 문화예술벨트화 사업 공모’에 실무를 맡아 사업권을 따낸 뒤 줄곧 옛 도심 재생을 위해 일해 왔다.

“지난해 추석 때, 저기 보이는 진포해양테마공원에 간 적이 있어요. 북적이는 사람들을 보고 한 청년이 이렇게 말하더군요. ‘와, 언제부터 군산이 관광도시가 됐지?’라고요. 그 말을 들으니 참 뿌듯했습니다.”

김 관장은 ‘왜 하필 일본 잔재를 보존하려 하느냐’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잘 극복하고 새로운 이정표를 세워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아픈 역사지만 그대로 알려 ‘다시는 나라를 빼앗기면 안된다’는 얘기를 전해주고자 노력했는데 다행히 내방객들도 잘 호응해 주더군요.”

이 박물관은 개관 4년 만인 지난해 전국 5대 박물관으로 선정되는 쾌거를 이뤘다. 김 관장은 “이런 성과는 우리 직원들은 물론 시민들이 애정을 갖고 노력해준 결과”라며 “앞으로 전시와 체험을 강화해 외지인들을 불러들이고, 주민들의 자랑이 되고, 옛 도심을 되살리는 중심지 역할을 탄탄히 해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군산=글·사진 김용권 기자 yg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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