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직격 인터뷰-안호상 국립중앙극장장] “안전한 길보다 도전의 길 걸을 때 내 의욕은 솟는다” 기사의 사진
안호상 국립중앙극장장이 지난 22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그는 2012년 1월 취임한 후 ‘레퍼토리 시즌제’ 등을 도입해 호평을 받았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당초 3년이었던 안 극장장의 임기를 총 5년으로 연장했다. 윤성호 기자
안호상(57) 국립중앙극장장은 요즘 공연계에서 가장 ‘핫’한 인물이다. 창극, 전통무용, 국악처럼 왠지 지루할 것 같은 전통공연을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콘텐츠로 재탄생시켰다. 2012년 1월 16일 취임한 지 4년여 만이다.

그는 국립극장 전속단체의 우수 공연작품을 토대로 ‘레퍼토리 시즌제’를 최초로 도입해 ‘장화홍련’ ‘적벽가’ ‘메디아’ 등 새로운 작품을 선보였다. 패션디자이너, 뮤지컬 연출가 등 외부 인사를 영입해 전통을 현대적으로, 젊은 관객의 입맛에 맞게 재해석했다. 최근 국립무용단의 ‘향연’은 전석 매진으로 추가 공연을 잡았을 정도다. 심지어 서구인의 취향까지 저격했다. 국립창극단의 ‘변강쇠 점 찍고 옹녀’와 국립무용단의 ‘회오리’는 프랑스에서 큰 갈채를 받았다.

안 극장장은 요즘 하드웨어를 뜯어고치고 있다. 국립극장을 대대적으로 손보고 있는 것이다. 중극장인 달오름극장은 개보수를 마쳤고, 연습실은 신축공사가 한창이다. 내년 가을부터는 대극장인 해오름극장 공사에 들어간다. 지난 22일 서울 중구 남산자락에 위치한 국립극장에서 안 극장장을 만나 변화와 혁신을 시도한 배경과 성공 비결을 들었다.

-국립극장이 최근 드라마틱하게 변신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취임 이후 가장 중점을 둔 것은 무엇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레퍼토리 시즌제’와 ‘젊은 극장’으로의 변화였다. 과거 국립극장은 서양 예술에 밀리고 민간 예술단체에 치이면서 뒷전으로 밀려난 모습이었다. ‘국립’이라는 타이틀이 있음에도 권위와 치열함이 없었다.”



-2012년 가을부터 연간 프로그램을 미리 발표하고 티켓을 판매하는 시즌제를 실시해 공연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시즌제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순수 공연예술 장르가 살아남기 위한 마케팅 전략이 바로 시즌제다. 작품에 대한 호기심을 자아내 관객 한 사람이 여러 번 공연을 보게 만드는 노림수라고도 할 수 있다. 문화예술은 소비할수록 더 소비하게 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한 작품을 보면 또 다른 작품을 보고 싶어진다. 예술의전당에서 2년간 시즌제를 실시했었는데, 전속단체가 없다 보니 한계가 있었다. 해외 작품의 경우 아무리 좋아도 다음 공연 기회를 기약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늘 허무했다. 그래서 당시 전속단체가 있던 국립극장과 세종문화회관을 부러워했다.”



-시즌제에서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첫 시즌 작품인 국립창극단의 ‘장화홍련’이다. 변화의 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는 공연이었다. 스릴러 창극을 표방한 이 작품에 젊은 관객들이 관심을 가지면서 개막 전 이미 매진이 됐다. 이 작품의 성공은 외부에선 국립극장을 다시 주목하도록 만들었고, 내부에선 단원과 단체를 자극해 경쟁하게 만들었다.”



-국립창극단, 국립무용단, 국립국악관현악단 등 전속단체를 어떻게 변화시켰나.

