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지용근] 여론조사 무엇이 문제인가… 어느 조사인의 고백 기사의 사진
이번 국회의선 선거 기간에 있었던 일이다. 학교를 마치고 귀가한 어느 초등학생이 집으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전화기 너머에는 어느 여성의 녹음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국회의원 선거 여론조사를 하니 응답해 달라는 짧은 부탁과 함께 첫 번째 질문을 받았다. “선생님의 나이는 어떻게 되십니까? 20대이면 1번, 30대이면 2번, 40대이면 3번, 50대이면 4번, 60대 이상이면 5번을 눌러주십시오.” 학생은 아무 생각 없이 4번을 눌렀다. 학교 선생님이 50대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 학생은 선생님의 입장(?)에서 조사 응답을 완료했다. 필자의 고객인 어느 후보로부터 이 웃지 못할 이야기를 들었다.

이번 총선은 어느 때보다 여론조사가 난무했다. 선거기간 중 중앙선거여론조사 공정심의위원회에 등록된 여론조사 건수는 1400건이 넘고 신고의무가 없는 정당의 조사 건수까지 합하면 가히 여론조사의 홍수 속에 선거가 치러진 것 같다.

선거 당일 오후 6시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됐을 때 화면 속에 비친 각 당의 리더십의 놀라움과 두려움의 표정을 보면서 필자는 순간 ‘여론조사 또 매 맞겠구나!’라는 생각으로 머리가 하얗게 되어 버렸다.

이번 여론조사가 엉터리로 국민들에게 인식된 것은 조사방법론상 큰 허점이 있어서다. 개인정보보호법이라는 틀에 갇혀 전 국민이 보유하고 있는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못하고 집전화에 의존하는 점이 가장 큰 이유다. 현재 집전화 보유율은 전체 가구의 50% 미만으로 알려져 있다. 신혼부부, 1인가구는 대부분 집전화가 없다. 필자도 이사 오면서 집전화를 없앴다. 어느 지역구에 새로운 아파트단지가 들어섰을 때 입주자들은 이전 전화번호를 갖고 이사를 온다. 따라서 현재 해당 지역의 국번을 기준으로 임의전화(RDD) 조사를 하는 방식에서는 그 새 아파트단지 대부분이 조사대상자에서 누락되게 된다.

전화조사가 진행되는 낮 시간의 경우 가구 구성원의 재택률을 보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20·30대 젊은층의 낮 시간대 재택률은 15∼25%(통계청 생활시간조사) 된다. 그리고 평일 낮 시간에 조사할 경우 화이트칼라 직업군은 아예 누락되고 만다.

또 한 가지는 신뢰도와 관계있는 응답률의 문제이다. 필자가 처음 조사업에 입문한 1980년대 말 당시 전화조사 응답률은 35% 안팎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15% 정도이고 여론조사가 한꺼번에 몰리는 선거 때는 10% 선까지 떨어진다. 더군다나 녹음된 음성으로 조사하는 ARS조사의 경우 선거 때는 2% 정도밖에 안 된다.

민심은 상황에 따라 급변할 수 있기에 여론조사는 마치 그 시점에서의 ‘스냅사진’과 같다. 여론조사는 대중의 의견을 알아보는 도구이기에 의뢰자는 현 상황에 대한 참고자료로 사용해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는 여론조사로 후보를 결정하는 단계에까지 와 있다. 온도계는 기온을 재는 도구일 뿐인데 마치 온도계가 기온을 결정하며, 현미경은 박테리아를 보는 도구인데 마치 현미경이 박테리아를 만든다고 생각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동안 휴대폰 조사방식의 도입은 우리 여론조사 업계의 숙원과제였다. 이번 선거를 되돌아보면서 또다시 사람들의 귀와 눈을 잘못된 길로 인도해버린 여론조사의 폐해가 다시는 나타나지 않도록 이제부터라도 관련자들이 심각하게 제도 개선을 위해 노력해 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인지도 게임 같은 여론조사로 인해 미래가 촉망받는 신인 정치인이 싹도 못 피우고 사라지는 일이 없기를 소원한다.

지용근 지앤컴리서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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