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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홍 칼럼] 친노와 싸우다 닮아가는 친박

“총선 때 심판 자초한 친박이 전면에 나서면 향후 모든 선거에서 이기기 힘들 것”

[김진홍 칼럼] 친노와 싸우다 닮아가는 친박 기사의 사진
‘여당 최악의 패배’로 요약되는 4·13총선 개표 상황을 지켜보면서 잠시 수도권 투표소 내부 모습을 그려봤다. 상당수 유권자들이 투표소로 들어가 조용히 붓두껍을 눌렀으나, 마음은 “정부·여당에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는 분노로 가득 차 있었던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속으로는 붓두껍이 부서지도록 ‘꽝! 꽝!’ 내리찍었던 것 같다는 얘기다.

유사한 풍경이 2008년 18대 총선 때 있었다. 당시 새누리당 전신인 한나라당은 153석을, 더불어민주당 전신인 통합민주당은 81석을 각각 얻었다. 통합민주당은 2004년 17대 총선에서 152석이나 얻은 열린우리당이 민주당과 합쳐 만들어진 정당이다. 친노가 주류인 열린우리당이 4년 만에 70석 이상을 잃은 참패를 당한 것이다. 이명박정부가 갓 출범하고 한나라당의 서울 뉴타운 공약 등도 투표에 영향을 미쳤겠지만, 노무현정부 5년 동안 이어진 친노의 독선과 무능이 가장 큰 요인이었다.

그 이후 현재의 여당은 야당과의 선거에서 진 적이 없다. 박근혜정부 때도 마찬가지다. 세월호 참사 등 온갖 악조건에서도 승리를 거머쥐었다. 상대는 친노였다. 친노가 선거의 전면에 나서면 패했다. 친노 수장인 문재인 전 대표가 대통령 후보로 나선 2012년 대선도 그랬다. ‘친노는 선거만 하면 진다’는 평가가 나온 이유다. 친노를 겨냥해 ‘싸가지 없는 진보’라는 지적까지 나온 탓이 크다.

20대 총선을 계기로 친박이 선거만 하면 패하는 친노의 길로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친박의 안하무인격 행태는 공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그들에게 국민들의 판단과 정서는 뒷전이다. 행정부 견제라는 국회 본연의 기능을 잊은 지도 오래다. 대통령 뜻을 따르는 게 최우선이다. 대통령과 다른 의견을 피력하는 여당 의원들이 나타나면 무조건 성토하고, 공천에서 탈락시키며 세를 과시했다. 게다가 친박은 공개석상에서 여당 대표를 망신주거나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하지만 대통령은 친박을 감쌌다. 오만과 독단이 도를 넘었으니 유권자들이 어떻게 몽둥이를 들지 않을 수 있겠나. 서울 강남과 부산이라는 전통적인 텃밭을 야당에게 내준 건 친박이 자초한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친노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는 점도 ‘친박 심판론’을 부추겼다. 친노는 김종인 대표 뒤로 숨었다. 친노의 거두(巨頭)와 막말 정치인은 공천도 못 받았다. 막판에 문 전 대표가 호남을 방문해 자극적 언사를 쏟아내기는 했으나 흐름엔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 호남에선 심판받았지만, 친노가 전면에서 사라지면서 친박의 오만함이 수도권에서 부각돼 승패를 갈랐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다 일자리를 찾지 못해 방황하는 젊은이들을 챙기지 못한 점, 살기 힘들어진 서민들을 보듬지 못한 점, 경제·안보 위기라고 외치면서 친박을 위한 선거에만 매진한 점도 국민들을 화나게 만든 점들이다. 한 가지 더 보태자면 선거 종반에 발표된 북한식당 여종업원들 입국과 북한군 대좌 망명도 여당엔 악재였다. ‘투표일 임박해서 무슨 짓이냐, 국민을 얕잡아 봐도 유분수지’라는 반감을 불러일으켰다.

올 총선의 메시지 중 하나가 ‘친박은 싸가지 없는 보수’라는 것이다. 친박이 전면에 나설 경우 앞으로 선거에서 이길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봐야 한다. 국민들 머릿속에 각인된 이미지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총선 이후 친박의 방자한 언행을 보면 2선으로 물러나지 않고, 친노의 전철을 답습할 가능성이 크다. 어리석고 불행한 일이다. 당을 살리려면 분장사(扮裝師)라도 데려와야 한다. 친노가 김종인 대표를 영입한 것처럼.

김진홍 논설실장 j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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