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이지현] 빛은 그곳으로 들어온다 기사의 사진
스무 살 즈음엔 누구나 불안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고, 내일은 뭘 할지 고민을 한다. 그것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그땐 잘 모르기에 다른 사람들의 인생은 꿈꾸는 대로 풀리는 것 같지만 자신의 인생은 뜻대로 되지 않아 답답할 때가 있다. 내 몸의 에너지가 순환되지 않고 정체된 것 같을 때, 우리는 그것을 청춘의 한때라고 명한다.

캐나다 시인 레너드 코헨은 ‘송가(Anthem)’에서 상처 난 가슴의 모든 조각들을 향해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고, 어디든 틈이 있기 마련이며, 빛은 그곳으로 들어온다고 했다. “…소리 낼 수 있는 종들은 모두 소리 나게 하라/완벽한 것은 없다/어디에든 틈은 있기 마련/빛은 그곳으로 들어온다.”

아팠던 그 일을 통해 볼 수 없었던 세상을 보게 되고, 그 상처가 세월이 지나면 무늬가 된다는 것이다. 종에 금이 가지 않았다면 결코 낼 수 없는 아름다운 화음이 있다는 것이다.

취업의 목표는 있지만 자신의 심장을 뛰게 하는 비전이 무엇인지 찾지 못할 때가 있다. 미래를 생각하면 앞날이 캄캄해 깊은 무기력함과 우울함에 빠지기도 한다. 우리 사회가 ‘욕망하지 않는 세대’로 규정한 일명 ‘달관세대’와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삼포세대’로 불려도 청춘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은 ‘희망하기’이다.

얼마 전 ‘공시생’(공무원시험준비생) 딸을 둔 친구를 만났다. 친구는 딸에게 레고 조립과 퍼즐 맞추기를 즐겨 하는 이유를 듣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뭐 하나 뜻대로 되지 않지만 레고 조립이나 퍼즐 맞추기는 내가 원하는 대로 만들 수 있잖아요.” 성인이 된 자녀에게 부모들이 해줄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사랑은 줄 수 있으나 생각까지 줄 순 없다. 육신의 집은 줄 수 있으나 영혼의 집마저 줄 순 없다.

그러나 “그랬구나. 많이 힘들지” “꼭 내가 생각하는 내가 되지 않아도 된다”라는 말은 해줄 수 있다. 지금 이대로의 모습도 충분히 사랑스럽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를 괴롭혀온 그 오랜 불안과 열등감이 서서히 자취를 감출 것이다.

또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자고 말해줄 수는 있다. 인생이 가치 있는지, 없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 없다. 각자의 인생을 하나님의 눈으로 봐야 볼 수 있다. 사랑과 연민이 가득한 따뜻하고 너그러운 절대자의 눈으로 가족과 친구들을 대할 수 있다면, 무엇보다 우리 자신을 사랑과 연민이 가득한 따뜻하고 너그러운 절대자의 눈길로 바라볼 수 있으면 좋겠다.

혹시 꿈꾸는 방법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이는 해도 안 될 거라는 부정적인 생각 때문이다. 실패할까봐, 상처 받을까봐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은 ‘우리가 말하는 대로 될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는 것이 ‘희망하기’의 시작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결과적으로 형통케 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이 출발점이다. 실패의 경험이 많았어도 꿈꾸기를 두려워하지 말자. 설사 실수를 반복한다 해도 나선형으로 반복하기에 조금씩 수정 보완하며 성장할 수 있다.

한번 생각해보자. 주변의 수많은 이야기들을 듣지만 정작 내 마음속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여보았는지. 지금 바로 내 마음속에서 말하는 대로 될 수 있다고 믿자. 우린 꿈을 꾸어야 한다. 일단 꿈을 품으면 꿈이 꺼지지 않는 열정을 불러일으키고, 꿈이 필요한 힘도 공급할 것이다.

그러나 꿈꾸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찾아오는 손님이 있다. 고난이다. 꿈을 꾸기 시작하면 신기하게도 고난이 그치지 않는다. 그러나 더 신기한 것은 파도처럼 밀려오는 고난이 결코 꿈을 멈추게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머리가 좋아서 꿈을 이루는 것이 아니다. 마음의 생각과 꿈, 믿음의 말이 운명을 좌우한다. 꿈을 안고 있으면 반드시 이루어진다.

jeehl@kmib.co.kr

이지현 종교기획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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