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전정희] 강남 엄마의 외출 기사의 사진
저는 지금 경기도 부천역 광장에 서 있습니다. 목요일(14일) 늦은 오후 역 광장은 마치 거대한 생명체가 살아나려는 것처럼 작은 진동이 느껴집니다. 제가 사는 강남 도곡동과 사뭇 다른 분위기입니다. 오십대 아줌마가 아니었다면 이 정돈 되지 않은 역과 그 주변 상가의 난잡함에 짓눌려 겁을 먹었겠군요.

고1 제 딸과 그 친구들이 제 동네 수준을 벗어나면 “그런 위험한 데를 왜 가” 하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생활반경이 다르니 강북 가는 것도 ‘모험’하듯 하는 아이들입니다. 제 딸은 요즘 “엄마 사는 게 뭐야. 너무 뻔한 거 아냐”라는 질문을 많이 합니다. 엄마로서 더럭 겁이 납니다. 강남 아이들, 그 속을 들여다보면 불쌍합니다.

저는 오늘 오전 강남 엄마들을 만났습니다. 자녀 문제로 이리저리 얽힌 모임 분들이죠. 제가 오늘 부천역을 간다 했더니 그 엄마들 “거기가 어디야” 합니다. 최근 가정 폭력에 희생된 여중생 ‘미라 시신 사건’ 지역인데 잘 모르더군요.

제가 이 광장에 선 건 국민일보 연재 ‘소년이 희망이다’를 읽고서입니다. 가출 청소년의 집결지 부천역 밤거리 르포를 통해 ‘나쁜 아이들’이 아니라 ‘아픈 아이들’을 알게 됐습니다. 엄마들이라면 누구나 그 심정을 알 겁니다.

‘청개구리 밥차’를 운영하는 이정아 사모의 얘기(국민일보 3월 16일자 29면)는 저를 참 부끄럽게 했습니다. 기사를 읽은 지 한 달여 만에 이곳에 오게 됐습니다. 전날 제 차에 쌀 두 포대와 과일 과자를 사서 실었습니다. 물론 이정아 사모와 자원봉사자들 누구에게도 연락을 못한 채 불쑥 찾아뵙는 결례를 하는 겁니다.

주차를 위해 부천역 주변을 몇 번 돌았습니다. 여인숙 모텔 PC방 노래방 술집 카페 등이 즐비합니다. 거리청소년들이 몰릴 만한 거대한 환락가였습니다.

저는 사회로부터 혜택 받은 삶을 살았습니다. 어려서 교회를 다녔고 미션스쿨에서 간호학을 전공했습니다. 좋은 남편을 만났고 미국 유학과 연수를 경험한 대학생 아들도 있습니다. 친정어머니와 시부모가 아프시지만 이 또한 감사한 일이지요. 내 자녀 또한 우리 사회 공동체가 주는 혜택을 누리고 있어요.

저는 아이들 키우면서 신앙생활을 등한히 했습니다. 유난 떠는 크리스천들이 왠지 밉상이어서 그랬습니다. 참 못났죠. 최근에서야 다시 성경을 읽습니다. 친정어머니와 함께 말입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시 42:1) 말씀이 저를 적셨습니다. 저는 부활한 당신의 딸이고, 당신 아이들의 엄마입니다. 내 육된 자녀의 엄마만이 아니라는 것을 이 나이에 깨닫습니다.

밤 10시. 골목에 세워둔 차를 몰고 집으로 가기 위해 다시 광장에 섰습니다. 용케 청개구리 밥차를 찾아 작은 힘이나마 보탰습니다. 이정아 사모는 마침 일이 있어 없었습니다. 대신 서울신대 대학생 봉사자들, 몇 년째 조리를 돕고 있는 아주머니, 우쿨렐레 악기 봉사자 등 다양한 분들이 누가 지시한 것도 아닌데 일사불란하게 움직였습니다.

거리의 아이들도 저처럼 스며들 듯이 자원봉사자 형, 언니들과 어울려 1식 1찬으로 끼니를 해결했습니다. 사모가 대장인 밥차이긴 하나 복음 전도는 없었습니다. 사랑만 있었죠. 지적하지 않고, 묻지 않고 들어주더군요. 거리 아이들은 눈을 잘 안 맞추더라고요. 초봄이라 쌀쌀한데 티 한 장, 헤진 신발로 떠는 청소년들이었습니다. ‘매 맞지 않는 차가운 어둠이 차라리 편하다’는 신문 제목이 딱 맞더군요. 하지만 아이들은 마음 연 이들에겐 개그맨 저리 가라였습니다. 빵빵 터지게 했어요.

저는 교육을 받고 매주 1회 ‘밥차’ 봉사를 할 겁니다. 쌀보다 간식이 더 필요하더군요. 고단하지만 오늘 저녁 제 아이들에게 편지를 쓰고 자야겠습니다. 샬롬.

참고. 이글은 실제 봉사참여자의 구술을 받아 재구성됐습니다.

전정희 종교국 부국장 jhj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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