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 삶의 끝을 아름답게 2부 ⑨] 말기 암환자 42% 상황 몰라… 의사 ‘진실 메신저’ 역할 중요 기사의 사진
말기 환자에게 ‘죽음 예정 통보’를 할 때엔 가족이 함께한 자리에서 의사가 직접 환자에게 설명하고 알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적절한 설명과 이해 속에서 환자는 자신이 버려진다는 느낌보다 의사가 자신을 지지하고 있다는 감정을 느끼게 된다. 사진은 서울아산병원 의료진이 지난 22일 중환자실에서 만성 폐질환자의 상태를 점검하고 있는 모습. 서울아산병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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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웰다잉, 이제 준비합시다

⑨ 죽음의 진실, 의사가 바로 알려야


죽음이 임박한 말기 환자에게 이 사실을 알릴 것인가. 환자를 죽음에 대한 정확한 정보 없이 무방비 상태로 있게 하는 게 옳은가. ‘죽음 예정 통보’는 누가 하는 게 바람직한가. 수많은 의료 현장에서 흔히 맞닥뜨리는 상황이다.

암 환자 42%, 자신이 말기라는 사실 몰라

가족들은 환자가 ‘나쁜 뉴스’로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을까 걱정한다. ‘하얀 거짓말’을 해서라도 진실을 숨기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국립암센터가 2010년 11개 병원의 18세 이상 말기 암 환자 481명과 그 가족 381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말기 진단 시점에 가족 83%는 ‘환자가 말기 상태’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반면 환자 58%만이 자신이 말기라는 걸 인지하고 있었다. 암 환자 10명 가운데 4명(42%)은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듣지 못한 것이다.

자신이 말기라는 걸 알고 있는 환자만 떼어놓고 다시 조사한 결과, 의사로부터 직접 설명을 들은 환자는 56%에 불과했다. 가족이 알려줬다(11%)거나 상태가 악화돼 스스로 추측해서 알게 됐다(29%)는 환자도 상당수를 차지했다.

의사도 ‘말기 통고’를 하는 일이 쉽지 않다. 더 이상 치료가 의미 없다는 걸 알지만, 이를 알리는 행위가 환자의 잘못된 선택이나 치료 의지를 꺾는 결과를 초래할까 염려하는 의사도 적지 않다.

의사들 “죽음 예정 통보 때 스트레스 크다”

암 등 만성질환을 진료하는 의사 10명 가운데 9명은 ‘말기’라는 상황을 환자에게 직접 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죽음 예정 통보’를 하면서 스스로도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일보는 지난 11∼15일 ‘빅5 병원’(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서울성모병원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의 교수 8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암과 간경화, 폐질환, 에이즈(후천성 면역결핍증), 치매 등 만성질환을 다루는 소화기내과, 호흡기내과, 감염내과, 신경과 등에 소속된 의사들이다.

먼저 ‘환자가 더 이상 치료에 반응하지 않고 점차 악화돼 수개월 내 사망할 것으로 예상되는 말기 상태일 때, 환자가 그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97%(80명)가 ‘환자 본인이 알아야 한다’고 답했다. ‘환자 본인은 모르는 게 좋다’는 응답자는 2명에 그쳤다. ‘말기 상황임을 누가 알려주는 것이 바람직한가’라고 묻자 87.8%(72명)는 ‘의사가 직접 전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2.4%(2명)는 ‘가족이 해야 한다’고 했다. ‘의사·간호사·가족이 함께 상의해서’라거나 ‘환자 성향에 따라 적절한 사람이 해야’ 등의 기타 의견은 9.8%(8명)였다.

이어 의료진이 받는 스트레스를 조사했다. ‘환자에게 3∼6개월 이상 생존하기 어렵다고 알릴 때, 받는 스트레스는 어느 정도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전혀 스트레스가 없는 상태를 0점, 스트레스가 가장 극심한 상태를 100점으로 제시했다.

그랬더니 24.4%(20명)는 ‘90∼100’점, 29.3%(24명)는 ‘80∼89’점이라고 답했다. 절반 정도가 80점 이상인 ‘상당한 수위’의 스트레스를 호소한 것이다. 70∼79점은 15.9%, 60∼69점은 10.9%, 50∼59점은 9.8%, 0∼49점은 8.5%로 나타났다. 기타는 1.2%였다.

가족이 함께한 자리서 의사가 직접 알려야

일부에선 말기 상황임을 알리는 데 적합한 인물로 목사, 신부 등 성직자를 꼽는다. 환자가 심리적 충격을 덜 받고 마음의 안정을 얻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이유다. 그러나 대다수는 환자에게 ‘말기’와 ‘죽음 예정’을 알리는 역할은 담당 의사가 맡아야 한다고 본다. 환자의 정신·심리·신체·사회적 상태를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사람인 동시에 필요한 정보를 자세하게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 의대 윤영호 교수는 25일 “의사가 환자에게 직접 설명할 경우 가족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다”며 “알려야 하는 심적 부담이 없고 나중에 속이거나 거짓 행동을 해야 할 이유가 없어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특히 가족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 의사가 환자에게 상황을 말하는 게 좋다. 오해가 생기지 않고 가족이 더 편해진다. 윤 교수는 “의사의 정확한 설명이 환자를 잠시 당황하게 만들 수 있지만 오히려 사실을 잘 받아들이고 불필요한 치료를 찾아 방황하지 않게 한다”고 했다.

환자가 말기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무의미하고 힘겨운 연명치료보다 호스피스·완화의료를 선택하는 경향이 강하다. 말기 통고가 환자 삶의 의지를 꺾을 수 있다는 생각은 기우다. 윤 교수는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에게는 삶의 양보다 질이 더 중요하다. 말기 환자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첫걸음은 진실을 있는 그대로 알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

후원 : 한국언론진흥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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