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정부 기밀해제 문서 단독 입수 <1>] 美, 1980년 7월 ‘전두환 축출’ 검토했었다 기사의 사진
미국 중앙정보국의 ‘전두환 축출’ 계획을 담은 백악관 기밀해제 문서. 백악관의 영문명 ‘The White House’ 아래 문서 작성 시점인 1980년 7월 3일이 쓰여 있다. 문서의 수신자는 당시 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한국 전문가로 활동했던 도널드 그레그이며 발신자는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다. 출처=미국 디지털 국가안보 기록보관소
미국 카터 행정부 당시 중앙정보국(CIA)이 1980년 7월 ‘전두환 축출’을 검토했었다는 사실이 백악관 기밀해제 문서를 통해 3일 확인됐다. 이 시점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대통령 취임 두 달 전이지만 그가 국보위 상임위원장과 국군보안사령관을 겸임하며 사실상 한국을 통치하고 있던 때다.

CIA는 전두환 축출 계획을 백악관에 보고하며 ‘전두환에 대한 대중적 압력 강화’ ‘주한미군 감축’ 등을 축출 수단으로 제시했다.

전두환 축출설이 제기된 적은 있으나 미국 주도의 전두환 축출 시도를 입증하는 백악관 문서가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같은 사실은 국민일보가 미국 디지털 국가안보 기록보관소(Digital National Security Archive) 등에서 입수한 미 정부 기밀해제 문서를 통해 드러났다.

‘가능한 정책 옵션들: 남한’이라는 제목의 백악관 문서는 CIA의 전두환 축출 계획을 담고 있다. 80년 7월 3일 작성됐다. 문서는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당시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한국 전문가로 활동했던 도널드 그레그에게 스탠스필드 터너 CIA 국장이 보고한 계획을 전달하며 그의 판단을 묻는 형식으로 구성됐다.

CIA는 전두환 축출을 위해 ‘첫째, 전두환에 대한 대중적 압력을 강화한다. 둘째, 주한미군을 감축한다. 셋째, 전두환에게 은밀히 퇴진 압력을 가하는 것을 계속한다’는 정책 옵션을 제시했다.

특히 브레진스키 보좌관은 이 축출 수단들을 CIA가 ‘더욱 충분히 발전시킬 준비가 돼 있는 옵션들’이라고 표현했다. 계획이 승인됐다면 CIA가 중남미 국가에서 체제 전복을 시도했던 것처럼 한국에서도 전두환 축출 공작을 본격 추진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대목이다.

이는 ‘대중적 압력 강화’라는 첫째 옵션과도 맞물린다. CIA가 시위나 파업 등 반(反)전두환 움직임을 배후에서 조직하고 선동할 의도가 있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전두환 국보위 상임위원장이 대통령에 오르기 전이었기 때문에 미국은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축출 계획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브레진스키 보좌관은 8가지 변수를 고려해 CIA의 옵션들을 검토하라고 그레그에게 지시했다. 변수는 ‘한국의 장기적 안정성’, ‘한·미 관계’, ‘북한 반응’, ‘중국 반응’은 물론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 반응’ 등 광범위했다. 이는 백악관이 한반도를 넘어 전체 아시아 수준에서 전두환 축출 계획을 검토했다는 방증이다.

‘전두환에게 은밀히 퇴진 압력을 가하는 것을 계속한다’는 옵션은 CIA가 80년 7월 당시 비밀스러운 경로를 통해 이미 전두환에게 사퇴 압력을 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카터 행정부는 12·12사건과 5·18광주민주화운동으로 민심을 잃고 정통성을 상실한 전두환 체제가 한반도에서 미국의 이익을 지키는 데 부적합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축출을 검토한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카터 행정부는 당시 한국과 미국의 상황을 고려해 계획을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 카터 행정부는 전두환 정권의 강력한 저항, 대안 부재, 또 다른 쿠데타로 인한 군부 내 유혈충돌 등을 우려해 계획을 실행에 옮기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미 국내적으로도 80년 11월 대선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고, 당시 미국을 뒤흔들었던 ‘이란 미국대사관 인질 사건’은 카터 행정부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문서 수신자였던 그레그 전 주한 미국대사는 국민일보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그 문서에 대해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블루밍턴(미국 인디애나)=하윤해 기자 justi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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