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뷰-김승욱] 공천싸움과 기독 지성인 기사의 사진

이전이미지다음이미지

최악의 공천이라는 20대 국회의원 공천을 보며 “비전(묵시)이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한다”는 잠언(29:18) 말씀이 생각난다. 세계는 한국이 선진국에 들어섰다고 하지만 아무런 철학과 비전 없이 실리를 찾아 이리저리 정당을 옮겨다니는 정치 지도자들을 바라보는 국민의 마음은 참담하다.

북한은 대구경 방사포를 발사하면서 70일 전투니 서울해방작전이니 하면서 위기 상황을 조장하고 있고, 인공지능이 가져올 산업의 지각변동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지 정말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시점이다. 19세기에 사회비평가 매튜 아널드는 도래할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불안을 “하나는 이미 죽었고 다른 하나는 아직 태어날 만큼 힘이 없는, 두 세계에 끼어 있는 처지”라고 표현했다. 이 표현은 지금 한국에 더 잘 어울린다. 북한이 어디로 튈지, 일본과 중국 사이에 낀 한국의 경쟁력은 어떻게 될 것인지, 국민들의 갈등은 어떻게 봉합해야 할 것인지,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깜깜한 암흑 속에 가려져 있다.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저성장 시대의 위험, 머지않아 현실화될 자동주행자동차 등으로 인한 새로운 형태의 실업자 폭발, 고령인구 과잉에 따른 국민적 부담, 생명공학이 야기하는 수많은 윤리도덕적 문제 등은 철학과 비전을 가지지 않으면 도저히 대처할 수 없는 새로운 문제들이다.

죽음 연구의 예를 들어보자. 현대판 에디슨이라고 불리는 레이 커즈와일은 ‘The Singularity is Near(특이점이 온다)’에서 인류가 2045년이 되면 영원불멸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한 공상과학자의 헛소리가 아니다. 이는 타임지(2011년 2월 21일자)에서 커버스토리로 다루었고, 미 항공우주국(나사)과 구글은 싱귤레러티 대학을 세워 그를 초대 총장으로 임명했다. 특히 구글은 생명기술 연구를 위한 칼리코(Calico)라는 연구소를 세워 노화와 죽음 극복에 대한 연구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페이스북, 이베이, 오라클, 넷스케이프 등 실리콘밸리의 기업들은 유전자공학, 생명 연장, 죽음 극복 등에 상당한 연구비를 지원하며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인지혁명, 농업혁명, 과학혁명을 통해 인간은 ‘신이 된 동물’이라고 하며, 머지않아 인류는 생명을 창조하는 신의 영역에 도전한다고 했다.

국민들은 이러한 어려운 문제들에 대해 철학적 입장과 비전을 제시하는 정치 지도자를 기대한다. 그런데 공천 싸움과 패권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국민의 기대와는 멀어도 정말 한참 멀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누구를 탓해야 하나. 성경은 어두워진 세상을 탓하지 말고 빛을 발해야 할 교회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못하는 것을 탓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이러한 정치 위기의 시대에 윤리적으로나 이념적으로 사회를 각성시켜야 할 사명을 지닌 기독교 지도자들은 다 어디에 가 있는가. 오늘날 한국 기독교는 비전을 제시하기는커녕 오히려 스스로를 방어하는 데 급급하다.

종교개혁 당시에도 천년이나 지속되었던 봉건시대가 끝나고 근대라고 하는 새로운 시대가 열리며 국민국가가 형성되고 세속 정부의 권력이 증대되고 있었다. 그런데 당시 교회 지도자들은 세금 면제 혜택을 누리며 대중의 원성을 사고 있으면서도 부패와 무능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를 개혁하기 위해 신학 면에서는 루터가, 교회 예배와 윤리 개혁 분야에서는 칼뱅이 일어났다. 그리고 당시에 급속히 발전한 인쇄술 덕분에 이러한 개혁사상은 신속하게 확산되었다. 로마의 발달한 도로망이 바울의 선교 사역을 가능하게 했듯 성경과 새로운 신학사상을 접하기 어려웠던 시대에 인쇄술 발전은 종교개혁 정신을 급속히 확산시켰다.

오늘날 한국사회를 변화시킬 기독 지성인은 어디에 있는가. 종교개혁 시대의 인쇄술처럼 SNS의 확산으로 바람직한 사상도 빨리 전파될 수 있는 환경이 준비되었다. 신학의 변화가 근대 유럽의 엄청난 변화와 발전을 가져왔듯 오늘날에도 기독 지성인들이 사회의 경종을 울리고 올바른 비전을 제시하면 빠르게 사회로 확산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수단이 발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쟁에 빠져 있는 정치 지도자들에게 올바른 비전을 제시해줄 기독교 지성인은 어디에 있는가. 500년 전 종교개혁 당시처럼 오늘날 한국을 위기에서 구할 비전을 제시하는 기독 지성인의 등장을 고대한다.

김승욱(중앙대 교수·경제학부)

*본 칼럼은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와 함께합니다.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