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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윤중식] 항복하면 행복하다

보릿고개 ‘고상받기’의 추억… 인생 가장 큰 도전은 ‘항복’

[삶의 향기-윤중식] 항복하면 행복하다 기사의 사진
‘우생마사(牛生馬死)’. 헤엄을 잘 치는 말은 물살을 거스르려다 죽고 물살에 편승한 소는 목숨을 건진다는 의미의 사자성어다. 큰 저수지에 말과 소를 동시에 밀어 놓으면 어떻게 될까. 둘 다 헤엄쳐서 땅으로 나오기는 하지만 말이 헤엄치는 속도가 워낙 빨라 소의 2배 속도로 흙을 밟는다.

장마나 홍수로 급류가 생기면 상황이 달라진다. 말은 거센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려고 발버둥 친다. 그러다가 지친 말은 익사한다. 소는 어떨까. 소는 거스르지 않는다. 물살에 몸을 맡겨 강가로 조금씩 다가간다. 거센 물살에 밀려 한참을 떠내려가지만 걱정하지 않는다. 결국은 물가에 닿게 되고,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보릿고개 세대들 기억 속에 ‘고상받기’(항복)라는 놀이가 있다. 들이나 산, 땅바닥에서 힘겨루기를 하는 것인데, 한쪽이 코피가 터지거나 졌다고 항복해야 승부가 끝난다. 놀이가 시작되면 목을 조이거나 배 위에 걸터앉아서 상대방을 초죽음까지 몰고 간다. 초등학교 시절 경북 예천군 지보면 갈동교회 뒷동산은 동네 아이들의 전쟁터였다.

“됐나!” “됐다!” 두 마디가 전부였다. 양편은 만만한 상대를 잡아 상대가 ‘항복할 때까지’ 공격을 멈추지 않는다. 목을 조아 숨을 못 쉬게 하면 십중팔구는 항복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한다. 대부분 자신보다 약한 상대를 잡지만 반대로 ‘센 놈’에게 잡히면 초죽음을 당하기 일쑤였다.

1대 1로 겨루는 적도 간간이 있었다. 상대는 가장 친한 뒷집 친구였다. 그 친구 집은 우리 안방에서 봉창 구멍으로 보면 마루에 앉아서 밥을 먹는 모습이 보일 정도로 가까웠다.

그날 시비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야가, (니를) 이긴다 카더라’가 이유였다. 대뜸 주먹을 휘두른 것이 화근이었다. 마침 들에 가던 그 집 어머니 집사님이 이 광경을 보곤 한걸음에 달려와 뒤엉켜 있는 우리를 떼어놓으려고 안간힘을 쓰셨다. 그만 꼴(소풀)을 담는 다래끼(싸리로 만든 아가리가 좁고 바닥이 넓은 바구니) 틈새로 나온 낫 끝에 팔 알통 부분이 베이고 말았다. 그날 싸움은 뒷집의 승리로 끝났다.

아버지를 닮아 힘이 장사인 한 친구는 지는 것을 유난히 싫어했다. 싸움도 공부도 양보가 없는 친구였다. 그 친구는 자존심이 강해 항복하는 것을 싫어했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붓으로 사군자를 잘 그려 신동으로 불리던 그는 20대 중반을 넘기지 못하고 1987년 강원도 사북탄광 매몰사고로 안타깝게도 요절하고 말았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도전은 ‘항복’이다. 친구 사이에서도 서로가 기꺼이 항복하지 않으면 우정은 지속되지 않는다. 부부 관계도 그렇다. 배우자에게 항복하지 않으면 결혼 생활은 파탄에 이른다. 우리와 주님과의 관계 또한 우리의 전적인 내려놓음이 없이는 회복되기 어렵다. 예수 그리스도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죽음이라는 역경에 직면하셨다. 그는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기꺼이 내려놓으셨다. 그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그리고 우리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치셨다.

부활주일이 지나고 글피면 식목일(5일)이다. 이날은 131년 전 부활주일이다. 미국의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 부부가 이 땅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인천 제물포항에 첫발을 디딘 역사적인 날이다. 기록에 의하면 쌀쌀한 날씨에 비가 흩뿌렸으며 물살이 거칠어 배를 쉽게 대지 못했다. 일행은 당황하지 않고 간절히 기도하며 물결이 잠잠하기만 기다렸다. 마침내 오후 3시쯤 복음의 불모지 조선 땅에 내려 감격의 눈물기도로 복음의 씨를 뿌렸다.

이제 봄이 완연하다. 서울 여의도 윤중로에 벚꽃이 만개하고 있다. 겨울이 봄바람에 항복하지 않으면 꽃은 절대 피지 않는다. 진정으로 승리하는 삶은 십자가 아래에서 항복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약 4:7∼10절)

윤중식 종교기획부 부장 yunj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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