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칼럼-최계운] 참꽃 그리고 더불어 살기 기사의 사진
봄비에 따른 해갈 정도와 수질 변화 등을 확인하기 위해 호남 현장을 찾았다. 한적한 도로를 지나다 분홍빛 진달래, 참꽃을 봤다. 산비탈 나무그늘 아래 외로운 듯 곱게 핀 참꽃이었다. 반가우면서도 문득 낯선 느낌이었다. 왜지? 한참을 생각한 뒤에야 답을 찾았다. 변화였다. 어린 시절의 진달래는 온 산을 뒤덮다시피 무리 지어 폈었다.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었다. 요즘은 다르다. 몇몇 명소를 빼고는 참꽃 보기가 어렵다. 있다 해도 몇 송이씩 띄엄띄엄 피어난 게 전부다.

나무 전문가에게 진달래, 참꽃의 변화를 물었다. 과거 참꽃이 흔했던 것은 산이 헐벗었었기 때문이란다. 산림이 우거지면서 참꽃이 쇠퇴했단다. 높이 자란 다른 나무에 치여 참꽃이 살아갈 수 없게 됐다. 결국 경쟁을 피할 수 없었던 참꽃은 사라졌고, 소나무나 참나무 등 교목(喬木)이 없는 곳에서 무리 지어 있던 참꽃들이 생명을 이어왔다는 것이다. 현실이 되어버린 하나의 현상 앞에서 생각이 복잡했다. 우리 삶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매일 즐겁기를 원한다. 그러나 세상살이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힘들다. 바란다고 행복하고 즐거운 삶이 저절로 살아지는 것도 아니다. 경쟁해야 한다.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 더 많은 부, 더 나은 지위, 더 큰 명예 등은 경쟁을 통해서 얻어지는 게 대부분이다. 문제는 경쟁에서 이기지 못하는 경우다. 경쟁에서 졌다고 그냥 사라지거나 고통과 어려움을 묵묵히 감내해야만 할까. 울창하게 우거진 숲이 보기도 좋고 쓰임새도 많지만, 나지막한 진달래 군락 또한 유용성은 떨어져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

무한경쟁 시대다. 누구도 경쟁을 피할 수 없다. 경쟁은 필연적으로 우위(優位)와 열위(劣位)를 구분한다. 그러나 이로써 모든 게 해결되지는 않는다. 결과에 따른 불만과 질시 등이 생겨나고, 이것이 쌓여 사회적 불안을 낳는다.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삶을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다. 돈의 경우를 살펴보자. 많은 사람이 돈을 좋아하고, 부자가 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실제 부자가 되기는 어렵다. 자연스럽게 부자가 못되거나 부자 될 확률이 극히 낮은 이들은 부자를 싫어하고 미워하게 된다. 편이 갈리고 다툼이 생긴다.

우리 사회는 전통적으로 공동체의 윤리가 우세했다. 무리에 껴야 생존에도 유리했다. 지금은 다르다. 공동체 못잖게 개인의 삶, 개인윤리를 중요시한다. 생존과 더불어 자존과 자율 등을 높이 산다. 균형과 공존에서 해답을 찾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독락(獨樂), 나 혼자의 행복보다 여락(與樂), 함께 행복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 옳지 않을까.

K-water가 운영하는 댐 주변에는 댐 주변지역 노인들과 함께하는 ‘효나눔복지센터’가 있다. 물사랑나눔단원들과 효나눔복지센터에 들렀을 때의 모습이 새롭게 다가온다. 효나눔복지센터에서 물리치료, 운동, 담소 등을 즐기는 노인들의 얼굴은 밝아 보였다. 어깨를 주무르고 얘기를 나누고 청소 등을 돕는 단원들의 모습도 비슷했다. 조심스럽게 인사를 나누었다. 지역사회의 이런저런 현안도 들었다. 가장 큰 어려움이 뭐냐고 여쭈었더니 뜻밖의 대답이 나왔다. ‘경제적인 문제 이런 것보다는 함께하는 이가 적어 외롭고 힘들다’는 것이다.

더불어 사는 일이 별다르고 거창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에는 즐겁고 행복한 일만 있지 않다. 유아독존(唯我獨尊), 혼자 살아가는 세상도 아니다. 아(我)와 여(汝) 모두를 인정하고 받아들여 짊어지고 나아가는 과정을 통해 더욱 풍성한 삶이 가능해진다. 이것이야말로 온 산 가득히 피어나던 옛 참꽃이 알려주는 가장 아름다운 삶의 길은 아닐는지!

최계운 K-water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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