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수정] 임신부를 위한 아이스 버킷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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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 대해서는 역지사지가 안 된다. 막연히 짐작은 할 수 있으나 그 고통의 무게, 강도, 크기, 밀도가 실제로 어떠한지는 겪어보지 않는 한 알 수 없다. 아이를 잃은 부모의 비통은 아이를 잃은 부모가 가장 잘 안다. 루게릭병 환자의 고통은 루게릭병 환자만 정확히 알 수 있다. 다른 이들은 얼음이 가득 담긴 바구니를 뒤집어 써보고서야 조금이나마 가늠해 볼 뿐이다.

이 글은 어떤 고통에 대한 기록이다. 고통의 경험을 구구절절 이야기하는 것이 다소 민망하긴 하다. 그럼에도 감행하려는 것은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전하는 위로 차원에서다. 이 고통을 모르는 이들에게 살며시 건네는 얼음 바구니이기도 하다.

이 고통에는 어떤 약도 듣지 않는다. 아니, 약을 쓸 수 없다. 어떤 의사도 비과학적인 대안을 제시할 뿐이다. “시간이 약입니다.” 그저 견뎌내야만 하는 이 고통은 ‘입덧’이다. 보통 임신 5주쯤 시작해 16주 전에 끝난다지만, 출산 직전까지 겪기도 한다. 태아의 신경이 형성되는 임신 초기엔 약을 먹을 수 없다. 과거 입덧을 멎게 하는 약이 개발됐으나 기형아를 유발하는 부작용으로 금지 약물이 됐다.

임신부 80% 정도가 겪는다지만 왜 이런 증상이 나타나는지는 모른다. 태아를 보호하기 위한 방어기제라거나 호르몬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게 뭐든 이론, 가설에 불과하다. 다행히 태아에 악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고 한다.

누구도 ‘내 입덧이 끝나는 시기’를 알 수 없다는 게 불안을 가중시킨다. 임신부들은 ‘출산 직전까지 입덧을 하는 불운한 사람이 나일지 모른다’는 걱정에 휩싸인다. 입덧을 끝내는 물리적 방법이 있긴 하다. 임신 중단 상태에 이르는 것, 뱃속 아이가 생명을 잃는 것이다.

둘째를 가진 내게 두 번째 입덧이 찾아왔다. (아, 여기서 잠깐. 입덧에 대한 기록은 더러움과 불쾌감을 동반해 주의를 요한다.) 입덧은 불현듯 덮쳤다. 세상 모든 냄새가 분연히 일어나 자신의 존재를 알리며 후각 세포를 향해 돌진하는 게 시작이었다. 전엔 느끼지 못했던 온갖 냄새들이 날카롭게 온몸을 헤집어 놓고는 “토할 것 같지?”하고 들볶았다.

나는 울렁거림 때문에 침대에 눕지 못했다. 침대는 한 조각 돛단배, 스프링의 미세한 움직임은 폭풍우 휘몰아치는 바다의 거대한 파도가 됐다. 누워만 있어도 뱃멀미를 하는 거다. 창자가 재배치되는 것을 느꼈다.

누군가는 “30년 된 고물 버스를 거꾸로 타고 24시간 자갈밭을 달리는 기분”이라고도 했다. “그래서 그게 뭔데?”라며 짐작조차 못하겠는 이들에게는 ‘사상 최악의 숙취’를 떠올려보길 권한다. 바로 그거다. 지독한 숙취가 매일 매순간 끝 모르게 지속되는 것이다.

당장 토할 것 같은데 뭘 먹어본 적 있는가. 그것 참 못할 짓이다. 먹으면 토할 것 같거나, 실제로 토하기 때문에 먹는 것 자체가 두렵다. 원치 않는데 살이 쪽쪽 내린다. 물도 못 먹어 탈수, 탈진이 오는 일이 흔하다. 이 경우 포도당 수액을 맞아야 한다. 그러면 먹지도 않은 수액을 토하는 억울한 일을 겪게 된다. ‘가지가지 한다’는 생각이 든다.

가장 힘든 증상 중 하나는 구토다. TV 속 임신한 여성이 식탁 앞에서 “우웁”하는 건 구토가 아니다. 그건 그냥 헛구역질. 구토는 이렇게 하는 거다. “구오어어어억!” “오어어어억!” 목구멍에서 킹콩이라도 토해내듯 격렬한 비명을 동반한다.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구억, 오억을 부르짖은 결과는 대체로 참혹하다. 먹은 게 없는데 토하다보니 침, 위액, 담즙 같은 탁한 액체를 소량 쏟아낼 뿐이다. 세상에, 침을 토한다. 그냥 뱉어내면 되는 것을 온몸을 뒤틀고 끔찍한 소리를 내며 토한다. 위액과 담즙의 쓴맛도 알게 된다. 놀라운 경험이다.

입덧 자체는 병이 아니다. 그런데 부작용으로 병을 얻기도 한다. 변비, 위산과다, 역류성 식도염, 신우신염, 두통, 불면증 등으로 고통 받는 임신부들이 많다. 역류성 식도염이 생긴 한 임신부는 똑바로 누우면 위액이 스멀스멀 올라와 밤마다 앉아서 자야 했다. 나는 첫 아이 때 느꼈던 산통에 버금가는 강도의 속쓰림, 최장 18일 동안 지속된 변비라는 부작용을 겪었다.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젊은 여자가 아침부터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봉지를 들고 토하고 있다면 부디 경멸어린 시선을 거둬주길 바란다. 전날 과도한 음주 탓일지도 모르겠으나, 지독한 입덧 와중에도 출근길에 오른 임신부일지 모르니 말이다. “힘들지?”하고 알아만 줘도 고마운 게 입덧이다.

문수정 문화팀 기자 thursda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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