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순만 칼럼] 문화는 사라지고 전쟁만 벌어진다 기사의 사진
4·13총선을 앞두고 한바탕 패싸움을 벌인 여야 공천과정은 한국 민주정치가 적어도 10년은 후퇴했다는 것을 보여줬다. 새누리당 공천은 권력자에게 밉보인 몇 사람을 찍어내는 문제를 놓고 계파별 병력이 총궐기한 전쟁이었다. 야당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야당에 애정을 보인 흔적이 없는 사람들이 특정 계파를 대신해 제1야당에 들어와 원칙도 밝히지 않은 채 오래된 사람들에게 칼을 들이댔다. 우리 정치에서 선비정신은 사라진 것이다.

이 정부의 문화행정 역시 마찬가지다. 국립중앙박물관(이하 중박)의 예를 들어보자. 중박의 관장은 차관급 임명직이지만 우리나라 역사와 문화의 정수를 지닌 문화유산을 보존·전시하고 교육하는 기관의 수장이라는 점에서 문화계의 대가(大家)에게 맡기는 자리다. 지난 9일 경질된 김영나 전 관장이 최근 청와대와의 갈등 사실을 언론에 폭로했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던 내용이었지만, 김 전 관장이 직접 입을 여는 순간 그가 중박 관장으로서 합당한 자격을 갖고 있었는지를 의심하게 되었다.

고위직 인사들이 단명하는 우리 풍토에서 5년간이나 중박 관장을 지냈고, 고고학이 중시되는 중박에서 현대미술을 전공한 관장이라는 점, 3대째 외부인사 영입으로 박물관 내의 불만이 있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자신의 경질 사유에 대해 입을 다물어야 했을 것이다. 그가 진정 박물관을 지켜야 했다면 소신을 밝히고 사의를 표명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된다.

그렇다고 해서 정부의 처사가 온당하다는 말은 아니다. 김 전 관장이 학자의 양심상 중박에서 프랑스 명품을 전시할 수 없다고 반대를 했다면 이건 전화 한 통으로 자리를 날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찬해야 할 일이다. 프랑스 콜베르재단이 어떤 곳인지는 잘 모르지만, 한 나라의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현재 시판 중인 명품을 전시하겠다고 압력을 넣는 것은 오만을 넘어 문화적으로 파렴치한 행위다. 이런 식으로 중박의 문이 열린다면 국가의 문화적 자존심은 곤두박질치게 될 것이다. 청와대나 정부종합청사에 외국 명품전시장이 들어서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없다.

문제는 문화행정의 인사 난맥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2년 전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경질 이후 문체부 1급 공무원 6명 중 다섯 자리가 교체됐다. 한국의 3대 문화재 중 하나로 꼽히는 반가사유상의 보호를 위해 미국 반출에 반대한 이후 임명 8개월 만에 하차한 변영섭 문화재청장의 경질 사유도 석연치 않다.

영화인들이 전면 보이콧을 선언하면서 올가을 개최가 불투명해진 부산국제영화제는 더 혼란스럽다. 영화 ‘다이빙벨’ 상영을 둘러싼 문제가 오늘 이 마당까지 왔다는 것을 알고 있는 세계 영화계는 앞으로 한국을 문화선진국으로 인정하는 데 인색하게 될 것이다. 그저 그런 영화 하나 상영하는 것이 민간에서 20년간 키워 국제영화계의 샛별로 만든 영화제를 망칠 만한 사안인가. 정부가 영화인들의 버르장머리를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우리 사회에 문화예술의 활기가 시들해지고 있다. 박근혜정부 초기 ‘문화융성’을 국정 4대 기조 중 하나로 설정하고 의욕을 보이던 때와는 아주 다른 분위기다. 가요, 드라마, 영화, 연극, 미술, 출판, 문학 등 문화 전반에 걸쳐 눈에 띄는 성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 ‘한류’라는 말도 옛날이야기처럼 들린다. 정부가 문화예술에 시시콜콜 간섭하고, 문화행정의 난맥상이 거듭되면 꽃은 피어나지 않는다. 문화는 건드리면 시드는 꽃이다.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 모든 선진국이 고수하는 문화행정의 방향이다. 문화예술계에 군기를 잡아서 뭘 하겠다는 것인가. 사회가 각박해지고 대가와 선비들의 전통이 사라질 뿐이다.

임순만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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