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 삶의 끝을 아름답게 2부 ⑧] “죽음을 준비하니 삶이 달라졌어요” 기사의 사진
최명환씨(오른쪽)가 2014년 8월 경북 김천 국제가족연극제에서 연극 ‘소풍 가는 날’의 주연 김득천 역할을 맡아 열연하고 있다. 최명환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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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 웰다잉, 이제 준비합시다
⑧ 아름다운 마무리를 준비하는 사람들


죽음에 가까이 다가가는 사람들이 있다. 불길함 혹은 두려움 때문에 많은 사람이 죽음을 애써 외면할 때 그 한가운데로 들어가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존엄한 마지막’을 고민하고 준비하면서 삶은 더 풍성하고 아름다워지고 있다. 이들은 ‘죽음’이 ‘삶’을 변화시켰다고 입을 모은다.

“삶이 유한하기 때문에 꿈을 꾼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진 죽음에 대해 한 번도 고민해 보지 않았어요. 주변 사람이 숱하게 죽었는데도 나는 죽을 거라고 생각 안 했죠. 회사 임원으로 일하면서 한창 때였거든요.”

지난 12일 빨간 조끼 차림의 노신사는 베레모 아래 백발을 손으로 쓸어 올리며 담담하게 죽음 얘기를 꺼냈다. 각당복지재단 웰다잉연극단 단장으로 활동해 온 최명환(67)씨다.

불청객은 2003년 5월 찾아왔다. 1년에 한 번 받는 정기 건강검진에서 신장암 초기라는 진단을 받았다. 오른쪽 신장(콩팥)을 3분의 1가량 잘라냈다. 그러고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2년 뒤 암세포가 전이됐다. 왼쪽 신장을 4분의 1가량 잘라야 하는데 전보다 어려운 수술이라고 했다. 최씨는 “죽음이 남의 일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수술을 받는 게 두려웠다”고 회상했다.

두려움과 불안함을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었지만 아무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는 “죽으면 집안일 처리는 어떻게 할지, 장례는 어떻게 할지 가족과 상의하고 싶었는데 아내는 ‘죽’자도 못 꺼내게 하며 펄쩍 뛰었다”고 말했다.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최씨는 외롭게 홀로 죽음을 고민하고 생각했다. 건강을 되찾는다면 비슷한 상황에 처한 이들의 ‘죽음’에 대한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2007년 회사를 그만뒀다. 2008년 각당복지재단에서 하는 ‘죽음준비교육 지도자 과정’이 있다는 걸 알고는 한걸음에 달려가 등록했다. 2년간 ‘죽음 공부’를 하면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유언장 등을 직접 써보고 삶과 죽음을 고민했다.

‘삶은 무한하지 않다’는 진리를 깨닫자 삶의 방향이 바뀌었다. 최씨는 92세까지 건강하게 사는 걸 목표로 정하고 꼭 이루고 싶은 꿈을 매년 12월 ‘버킷리스트’(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일을 적은 목록)에 담기 시작했다. 그는 “삶에 끝이 있다는 걸 인정하니 평생 꿈꾸지 못한 일들도 선뜻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존엄한 죽음’ 준비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2009년 시작한 웰다잉연극단도 그중 하나다. 연극인 장두이씨가 각본과 연출을 맡았다. 최씨처럼 죽음준비 교육을 받고 뜻을 모은 사람들이 배우로 참여했다. 웰다잉연극단은 지난해 12월 3일까지 7년 동안 전국을 돌며 ‘춤추는 할머니’ ‘립스틱 아빠’ ‘행복한 죽음’ ‘소풍가는 날’ 등을 127회 공연했다. ‘소풍가는 날’은 2014년 김천 국제가족연극제에서 우정상을 받기도 했다.

