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 황주리의 나의 기쁜 도시] 에스토니아, 탈린의 밤하늘 기사의 사진
황주리 작품
발트 3국은 어릴 적부터 가보고 싶던 나라였다. 이름조차 낯설었던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그곳들을 가본 게 벌써 7∼8년 전이다. 세월이 이렇게 빠르게 도망가는 걸 매 순간 느끼며 산다면, 우리는 아무도 미워하지 않으리라. 발트 3국은 그렇게 인간에 대한 미움을 잊어버리게 하는 곳이다. 그때만 해도 30여년 전의 체코나 폴란드처럼 때가 하나도 안 묻어 순수하고 싱그러운 곳들이었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다. 모든 서유럽처럼, 아니 요즘은 동유럽도 비슷비슷하듯이 그렇게 변했으려나. 다시 또 가보고 싶은 곳이다.

그중에서도 에스토니아의 탈린이 기억에 남는다. 아마 발트 3국 중 가장 처음 밟은 곳이라 그랬는지 모른다. 그곳의 밤하늘이 고흐의 그림 속처럼 신비로운 푸른색이어서 마치 첫사랑처럼 잊을 수 없었는지도. 발트 3국의 아름다움은 그 유서 깊은 낡은 건축물들과 골목길에도 있지만 밤이면 더욱 푸르게 짙어 오는 밤하늘에도 있다. 탈린에서 며칠 머무르다 라트비아에 갔을 때도 그 푸른 하늘은 여전했다. 그런 밤하늘을 볼 수 있는 곳은 발트 3국뿐일 것 같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 본 하늘, 러시아나 다른 북유럽 나라들의 여름 백야와는 전혀 다른 밤하늘이다. 그 푸른 하늘은 푸른 물감을 갓 풀어놓은 바닷속 같기도 하다.

어릴 적 읽었던 세계 동화전집 속의 기억을 불러내는 꿈같이 아름다운 나라들, 그곳이 발트 3국이다. 좁은 골목길들을 하나하나 돌 때마다 마음이 설레는 곳, 지금도 그러려나. 동유럽 여행길이 열리자마자 가 봤던 그 눈물나게 아름다운 체코의 프라하, 폴란드의 크라카우처럼 다시 가면 실망하지 않으려나. 그 고즈넉했던 골목길들이 많은 관광객의 발걸음과 자본주의 전광판들로 몸살을 앓지는 않으려나. 마치 옛사랑을 만나러 가는 사람처럼 발트 3국을 다시 가보고픈 마음은 설레면서 머뭇거린다.

에스토니아의 탈린 구시가지에서의 산책은 하루 종일 즐겁다. 중세의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한 환한 거리 풍경의 겉모습과는 달리 발트 3국의 아름다운 도시들은 800여년 동안 일시적으로 잠시 독립했던 시간 외에는 늘 외세의 침략을 받으며 살아온 슬픈 역사를 지니고 있다. 1991년 8월 소련으로부터 독립하기까지 주변국들의 끊임없는 정벌 전쟁에도 불구하고 발트 3국의 도시들은 운 좋게도 부서지지 않고 그대로 보존돼 1997년 구시가지들 모두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엄청난 관광 자산이 되고 있다. 게다가 세 나라 모두 오랜 식민지 시절에도 불구하고 자신들만의 고유 언어를 간직하고 있다는 게 경이로웠다.

탈린의 구시가지 밤거리에서 거리의 연주자들의 음악소리를 들으며 노천카페에서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맥주 한잔하는 기분은 행복하다. 발트 3국을 아름답게 기억하는 일 중의 하나는 웬만한 호텔마다 있는 옥상 카페에 올라가 도시의 밤을 조망하는 일이다. 물감을 풀어놓은 듯 푸른 밤하늘과 작은 도시의 불빛들이 어우러져 잊지 못할 아름다운 풍경을 선물한다.

거리에서 그곳 명품 먹거리인 땅콩을 파는 아가씨에게 한국에서 왔다하니 김기덕 감독 영화 팬이라 했다. 무슨 영화를 보았냐고 물었더니, 거의 다 보았다고 했다. 아마 몇 년 전에 갔으면 싸이 팬들로 넘쳐났을 것이고, 요즘이라면 드라마 속의 송중기 팬들이 많지 않을까? 온 세상 사람들이 한국 드라마에 열광하는 걸 볼 때는 내 나라가 자랑스러워진다. 드라마가 없으면 무슨 재미로 사느냐는 우리 어머니만 보아도 드라마의 힘은 참 대단하다. 그때만 해도 한국인이 거의 없던 그곳에서 우리 일행을 안내해준 건 때 묻지 않은 마음씨를 지닌 한국인 선교사였다. 그 시절 에스토니아에 살고 있는 한국인이 모두 여섯 명인데 그중 다섯이 자기네 가족이라 말했던 생각이 난다. 에스토니아 사람들은 친절하고 순수해서 같이 지내는 일이 어렵지 않다고 했다. 그렇게 아름답고 그렇게 낯선 나라에서 우주선에서 똑 떨어진 어린왕자 가족처럼 살고 있는 그가 부럽기도 하고 외롭게도 느껴졌다.

옆 나라 리투아니아로 가면 5만개 이상의 십자가가 가득한 시물라이 십자가 언덕을 볼 수 있다. 1989년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에서 라트비아의 리가를 거쳐 에스토니아의 탈린에 이르는 620㎞ 거리를 200여만명의 사람이 손에 손을 잡고, 소련의 무력 진압에 맞서 인간 띠를 만들어 세계만방에 독립의 의지를 보여준 용기는 기독교 정신으로 똘똘 뭉친 쾌거였다. 유럽에서 마지막으로 기독교를 받아들인 발트인들은 유럽 어느 지역보다 깊은 신앙의 흔적을 남겨왔다. 손잡고 소련에 항거했던 이 작은 나라들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모습은 종교의 참된 힘을 보여준다. 아름다운 작은 언덕에 빼곡한 십자가들을 보며 숙연해진다.

황주리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