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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송세영] 시한부종말론, 법적 제재해야

피해자들의 눈물어린 사연들… 종교 빙자한 사기, 규제법 필요

[삶의 향기-송세영] 시한부종말론, 법적 제재해야 기사의 사진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종교국에서 일하다 보면 종종 받게 되는 전화가 있다. 아들과 딸이, 혹은 아내가 사이비 종교집단에 빠져 가족과 연락을 끊고 사라졌다는 내용이다. 어떤 곳인지 알아보면 십중팔구는 시한부종말론을 내세우는 집단이다.

최근에도 한 어머니가 전화를 걸어왔다. 병원에 근무하던 딸이 직장을 그만둔 사실을 한참 뒤에 알고 이유를 추궁하다 시한부종말론을 내세우는 사이비 종교집단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했다. 말도 없이 좋은 직장을 그만둔 것을 책망하자 딸은 가출해버렸다. 이제 전화도 받지 않고 연락이 완전히 끊어졌다며 막막한 심정을 토로했다.

서울의 명문대학에 다니던 한 청년은 시한부종말론에 빠진 뒤 대학을 중퇴했다고 했다. 이제 곧 종말이 닥쳐올 텐데 대학 졸업장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 생각했다고 한다. 뒤늦게 빠져나왔지만 자발적으로 중퇴한 대학에 다시 돌아갈 길은 없었다.

임신한 아내가 시한부종말론에 빠져든 뒤 낙태를 하고 가출해 버렸다거나, 결혼을 앞둔 약혼녀가 일방적으로 파혼을 선언하고 사라졌다고 하소연하는 이들도 있었다. 남편과 자녀를 버리고 집을 떠난 뒤 단체 합숙생활을 하며 이혼을 요구해왔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이들이 빠진 시한부종말론은 단순히 ‘종말이 가까이 왔다’고 여기는 것과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정해진 시간이 되거나 일정한 조건이 충족되면 이 세상이 멸망한다고, 그리고 그때가 그리 멀지 않았다고 믿는다. 종말이 임박했다는 생각, 시곗바늘이 종말을 향해 째깍째깍 가고 있다는 생각은 불안감과 함께 초조함에 조바심까지 불러일으킨다. 결혼도 가정도 직장도 학교도 모두 무의미해진다. 일상적인 도덕감각이나 합리적 사고능력도 마비된다.

시한부종말론에 더 깊숙이 빠져들면 집단 자살이나 민간인을 상대로 한 테러 행위도 태연하게 저지른다. 최근 프랑스 파리와 벨기에 브뤼셀에서 자살폭탄 테러를 일으킨 이슬람 수니파 테러단체 IS도 시한부종말론을 추종한다. 1995년 일본 지하철에서 민간인을 상대로 독극물 테러를 저질렀던 옴진리교도 시한부종말론 집단이었다. 한국에서도 시한부종말론이 횡행하도록 계속 방치한다면 이처럼 끔찍한 일로 이어지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시한부종말론 때문에 입은 피해를 전화로 호소해온 이들 중에는 국민일보 독자가 아닌 이들도 꽤 있었다. 인터넷을 검색하다 국민일보에 실린 관련 뉴스를 보고 전화를 걸어왔다고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국민일보는 시한부종말론 집단의 위험성과 허구성을 지속적으로 고발해온 유일한 종합일간지다.

한국 사회와 언론은 시한부종말론의 명백한 폐해와 위험성 앞에서도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 막강한 국가권력도 두려워하지 않고 비판하고 규율하려는 이들이 왜 사이비 종교집단에는 그토록 관대할까. 그 근저에는 시한부종말론도 일종의 종교적 신조이므로 종교 문제에 해당된다거나 기성 종교도 문제가 많지 않으냐는 생각 같은 게 깔려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시한부종말론은 어떤 극단적 이념보다 위험하다. 가정을 파괴하고 미래를 앗아간다. 너무나 반사회적이어서 종교라고 볼 수도 없다. 기성 종교에 문제가 많다고 해도 시한부종말론의 폐해나 위험성과는 차원이 다르다.

늦기 전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시한부종말론을 제어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법적 제재다. 시한부종말론을 유포하는 것만으론 처벌하기 어렵다면 이를 내세워 재산상 이익을 취한 경우 사기죄로 처벌하면 된다. 더 확실한 제재를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사이비종교규제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 4·13총선을 통해 구성될 제20대 국회에선 우리 사회의 암적 존재인 시한부종말론 집단을 뿌리 뽑을 수 있는 확실한 조치가 취해지길 기대한다.

송세영 종교부장 sysoh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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