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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학자 정진홍 교수에 ‘크리스천의 신앙’을 묻다

“교회 안가는 것은 그렇다 치고 하나님 없다는 건 이해 안돼… 삶이 보람 있으면 죽음도 보람”

종교학자 정진홍 교수에 ‘크리스천의 신앙’을 묻다 기사의 사진
정진홍 서울대 명예교수는 늙음이 곧 축복이라고 했다. 그는 “나보다 어린 사람은 모두 친구가 될 수 있다. 살아 있을 때 좋은 친구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좋은 친구가 되는 것이고, 그것이 행복의 비결”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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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일까. 종교학자 정진홍(79) 교수를 만나면 꼭 물어보고 싶었다. 그는 2003년까지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한림대와 이화여대를 거쳐 울산대 석좌교수로 후학을 가르치고 있다. 60여년간 기독교, 유교와 불교, 이슬람교 등 여러 종교를 연구해온 정 교수를 지난달 말 서울 용산구 이촌로 충신교회 인근의 한 아파트 서재에서 만났다. 흰 머리카락이 정갈했다. 서재도 주인을 닮아 깔끔했다. 아파트 거실과 방마다 정 교수의 손때 묻은 책들이 가지런히 꽂혀 있었다.

정 교수가 내민 벚꽃향 가득한 올레 차 한 잔과 은은한 미소가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식탁을 겸한 책상 위엔 ‘겸공충묵(낮추고 높이고 비우고 잠잠하라)’라는 고사성어가 마음속에 들어왔다. 중학교 1학년 때 인민군에 끌려가 총살을 당한 판사 아버지가 매일 외우고 쓰라고 했던 것이라 했다. ‘가정의 달’을 맞아 정 교수에게 ‘크리스천의 신앙’이 뭔지를 물었다.

-4·13 국회의원 선거를 평가하신다면요.

“두 가지 측면으로 얘기할 수 있어요. 선거는 역시 축제의 장입니다. 이번에도 여실히 보여줬지요. 성군(聖君)정치를 기대하는 것보다 투표를 통해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 훨씬 더 낫다는 생각입니다. 한편으론 또 실망스럽기도 했습니다. 출마하거나 당선된 이들의 면면을 보면 참 기가 막혀요. 그들의 의식과 지적 수준이 일반 시민들의 수준보다 높지 않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지방 의회나 지방자치 단체에서 잔뼈가 굵은 정치인들이 중앙 정치무대로 진출해 좋은 정치를 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학수고대합니다.”

-정교분리 원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정치와 종교는 분리할 수 없는 중첩된 영역입니다. 그런데도 서로 자기 주권을 유지하고 확장하기 위해 정교분리를 주장하는 거죠. 헌법 전문가들도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고 합니다. 어쩌면 정치와 종교는 분리되지 않는다고 선언하고 이 문제에 대처하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을까요. 정치는 정치대로, 종교는 종교대로 어떤 역할을 어떻게 하는 것이 보다 우리 사회에 적합할 것인가 깊게 사색하고 고민해야 합니다.”

-기독당을 찍으셨습니까.

“서울 충신교회 앞에 걸려 있는 현수막 두 개가 눈길을 끌더군요. 이슬람과 동성애에 반대한다는 슬로건이더라고요. 요즘은 문화가 종교를 끌고 있는 시대입니다. 다종교시대가 아닙니다. 다문화종교시대죠. 물리적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시대죠. 지엽적인 현수막 두 개로 표를 달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 아닌가요. 좀 더 시야를 넓히고 전 국민에게 희망과 비전을 제시하고 진정으로 국민과 소통하는 정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선택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인간에게 종교는 무엇입니까.

“종교는 인간이 갈망하는 꿈의 결정체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수천년 동안 이어진 인간의 경험에서 드러난 문화의 한 모습이지요. 지금은 다종교시대가 아니고 다문화종교시대입니다. 민족에 따라서 문화도 각양각색입니다. 이에 따라 삶을 근원적으로 긍정하기도 하지만 맹목적인 환상을 부추기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서로 다른 종교 간 갈등과 대립은 충돌을 야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 경험을 절대적 준거로 해서 다른 종교를 옳다 그르다 하는 것은 성숙하지 못한 태도입니다.”

-이슬람(IS)은 왜 종교의 이름으로 테러를 자행하는 것일까요.

