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 삶의 끝을 아름답게 2부 ⑥] 의료화로 ‘늦춰지는’ 죽음… 또 다른 고통의 시작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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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웰다잉, 이제 준비합시다

⑥ 죽을때 비참한 나라


지난달 26일 혈액암 말기환자인 A씨(30)가 서울대병원 내과 중환자실로 급히 실려 왔다. 그는 지난해 여름 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를 계속해 왔지만 최근 급속히 병세가 나빠졌고, 이날 의식을 잃었다. 서둘러 ‘숨길’을 뚫기 위한 ‘기도삽관’을 하고 인공호흡기를 꼈다. 떨어지는 혈압을 올리는 승압제도 계속 투여했다. 혈압을 유지하지 않으면 곧바로 생명이 위험해질 지경이었다. 의료진은 “회생 가능성이 없어 며칠 내 임종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그래도 중환자실에 입원한 이상 치료를 중단할 수는 없다. 가족들도 계속 치료해 주길 바랐다. 다만 승압제 용량을 더 늘리지 않고 혈액투석도 하지 않는 데 동의했다.

무조건 붙잡아야 하나

22개 병상을 갖춘 이 병원 중환자실에는 A씨 같은 말기 환자들이 상당수 입원해 있다. 암 환자 5명을 비롯해 만성신부전과 심부전, 만성폐쇄성폐질환(COPD) 등을 앓는 이들이다. 각종 생명유지 장치에 의지한 채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생의 마지막을 보낸다.

노화경 중환자실 수간호사는 “이들 중에는 임종이 임박했을 때 심폐소생술(CPR)이나 혈액투석을 하지 않겠다는 경우가 더러 있지만 인공호흡기 착용과 승압제·영양제 투여 등은 여전히 많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71세인 한 남성은 뇌출혈로 쓰러진 뒤 의식 없이 ‘지속적 식물인간’ 상태로 2년 넘게 인공호흡기를 낀 채 누워 있다고 노 간호사는 귀띔했다.

암을 비롯한 중증의 만성 질환자들은 대부분 대학병원 등 대형 의료기관에서 치료를 받다 마지막을 맞는다. 적극적 치료가 더 이상 도움이 되지 않는 시점에도 말기 환자들은 집중치료실(중환자실)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요양시설이나 집에서 요양 중이더라도 임종이 가까워지면 병원을 찾아 연명치료를 받는다.

“죽음은 의료 대상이 아니다”

의사들은 회복이 불가능하고 죽음이 임박했다고 판단하는 환자라도, 인공호흡기로 대표되는 최상의 의료기기와 최신 의료기술을 이용해 최대한 죽음의 시간을 늦추려 한다. 환자 가족들은 어떤 경우에도 끝까지 최선을 다해 달라고 요구한다. 이런 현실에서 심리·사회·영적 돌봄 같은 ‘호스피스·완화의료’를 통한 편안하고 인간다운 죽음은 요원하다.

과거 자연적으로 맞이하던 임종은 점점 ‘의료화’되고 있다. 죽음이 임박했다는 명백한 징후 앞에서는 죽음의 ‘자연성’을 받아들이는 것이 순리다. 그럼에도 자연적 죽음을 부정하고 죽음을 ‘의료화’하려고 시도하면서 환자와 가족 모두에게 고통이 시작된다.

서울대의대 윤영호 교수는 4일 “질병은 의료의 대상이지만 죽음 자체는 의료의 대상이 아니다”면서 “의사나 가족 모두 죽음을 정복 대상으로 바라보는 잘못된 시선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역설적이지만 죽음 자체는 의료에서 멀어져야 품위 있게 마지막을 준비하는 ‘웰다잉(Welldying)’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임종 직전 집중되는 의료

과도한 의료화는 죽기 직전에 집중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2010년 암 사망자 7만6574명을 분석한 결과 사망 2주 전까지도 CT·MRI·PET 등 각종 검사와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등 적극적 연명 치료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공호흡기는 사망 3개월 전(896명)에 비해 사망 1개월 전에 12.7배(1만1404명) 많이 쓰였다. 심폐소생술은 3개월 전(99명)보다 무려 59.4배나 많이 이용했다. 중환자실 이용도 사망 3개월 전(2255명)보다 1개월 전에 5.1배(1만1601명) 증가했다. 항암치료는 사망 1개월 전 절반 가까이 줄긴 했지만 여전히 많이 받았다.

말기에 의료비 지출도 급격히 늘어 사망 전 3개월 의료비(7012억원)가 그해 전체 의료비(1조3922억원)의 절반이 넘는 50.4%에 달했다. 특히 죽기 전 2주 동안 CT·MRI·PET 등 검사와 인공호흡기, 심폐소생술, 항암치료, 중환자실·응급실 이용 등에 102억원을 쓴 것으로 집계됐다.

다른 말기 질환의 사망 전 의료이용 실태와 씀씀이도 비슷하다. 국민건강보험정책연구원 최영순 박사팀이 2009년 12월부터 2013년 12월까지 10개 만성질환의 상급종합병원(대형병원)에서의 사망 직전 1인당 건강보험 급여 진료비를 조사한 결과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가 1254만원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만성간경화(1060만원) 만성신부전(1009만원) 뇌졸중(900만원) 울혈성심부전(888만원) 만성폐쇄성폐질환(885만원) 파킨슨병(750만원) 루게릭병(668만원) 치매(600만원) 전신쇠약(600만원) 등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 산하의 연구소(EIU)가 발표한 세계 80개국 대상 ‘죽음의 질’ 평가에서 18위를 차지했다. 영국과 호주가 ‘가장 죽기 좋은 나라’ 1, 2위에 올랐다.

한국은 전반적인 평가 항목에서 양호한 점수를 받았으나 ‘연간 사망자 중 호스피스·완화의료를 받았던 환자 비율’ ‘완화 의료를 제공하려는 의지’ ‘임종 의료비용’ 등 부문은 낮게 평가됐다.

민태원 기자

후원 : 한국언론진흥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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