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이재훈] 규제개혁의 허실 기사의 사진
게임기구에 대한 정부의 제품검사는 사행성이 과도한지, 안전성에 문제는 없는지를 가려내는 게 핵심이다. 그런데도 일선에선 불필요한 검사까지 하는 바람에 제품 출시가 늦어져 중국산 게임기구가 범람하고, 우수한 개발인력은 중국으로 빠져나간다는 얘기를 들었다. 담당기관으로선 할 말이 없지 않겠지만 이런 ‘원성’이 조금이라도 근거가 있다면 바로잡아야 한다. 불합리한 규제로 발생하는 대표적 폐해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규제개혁에 대한 정부의 의지는 과거와는 사뭇 다르다. 규제혁파를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놓고 대통령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그 필요성과 절박성을 강조해 왔다. 그럼에도 국민이 체감할 만큼 진전이 있지 않고 이를 둘러싼 시비도 그칠 줄 모른다. 규제개혁이 제대로 되려면 규제가 왜 생겨났는지부터 살펴봐야 한다.

규제는 우선 관련 법규의 해석이 불명확하거나, 담당자가 그 해석이나 집행을 놓고 일정부분 재량권 행사가 가능할 때 생긴다. 일선기관을 상대하는 민원인들이 자주 부딪히는 경우인데, 담당자의 일처리 자세만 바로잡아도 문제의 소지는 많이 줄어든다. 일이 되도록 관련 규정을 시의에 맞게 개선하려는 적극성까지 있다면 더욱 좋다.

두 번째는 음식점에 대한 위생기준처럼 보건 환경 안전 등 각종 공익목적을 위해 시행하는 규제다. 이 경우 규제목표와 규제강도 사이에 균형을 맞추려는 일관된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 공익목적 달성보다 더 과도한 규제가 나타나거나, 규제완화라는 목표에 치우친 나머지 공익이 훼손돼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원래 시장에 맡겨둬야 하는데 특정 정책목표를 위해 관련 당국이 개입함으로써 발생하는 규제다. 물가관리를 위해 일부 품목의 가격을 점검(통제)하는 경우이다. 저소득층 연료인 연탄요금 규제가 단적인 예다. 저소득층은 정부의 강한 개입을 통해 연탄요금이 가급적 낮게 책정되고 부족분은 재정이든 연탄공급자든 또는 고소득층이 부담하길 원하겠지만, 반대편 당사자들의 입장은 다를 것이다.

끝으로 규제의 이면에 당사자 간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되어 있어 그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규제다. 지난달 규제개혁 차원에서 관련 부처가 발표한 ‘심야 콜버스 허용’ 방침이 결과적으로 기존 사업자들의 이권만 보호하고, 규제완화를 희망했던 신규 사업자들의 진입은 봉쇄했다는 언론 보도가 좋은 예다. 국민경제활동이 다양해질수록 이런 유형의 규제는 많아진다. 규제변경으로 특정집단의 렌트(지대)에 해당됐던 기존 이익이 감소되고 새롭게 이익을 보는 집단이 생겨나 사회적 갈등의 소지가 있는 경우 규제대책은 법 집행기관인 행정부보다는 국민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국회에서 다루는 게 맞다.

어느 정부든 조직, 예산, 법령 등 세 가지 인프라에 의해 작동된다. 그런데 이 인프라들 모두가 규제들이 독버섯처럼 자라날 수 있는 숙주라는 사실을 자주 잊는다. 어떤 조직이든 만들어 놓으면 조직생존을 위한 규제마인드가 생겨나게 마련이다. 여기에 예산이나 법령을 통한 지원조치가 강구되면 그 연장선상에서 많은 규제가 소리 없이 등장한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정부의 지원과 개입이 많아질수록 규제는 늘어난다. 양자는 숙명적인 관계다. 국민 모두가 정부의 지원을 기대하기보다 담당자들이 한 건의 민원이라도 내 형제, 내 부모의 일로 여기도록 하는 참된 공복의 정신을 고취시키는 일이 급선무이다. 나아가 모든 규제 담당 기관들이 높은 수준의 예측 가능성과 전문성을 확보토록 하는 범정부적인 노력이 더 근본적인 처방이라고 본다.

이재훈 한국산업기술대총장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