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추사코드] 추사체는 조선 혁명가의 정치적 암호문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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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작이다. 조선 후기 미술사를 대표하는 추사 김정희(1786∼1856)를 완전히 새롭게 해석한다. 추사는 예술가이기 전에 정치인이었으며, 추사의 작품은 정치적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는 저자 이성현(56·사진)의 주장이 받아들여진다면 기존의 추사 해석은 전부 폐기돼야 할 뿐 아니라 조선 문인화, 나아가 조선 미술사를 새로 써야 할 판이다.

“여러분은 소위 추사체로 쓰인 그의 작품에서 심오한 철학이나 가슴을 얼얼하게 만드는 문학적 감흥을 느껴보신 적 있으신지? 자타 공히 조선 최고 수준의 석학이었던 그의 서예작품에서 발견되는 예기치 못한 약점을 어찌 설명해야 할까?”

‘추사코드’는 수많은 질문을 던진다.

“누구나 추사의 작품을 보면 시선이 멈추지만, 정작 내용을 읽고 나면 맹숭맹숭해지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문인화는 뜻을 그린다고 한다. 그렇다면 선비가 문인화에 담아둔 뜻이란 대체 무엇이겠는가?”

“오늘날 대다수의 사람들은 추사를 예술가로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생전의 추사는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라 여겼을까?”

질문은 작품으로도 이어진다. 추사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谿山無盡(계산무진)’은 지금까지 “계산이 끝없이 펼쳐짐”으로 해석돼 왔다. 이 글씨가 당시 안동김씨 세도정치의 한 축이었던 계산 김수근에게 써준 것이라는 주장이 맞다면 그 뜻은 안동김씨 세도정치가 끝없이 계속되라는 축원이 된다.

“추사를 사지에 몰아넣고 집요하게 정치적 탄압을 가하던 세력이 안동김씨 가문이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상식인데, 늘그막에 추사가 안동김씨 비위라도 맞추며 목숨을 구걸하고 있다는 것인가?”

‘新案舊家(신안구가)’에서도 ‘신’자의 모습이 이상하다. 신자는 ‘설 립(立)’ ‘나무 목(木)’ ‘도끼 근(斤)’이 합해진 글자인데, 추사는 분명 ‘나무 목’ 대신 ‘아닐 미(未)’를 그려 넣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추사는 왜 ‘木’을 ‘未’로 쓴 것일까?

‘竹爐之室(죽로지실)’의 ‘지’자는 그간 많은 연구서에서 ‘갈 지(之)’자로 읽어왔으나 면밀히 살펴보면 ‘갈 지’가 아니라 ‘그칠 지(止)’라 쓰여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대나무 화로가 놓여 있는 방’이라는 지금까지의 해석은 맞는가?

저자는 이 책에서 추사의 서예작품 30여개를 검토하면서 기존의 해석에 이의를 제기한다. 그리고 자신만의 새로운 독법으로 메시지를 읽어낸다. 그에 따르면 ‘계산무진’은 “정치를 버리고 깊은 산속에 은거한 지식인들을 향해 숨어 있지만 말고 안동김씨들의 세도정치와 맞서 싸우라고 질책하는 목소리”이고, ‘죽로지실’은 “유용하지도 않고 위험하기까지 한 사람의 정치철학을 지니고 있는 내명부 여인의 처소”를 가리키는 말로 “궁중 여인네들이 세도정치의 온상이라고 고발하고 있는 셈”이다.

이성현의 새로운 추사 읽기는 추사 작품에서 발견되는 상식 차원의 의문들에서 출발하며, 몇 가지 전제를 사용한다. 추사를 세도정치에 맞서다 희생당한 정치인, 또는 세도정치를 뒤집으려고 했던 혁명가로 보고, 추사가 탄압을 피해 자신의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작품에 암호를 걸어놓았다고 전제하는 것이다. 저자는 “선비는 정치이념가이고, 선비의 문인화에는 정치적 메시지가 담기는 게 당연하다”면서 “그런데 우리는 문인화를 정치적으로 읽어보지 않았다. 고고한 선비정신이 어떻고, 이런 식으로만 읽어왔다”고 주장한다.

이성현은 또 “그간 추사 연구자들은 그의 글씨를 ‘그림 같다’고 감탄하면서도 정작 파격적인 글자꼴에 숨겨진 의미를 알고자 노력하지 않았다”고 비판하면서 가필이나 획의 방향까지 집요하게 살핀다. 그에 따르면 “추사체의 특성은 같은 글자를 반복하여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그리고 이는 “글의 내용에 따라 글자꼴이 그때그때 결정되었기 때문”이고 “추사체를 읽으려면 그림을 통해 글자의 의미를 재조정하여야 한다는 뜻”이 된다.

이성현이 추사코드를 풀기 위해 사용하는 또 하나의 수단은 ‘고한문’이다. 추사가 고증학에 몰두했다는 점에 착안해 그가 쓴 글자의 의미를 이 시대의 한문이 아니라 ‘시경’ ‘대학’ ‘주역’ 등 고한문에서 발견하고자 한다.

이성현은 이 책에서 최완수(간송미술관 연구실장), 유홍준(명지대 석좌교수) 등 추사 전문가들을 실명으로 비판한다. 논문이 아니라 대중서로 출간한 이유도 있다. 그는 “대학교육 정도를 받은 사람이라면 이성적으로 누구 얘기가 맞는지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며 “그간 몇몇이 선점해온 추사 해석을 공론의 장에서 논쟁해보자는 의도”라고 설명했다. 그는 추사를 다룬 책들을 연이어 발표할 예정이다.

“이번 책은 예고편에 불과하다. 향후 세 권 분량이 더 나온다. 추사에 관한 문제뿐만 아니라 한국미술사 전반에 대한 얘기가 새로 시작돼야 한다.”

이성현은 홍익대 미대를 졸업한 30년 경력의 동양화가다. 박사학위를 받은 뒤 10여년간 서울시내 여러 대학에서 동양화론을 강의하기도 했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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