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정부 기밀해제 문서 단독 입수 <1>] CIA ‘全 축출’ 방법 제시…백악관 ‘亞 정세 영향’ 검토 기사의 사진
미국 중앙정보국이 1980년 7월 전두환 축출 계획으로 작성한 ‘가능한 정책 옵션들: 남한’ 관련 문서. 미 백악관 기밀해제 문서로 전두환에 대한 대중적 압력 강화 등 축출 계획 옵션들이 기록돼 있다. 출처=미국 디지털 국가안보 기록보관소
美정부 ‘전두환 축출’ 계획과 주도 인물

중앙정보국(CIA)의 ‘전두환 축출’ 계획을 담고 있는 미국 백악관 기밀해제 문서에 등장하는 인물은 세 명이다.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스탠스필드 터너 CIA 국장,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일했던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국대사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CIA 국장이 직접 논의

브레진스키 보좌관과 터너 국장은 카터 행정부의 외교·정보·국가안보 정책을 좌지우지한 인물이다. 이들은 교체되지 않고 지미 카터 대통령의 4년 임기를 함께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CIA 수장이 직접 전두환 축출 계획을 논의했다는 사실은 카터 행정부에서 전두환 축출 계획이 상당히 비중 있게 다뤄졌다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NSC 참모였던 그레그 전 대사는 NSC의 직속상관인 브레진스키 보좌관, 데이비드 에런 부보좌관과 한국 상황에 대해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CIA, 전두환 축출 방법론 제시

1980년 7월 3일 작성된 백악관 기밀해제 문서를 보면 CIA는 축출의 방법론을 제시했고, 백악관은 축출이 한반도는 물론 아시아 정세 전반에 미칠 영향을 검토했다. 당시 CIA는 축출 계획의 큰 틀은 마련했으나 구체적인 세부지침은 수립하지 못한 단계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문서는 두 쪽이다. 앞장에는 두 문장만 있다. 브레진스키 보좌관은 그레그에게 ‘스탠 터너가 나에게 그 기관(Agency)이 더욱 충분히 발전시킬 준비가 돼 있는 옵션들을 첨부 리스트로 보내왔다. 당신의 판단에 이 같은 공작이 의미 있는가’라고 묻는다.

브레진스키 보좌관은 다른 백악관 문서에서도 CIA 국장인 스탠스필드 터너를 스탠 터너로 줄여 부르곤 했다. 여기서 그 기관이란 CIA를 가리킨다.

뒷장에는 ‘가능한 정책 옵션들: 남한’이라는 제목 아래 세 가지 축출 옵션이 적혀 있다.

‘Ⅰ. 민간인들에게 권력을 이양하고 모든 공직에서 사퇴시키기 위해 전두환에 대한 대중적 압력을 강화한다.

Ⅱ. 불만을 표시하기 위해 또는 전두환에게 옵션 Ⅰ(권력 이양과 공직 사퇴) 요구의 수용을 압박하기 위해 주한미군을 감축한다.

Ⅲ. 전두환에게 옵션 Ⅰ 요구를 따르라고 은밀히 압력을 가하는 것을 계속한다.

주한미군 감축은 미국이 한국을 겁줄 때 항상 꺼내 든 압박수단이었다. 하지만 이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다면 미국의 남한 지지가 약해졌다고 판단한 북한의 도발을 우려했을 것으로 관측된다.

브레진스키 보좌관이 그레그에게 검토를 지시한 8가지 변수에는 ‘(한국에서) 보다 민주적 체제를 향한 진전’, ‘미국·일본 관계’, 당시 ‘미국·소련 관계’도 포함됐다.

최규하 대통령을 ‘포스트 전두환’ 대안으로 모색했나

당시 국제적인 냉전 체제에서 미국은 한국의 민주화보다 한반도의 안정이 더 중요했다. 미국은 제3세계에서 민심을 잃은 지도자가 등장했을 때의 결말을 베트남과 이란에서 처절히 경험했다. 이들 나라에서 미국의 국익은 철저히 파괴됐다. 한국에서 똑같은 실패를 겪지 말아야 한다는 절박감이 전두환 축출을 계획한 이유로 파악된다.

첫 번째 옵션에 있는 ‘민간인들에게 권력 이양’은 그런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미국은 전두환 축출 이후 국민의 거부감이 적은 인물을 내세울 계획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3김’을 포함한 민간 정치인들은 전두환 신군부의 탄압으로 싹이 말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사형선고를 받았다. 김영삼 신민당 총재는 정계은퇴를 선언했고 김종필 공화당 총재는 모든 공직에서 물러났다.

그렇다면 남은 인물은 최규하 당시 대통령밖에 없다. 미국은 최 대통령이 전두환의 꼭두각시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노력했으나 최 대통령 특유의 우유부단한 태도 때문에 여러 차례 실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군부 실력자를 축출한 뒤 현직 대통령을 내세우는 것이 가장 안정적인 방법이라고 판단했던 것 같다. 미국이 ‘민간인’이 아닌 ‘민간인들’이라는 복수형을 사용한 것을 보면 최 대통령 중심의 집단지도체제를 구상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가능하다. 하지만 최 대통령도 80년 8월 16일 하야했다.

블루밍턴(미국 인디애나)=하윤해 기자 justi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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