“처음엔 단원들의 반발이 상당했다. ‘장화홍련’을 준비할 땐 오디션을 보지 않으려는 단원도 여럿 있었다. 한태숙 연출가가 워낙 엄격한 데다 연습량도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원들에게 전속단체의 ‘동시대성 회복’이 시급하다고 설득했다. 전통을 기반으로 하되 컨템퍼러리한 작품을 만들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단원들도 점차 이해하게 됐다. 실제로 창극이나 국립무용단의 기반을 이뤘던 신무용은 20세기 초중반까지는 현대적인 단체였기 때문에 관객의 사랑을 받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후 대중보다 감각이 뒤떨어지면서 관객을 잃게 됐다. 예전 방식을 답습하면 편하긴 하지만 변화하지 않으면 대중에게 무시를 당하게 된다.”



-달오름극장 개보수, 연습실 신축 공사에 이어 해오름극장 개보수에 들어간다. 이렇게 대대적인 공사를 하는 이유는.

“국립극장 공사의 핵심은 제작극장으로서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국가를 대표하는 극장은 최고의 공연을 생산하는 제작극장이다. 전속단체를 가진 국립극장은 작품을 끊임없이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과거에는 공연 횟수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연습장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외부에서 빌려 쓰는 상황이다. 올여름이면 연습장 공사가 다 끝나는 만큼 국립극장으로선 한시름 놓게 될 것 같다. 마지막 남은 과제가 해오름극장이다. 해오름극장은 과거 가부키 전용극장인 일본 국립극장 대극장을 본떠 건립됐다. 객석 수를 1500석에서 1200석 규모로 줄이고 지금 너무 낮은 좌석 기울기도 적당하게 고칠 예정이다. 2018년 하반기 해오름극장까지 재개관하면 국립극장이 하드웨어 부문에서 필요한 것을 거의 갖추게 된다.”



-그동안 수많은 예술가와 작업을 했고, 공연계의 전환점이 되는 작품도 만들었다. 어떤 예술가와 호흡이 잘 맞는 편인가.

“함께 작업해서 좋은 성과를 냈던 예술가들 중 처음부터 친분이 있었던 적은 거의 없었다. 아티스트를 우선시하기보다는 작품의 완성도를 우선순위에 놓아야 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 개인적으로 좋은 예술가는 기획자를 파트너로 인정하는 분이라고 생각한다. 아직도 예술가 가운데 기획자를 자신의 아랫사람이나 집사처럼 여기는 분이 있다. 이런 관행은 바꿔야 한다.”



-문화예술계 수장으로서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일에 도전하는 것을 좋아한다. 예술의전당 시절에는 말러 전곡 연주나 오페라 축제 등 남들이 보기엔 무모해 보이는 프로젝트를 많이 했다. 안전한 길보다는 위험한 길을 가는 것이 나를 흥분시킨다. 1990년대 말 뮤지컬 대중화를 위해 노력했는데 이후 너도나도 뮤지컬에 뛰어들어 시장이 커지자 관심이 사라졌다. 국립극장에 올 때도 한국에서 전통예술은 어렵다고 했지만 오히려 내게 더 의욕을 일으켰다.”



-공연계에서 국립극장은 최고의 벤치마킹 대상이다. 직원들의 사기도 역대 최고인 것 같다. 좋은 리더십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니체는 ‘위대한 것은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좋은 지도자는 올바른 방향을 가리키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내가 좋은 리더십을 보여줬다면 그것은 오랜 시간 공연계에 머무르며 노력한 덕분에 잘못되지 않은 방향을 가리킬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안호상 극장장은

안호상 국립중앙극장장은 ‘예술행정의 달인’ ‘공연기획의 1인자’로 불린다. 1984년 예술의전당 공채 1기로 공연계에 첫발을 들인 뒤 23년간 근무하며 극장 건립부터 공연 기획까지 두루 섭렵했다. 특히 국내 처음 선보인 말러 교향곡 전곡 연주, 가수 조용필의 오페라하우스 공연, 일본 신국립극장과의 합작연극 등 굵직한 기획공연들을 성공시키며 예술의전당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2007년부터 5년간 서울문화재단 대표로 재직했다. 2012년 1월 국립극장장으로 자리를 옮긴 후 ‘국립 레퍼토리 시즌제’를 도입해 국립극장의 창작 역량과 위상 강화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1959년 출생 △청주고,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예술의전당 공연사업국장, 예술사업국장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 △대통령직속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 위원 △국립극장장

한승주 문화팀장 sjh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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