“이슬람은 날 때부터 이슬람신자입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지요. 그들이 자행하는 테러는 자기 자신들의 정체성을 주장하고 확산하기 위해 순교라는 이름의 독선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 폭력 안에는 순수하게 종교적인 것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정치경제적인 요인들이 얽혀 있습니다. IS의 테러에는 분명히 잘못된 종교행위가 내재돼 있습니다. 그것은 지적해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할 수밖에 없는 그들의 ‘잘못 입력된 기억’을 간과하고 폭력으로 맞서게 되면 보복의 악순환을 벗어날 수 없지요.”

-팔십이면 다 내려놓아야 한다고 하셨는데요.

“지난해 아산나눔재단 이사장직을 내려놓고 울산대 철학과 석좌교수도 이번 학기만 하고 그만두려고 해요.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새로운 길을 준비할 작정입니다.”

-어떤 준비를 하시는지요.

“하하하. 웰다잉(행복한 죽음)을 준비하려고요. 염려스러운 죽음이 아니라 보람 있는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서입니다. 불쌍하지 않고 불안하지 않으며 부끄럽지 않은 죽음을 맞이할 생각입니다. 특히 경멸스러운 죽음은 더욱 안 됩니다. 염려스러운 죽음을 맞이해서도 안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어도 우리는 세 가지의 삶에 유념해야 합니다. 먼저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유예하거나 미루거나 하지 말아야 합니다. 두 번째는 이루어지지 않는 자기의 꿈과 이상에 대해 스스로 너그러울 수 있는 여유를 갖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죽음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보람 있는 삶이 보람 있는 죽음을 낳는다는 것이군요.

“삶이 보람 있으면 죽음도 보람을 지닙니다. 사실 우리가 죽음을 논하는 것은 삶을 논의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삶이 귀하듯 죽음도 귀하고, 삶이 아프듯 죽음도 아픈 것이죠. 삶도 아름답고 죽음도 아름답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삶을 사랑하듯 마땅히 죽음도 사랑해야 합니다.”

-천국에 가시면 반드시 뵙고 싶은 분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 대전형무소에서 이슬처럼 돌아가신 아버님을 뵐 겁니다. 당시 천안지원장(판사)을 하셨는데요. 6·25전쟁 때 인민군에 희생되셨지요. 무려 3000명이 몰살을 당했는데 그중 한 분이 제 부친입니다. 훈장이나 뭐 그런 게 있느냐고요. 무슨 말씀을요. 신발 끈 하나 찾지 못했지요. 지금은 충남도청 뒤 보문산 사정공원에 무연고 650구와 함께 잠들어 계십니다. 전 사람들이 교회는 안 다니는 것은 모르겠지만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 없어요. 왜냐면 이 담에 천국 가서 아버지를 만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를 만나면 ‘겸공충묵’대로 잘 살았지만 영화 ‘국제시장’에 나오는 대사처럼 ‘근데 내 진짜 힘들었거든예’라는 말씀을 꼭 그리고 싶어요.”

정 교수의 두 눈에 눈물이 살짝 맺혔다. 하지만 금세 그의 얼굴엔 슬픔의 그림자보다는 행복한 슬픔의 미소가 피어났다. 스마트폰을 들어 최근에 아주 좋아하는 노래가 생겼다며 검색하더니 한 곡을 들려줬다. 젊은 가수 이적이 부른 ‘걱정 말아요 그대’였다. “그대여 아무 걱정하지 말아요…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우리 다함께 노래합시다/ 후회 없이 꿈을 꾸었다 말해요.”

이적의 노래가 끝나자 정 교수는 최근에 찬송가 못지않게 은혜를 많이 받은 곡이라고 극찬했다. 근 팔십년을 살아오면서 수많은 괴로움과 슬픔, 고난과 역경의 강을 건넜지만 모두가 다 지나간 대로 의미가 있다고 회고했다. “외갓집이 독실한 기독교 집안이었죠. 어린시절 성결교회에서 세례를 받았어요. 노랫말처럼 후회 없이 꿈을 꾸며 살았지요. 모든 것이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옛날 아프리카엔 캘린더가 없었다고 해요. 그래서 나이를 먹는 것을 몰라요. 하지만 우리에겐 달력을 주셨지요. 시간을 디자인하는 능력을 주신 거죠. 인간이 시간 속에 살 게 아니라 시간을 재단하면서 살라고 말입니다. 저는 요즘 나쁜 기억은 점점 사라지고 고맙고 감사하다는 기억만이 몽글몽글 피어나고 있습니다.”

약력=△1937년 충남 공주 출생 △서울대 명예교수 △대한민국학술원 회원 △'괜찮으면 웃어 주세요' '만남, 죽음과의 만남' 등 30여 권 저술

글·사진=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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