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정부 기밀해제 문서 단독 입수 <1>] “까마귀 대체할 백로를 찾을 수가 없었다” 기사의 사진
전두환 전 대통령이 1980년 9월 1일 제11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대통령직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선서하고 있다. 하극상에 의한 쿠데타 이후 8개월 반이 지난 시점이어서 '세상에서 가장 오래 걸린 쿠데타'라는 얘기가 나왔다. 문화체육관광부 '대한민국 정부 기록사진집' 발췌
카터 행정부의 대한(對韓) 정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나라는 이란이었다. 중동의 대표적 친미국가였던 이란은 1979년 2월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린 이슬람 혁명으로 반미국가가 됐다. 카터 행정부는 반미감정 고조로 한국이 ‘제2의 이란’이 되는 것을 실제로 매우 두려워했다.

반미감정 우려에 대안부재까지

아무리 세계 최강대국이라도 다른 나라의 실권자를 축출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전두환 당시 국보위 상임위원장이 축출에 강력히 저항할 것은 불 보듯 뻔했다. 전 위원장에게는 강력한 무기가 있었다. 그것은 민족주의와 반미감정의 결합이었다.

한국 전문가 돈 오버도퍼는 자신의 저서 ‘두 개의 한국’에서 윌리엄 글라이스틴 당시 주한 미국대사가 12·12사건 이후 ‘우리가 충분히 나서지 않으면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반면에 우리가 일정한 선을 넘으면 강력한 국수주의적 반발이 초래될 수 있다. 이는 매우 어렵고 애매한 문제다’라고 토로하는 전문을 워싱턴에 보냈다고 썼다. 미국은 전 위원장이 자신을 미국의 내정간섭의 희생자로 연출한 뒤 반미감정을 자극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봤다.

국민적 지지를 받는 다른 정치세력이 보이지 않았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요인이다. 대안 부재였다. 글라이스틴 전 대사는 워싱턴 일부 인사들이 한국 군부 내 반(反)전두환 세력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자 ‘우리가 제거하려는 까마귀를 대체할 완전히 신뢰할 수 있는 백로를 찾을 수 없다’면서 반대 의사를 재차 강조했다고 회고록에 썼다.

축출 공작이 한반도에 엄청난 재앙을 몰고 올 수 있다는 우려도 컸다. 미국은 역(逆) 쿠데타로 한국 군부 내 심각한 유혈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고 분석했으며 이런 혼란 상황을 틈타 북한이 도발할 가능성도 있다고 예상했다.

전 위원장은 빠르게 자기 세력을 확대했다. 미국은 전두환 반대세력이 신분적으로는 학생과 노동자, 지역적으로는 호남에 국한됐다고 평가하며 전두환체제를 맞이할 준비를 했다.

이란 주재 미국대사관 인질 사건이 일등 공신

전두환 축출 계획이 담긴 백악관 문서는 80년 7월 3일 만들어졌다. 넉 달 뒤인 11월 4일 미국 대통령 선거가 실시됐다. 축출 계획을 실행하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위험 부담도 컸다. 만약 실패라도 했다가는 대선은 치르나마나 결과가 뻔했다.

이란 주재 미국대사관 인질 사건은 전두환 축출 계획이 사장(死藏)되는 데 일등 공신이다. 79년 11월 4일 이란 과격파 학생 시위대는 미국이 신병 치료를 이유로 팔레비의 입국을 허용한 것에 분노, 테헤란에 있는 미 대사관에 난입해 외교관과 가족 등 90여명을 인질로 억류했다.

미국 CIA와 백악관이 전두환 축출 계획을 검토했을 때도 인질들은 이란에 잡혀 있었다. 카터 행정부가 한국에서 거대한 공작을 추진하기에는 한계가 분명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국이 80년 4월 25일 감행한 인질 구출 작전은 작전에 투입됐던 헬기와 급유기의 충돌로 8명의 사망자만 낸 채 끝났다. 미국은 국제적 망신을 샀다. 전두환 축출 계획은 이렇게 설 땅을 잃어갔다.

이란은 여성 등 일부를 석방하고 끝까지 인질로 잡고 있던 52명을 억류 444일 뒤인 81년 1월 21일 풀어줬다. 이날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취임식이 열린 날이었다. 한·미 간 정치적 빅딜이 성사된 날이기도 하다. 백악관은 이날 전 대통령의 방미를 공식 발표했다. 전두환체제를 인정하겠다는 의미였다. 전 대통령은 이틀 뒤인 1월 23일 내란음모 등으로 사형 선고를 받았던 김대중 전 대통령을 무기징역으로 감형했다. 1월 24일엔 비상계엄을 해제했다. 미국행 티켓의 대가였다. 이렇게 전두환 축출 계획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블루밍턴(미국 인디애나)= 하윤해 기자 justi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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