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김영석] ‘셀프 카피’ 공약만이라도 지켜야 기사의 사진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포기, 무노동 무임금 원칙 적용.” 20대 4·13총선 공약이 아니다. 4년 전 19대 총선 당시 새누리당 공약집 내용이다. ‘정치 선진화로 더 큰 대한민국을’이라는 타이틀과 함께다.

최근 발간된 새누리당 20대 총선 공약집에도 그대로 담겨 있다. 다만 ‘무노동 무임금’ 원칙이 먼저고, 불체포특권 포기가 다음 항목으로 순서만 바뀌었다. 정치 분야 공약이 2쪽에 불과하다는 점도 그대로다. 말 그대로 정치 공약 대부분이 ‘셀프 카피’ 공약이다.

다른 점도 있긴 하다. 19대 총선 때는 ‘의장 직권상정 요건’ 강화를 내세웠다. 반대로 이번엔 ‘소수독재법’이라며 국회선진화법을 개정하겠다는 문구로 바뀌었다.

더불어민주당도 별반 다르지 않다. 불체포특권 관련 언급을 과감히 삭제하는 용감성(?)을 보여줬다. 대신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와 석패율제도 등 기존 주장만 되풀이했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 항목도 똑같다. 국민들에게 드라마보다 더한 재미를 제공했던 ‘막장 공천’ 개선 의지는 양당 모두 찾아볼 수 없다.

아! 최대 히트를 친 ‘떴다방 공약’은 있었다. 더민주는 균형발전 분야의 첫 번째 공약으로 ‘국회의 세종시 이전 추진’을 내세웠다. 충청권 포퓰리즘이라는 거센 비난이 일자 ‘아니면 말고’라며 슬그머니 분원 설치 쪽으로 돌아섰다.

이처럼 거대 양당은 4년 전 약속을 왜 그대로 옮겨놓았을까. 국회의원 특권 포기가 총선용 공약(空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그들 스스로 잘 안다. 4년 전 공약을 베껴도 국민들이 관심이 없다는 사실도 말이다. 자신들의 밥그릇을 건드리는 자해 행위는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계속 추진’이라는 타이틀 뒤에 숨겨 놓고서다.

소수 정당들은 정치 공약에 나름 힘들인 흔적이 보인다. 국민의당은 국회의원 국민파면제 카드를 제시했다. 지역구 유권자의 15%가 찬성하면 소환투표에 회부하고 ‘3분의 1 이상의 투표와 투표자의 과반 찬성’으로 해당 국회의원을 파면하는 제도다. 정치인 낙하산 임명도 금지하겠다고 했다. 정치권의 보은성 인사를 막겠다는 취지다.

정의당은 4당 가운데 가장 적극적이다. 300여쪽에 달하는 총선 공약집 가운데 10%에 해당하는 30여쪽을 정치 개혁에 할애했다. 국회의원 세비 최저임금 연동 상한제를 도입해 최저임금의 5배(연 7561만원)를 넘지 말자고 했다. 과거 논란의 대상이 됐던 입법활동비 및 특별활동비를 폐지하자고 했다. 국회의원 겸직 금지에다 불체포특권 남용 제한 등도 곁들였다. 모든 정치자금 수입 및 지출 인터넷 상시 공개, 선거일 유급휴무일화, 정당 기호순번제 폐지 등도 눈에 띈다. 그러나 현실적 힘이 없기에 ‘뜬구름 잡기’ 공약이라는 한계가 어쩔 수 없이 뒤따른다.

국회의원이 갖고 있는 고유의 특권은 100여개. 20대 국회서 딱 두 가지만 없애보자. ‘셀프 카피’ 공약만이라도 지키자는 것이다. 우선 불체포특권과 면책특권 개선이다. 더민주를 제외한 새누리당과 국민의당, 정의당이 한편이다. 의지만 있다면 국회선진화법의 영향 없이 순조롭게 통과시킬 수 있다.

‘무노동 무임금’ 공약도 어렵지 않다. 국회의원의 연봉은 1억4000만원에 달한다. 경제 수준 등을 고려하면 선진국 못지않다고 한다. 새누리당 공약집대로 국회 파행, 의원 구속 기간만이라도 세비 지급을 중단하자. 그러나 그들이 스스로의 목에 방울을 달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러기에 집집마다 배달된 선거공보를 지금 당장 한번 살펴보자. 그리고 난 뒤 오는 13일 표로 말해주자.

김영석 정치부장 yskim@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