바쁜 나날이 이어지는 와중에도 최씨는 폐암 진단을 받고 2012년 1월 다시 수술대에 올랐다. 그는 “죽음에 대한 준비가 됐기 때문에 이전처럼 슬프거나 두렵지 않아 웃으면서 수술실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최씨는 수술을 받고 한 달 만에 무대에 복귀했다. 올해는 안식년을 맞아 연극단을 잠시 쉬고 있다. 대신 경기도 이천에 주말농장을 꾸리고 ‘중부웰다잉문화연구소’를 차리는 등 다른 일들에 열정을 쏟고 있다.

그는 올해 ‘버킷리스트’에 12가지를 적었다. 두 살배기 막내손자가 일곱 살이 되면 함께 목욕탕에 가는 일도 포함됐다. 최씨는 “이런 꿈을 이루려면 내가 건강해야 하기 때문에 잘 먹고 운동하면서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호스피스 자원봉사 20년, 삶이 풍성해졌다”

김진형(59·여)씨는 올해로 20년째 호스피스 자원봉사자로 일하고 있다. 그도 죽음이 두려웠다고 한다. 다만 피하기보다는 잘 알아야 극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더 가까이 다가갔다. 시작은 1995년 이화여대 평생교육원에서 듣기 시작한 2년짜리 ‘노인학’ 강좌다.

외며느리로 시부모를 모시기 어려워 시작한 공부였는데 첫 학기에 ‘죽음학’이 포함돼 있었다. 이렇게 ‘호스피스’를 처음 접한 뒤 1997년부터 호스피스 자원봉사자 교육을 받고 현장에 뛰어들었다. 10년 가까이 장애인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해왔던 그에겐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서울대병원, 국립암센터, 중앙대용산병원 등에서 호스피스병동이나 암병동을 찾아 발마사지, 목욕봉사 등을 하며 임종을 앞둔 환자들을 돌봤다. 서울 목동과 경기도 고양 일대에서 가정방문 호스피스 봉사도 했다. 처음 2∼3년은 일상생활을 따라다니는 ‘죽음’이 버거웠다. 그는 “호흡곤란으로 숨을 몰아쉬는 환자를 보면 덩달아 숨이 가빠졌고, 불필요한 연명치료로 괴로워하는 환자들의 고통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는 생각에 무력했다”고 말했다.

‘죽음’에 압도되는 과정을 지나치고 나니 신념이 생겼다. 김씨는 “의료진처럼 환자를 살릴 수는 없지만 죽어가는 환자와 지친 보호자 곁에서 친구가 돼 주는 게 내 역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엄마가 없는 소아 백혈병 환자를 엄마처럼 챙겼고, 찾아오는 사람이 없는 외롭고 상처받은 환자에겐 가족이 돼줬다. 환자가 그리워하는 사람에게 연락을 해 만날 수 있도록 돕는 일도 그의 몫이었다. 남겨진 유족을 찾아가 위로하고 하소연을 들으며 같이 울기도 했다.

20년 동안 그의 손길을 거친 수많은 환자들이 세상을 떠났다. 이별을 겪으며 자신의 죽음에 대한 생각도 분명해졌다. 김씨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고 연명치료를 원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틈틈이 가족에게 하고 있다. 그는 “그 고통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내가 회복할 수 없는 병에 걸리면 절대로 오래 괴롭게 하지 말아 달라고 가족에게 말하곤 하는데, 먼 얘기라고 생각해서인지 반응이 없다. 앞으로 가족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게 숙제”라고 했다.

김씨는 편안하고 존엄한 죽음을 배우고 직접 도우면서 시간이 갈수록 스스로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투병을 감내하고 죽음을 준비한 뒤 떠나는 환자들의 훌륭한 모습이 참을성 없고 이기적인 나로 하여금 삶을 돌아보게 했다”고 전했다. 작은 것에 연연하기보다 크게 보고 이해하는 쪽으로 삶의 태도도 바뀌었다. “마음이 여유로워지니 모든 것에 초연해지고 삶은 더 풍성해졌죠. 주변 사람에게 죽음준비 교육과 호스피스 봉사를 추천하고 있습니다.”

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

후원 : 한국언론진흥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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