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뷰-김태황] 경제개혁의 본질로 돌아가자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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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8년 프랑스 아비뇽에서 로마와 다른 교황이 즉위하여 교황이 둘이 되자 위클리프는 교황이 아니라 성경이 영적 권위의 최고 근원이라고 설파했다. 1415년 처형당한 얀 후스는 교황의 면죄부와 연옥의 존재를 부정하며 인위적 권위에 맞섰다. 1516년 에라스무스는 그리스어판으로 신약성경을 번역하여 사제가 아닌 일반인들이 성경을 읽도록 했다. 1517년 루터의 95개조 격문은 구원의 근거는 성경과 그리스도라는 지극히 ‘당연한’ 내용이 핵심이었다. 취리히의 온유한 군인이었던 츠빙글리가 종교개혁가로 변신하여 67개조 격문을 선언한 것은 교황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말씀을 통해 교회를 다스리고 성경이 주인이라는 깨달음 덕분이었다. 1526년 틴들은 신약성경이 흥미롭게 읽힐 수 있도록 수려한 영어 문장으로 번역하였고, 칼뱅은 1536년 ‘기독교강요’를 집필하여 왜곡된 기독교의 본질을 바로잡았다.

14∼16세기 종교개혁의 물결은 기독교의 근원과 본질 회복이었다. 신성하게만 여겨졌던 일상화된 권위와 전통, 관행이 오히려 백성들의 속살에 생채기를 내고 있었다. 종교개혁은 백성들의 상처를 세상에 드러냈고 건강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상처를 덮어주거나 진통제를 개발한 것이 아니라 생명과 건강의 본질을 일깨워주었다. 새롭게 뜯어고치는 일(개혁)은 새로운 것을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익숙해진 일상을 근본으로 되돌리는 것이다.

경제개혁은 구조적 침체에 빠진 세계경제의 현안이다. 지난 1월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의 화두는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을 활용하여 온 세상이 초연결망으로 소통하는 ‘제4차 산업혁명’이었는데 이는 다름 아닌 기존 경제체제의 개혁을 의미한다. 우리나라도 경제개혁의 돌파구를 찾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다.

종교개혁의 목소리가 기존의 왜곡된 권력과 체제와 관행에 의해 비웃음거리가 되었고 이단시되던 주장이었지만 근원과 본질에 집중함으로써 생명력을 회복하였듯 경제개혁도 경제의 근본에서 승부수를 걸어야 한다. 우리나라 경제개혁은 한편으로는 경제 활성화의 의미로, 다른 한편으로는 경제민주화의 의미로 곡해되고 있다. 먼저 경제 활성화의 논리는 경제성장의 단맛에 대한 향수에 젖어 있다. 경제 성장을 위해 개혁이 필요하고 경제 성장은 개혁의 가장 설득력 있는 결과라고 여긴다. 우리나라는 지난 60여년간 경제 성장 ‘덕분에’ 굶주림에서 벗어났고, 경제 성장 ‘때문에’ 사회적 갈등이 심화되기도 했다. 경제 활성화를 통한 경제 성장은 달콤한 성과이지만 새롭게 뜯어고쳐서 회복해야 할 지향점은 아니다. 경제민주화는 경제주체들 간의 조화를 통해 달성해야 할 헌법적 가치 가운데 하나이지만 경제개혁의 본질적 목적은 아니다. 소득 양극화와 빈부격차 해소가 경제개혁의 최우선적인 목적으로 축약되는 경우도 본질을 흩트리는 주장이다.

우리나라는 1997년 외환위기를 경험한 이후 역대 정부마다 경제 성장과 경제민주화를 강조해 왔다. 그런데 경제개혁은 진행되고 있는 건가, 구호로 외쳐지고 있는 건가? 진행되고 있다면 개혁의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건가, 왜곡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건가?

종교개혁이 그랬던 것처럼 경제개혁도 ‘진보’하는 것이 아니라 ‘회복’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경제활동의 본질은 노동(일)을 통한 생존이고 번영이다. 따라서 자본도 기술도 정보도 인공지능도 초연결망도 사람이 일하고 생존하도록 활용되어야 한다. 사람은 일해야 하고 일한 사람은 그 대가를 얻는 것이 마땅하다. 대가 이상으로 일하기를 요구하거나 수고 이상의 대가를 요구하는 권력과 체제와 관행들을 개혁해야 한다. 수고하고 땀 흘리려는 사람의 일하는 권리를 제한하거나 땀 흘리기를 꺼리는 행위를 장려하는 제도와 구조를 개혁해야 된다.

우리 사회에는 일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고 일하지 않으려는 사람도 많다. 경제 구조조정이나 산업 구조조정의 핵심은 일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에 두어야 한다. 경제활동에서 소외된 취약계층에 대한 경제적 성과의 공유는 공적 및 사적 복지 차원에서 보장되어야 한다. 경제 활성화를 위한 경제개혁이 아니라 경제를 개혁하는 방향으로 경제가 활성화되어야 한다. 소득(부)의 재분배는 경제개혁의 결과로써 나타날 것이다. 경제개혁은 인간의 생존이 경제활동으로 소통되는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본 칼럼은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와 함께합니다.

김태황 국제통상학과 명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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