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人터뷰]  김판수씨 “멸종 위기 백두대간 식물… 우리 삶 속에서 보전해야” 기사의 사진
김판수씨는 지난달 28일 자신의 정향나무 농장에서 “정향나무 등 토종 라일락을 기를 때 싹을 틔우고 나서 3∼4년간은 주변의 잡초도 뽑고 관리를 해 주지만 그 후에는 다른 식물들과 경쟁하면서 크도록 내버려둔다”고 말했다. 해발고도가 낮은 김씨 농장에서는 보통 4월 중순부터 5월 초까지 수수꽃다리, 4월 하순∼5월 초순 섬개회나무, 5월 초∼중순 정향나무, 5월 하순∼6월 초순 꽃개회나무, 5월 말∼6월 중순까지 개회나무가 20일 정도씩 릴레이로 개화한다. 단양=구성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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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종자전쟁 중이다. 품종개량 혹은 육종이라는 명분 하에 야생의 식물 종에 유전적 변형을 가하여 특허를 취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일찍이 이 땅의 정향(丁香)나무, 구상나무, 원추리 등의 종이 해외로 유출되어 그런 유전적 변형과 특허의 희생양이 됐다. 귀농인 김판수(53·정향나무 농장 대표)씨는 그중 관상수로서 세계적으로 호평받는 미스김라일락의 원종인 정향나무를 처음으로 대량 증식하는 데 성공했다.

중앙일간지 환경담당 기자 출신인 김씨는 야생에서 받은 종자를 발아시켜 충북 단양군 금곡리 소백산 기슭에 자가 채종과 파종 및 묘목이식 등을 통해 정향나무 2만6000여 그루를 증식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백두대간의 해발 1300m 이상 능선에 주로 서식하는 정향나무의 해발 200m 저지대 증식 성공은 한반도에서 북방계 (아)고산식물들이 앞으로 닥칠 멸종위기를 모면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김씨는 그 밖에도 흰정향나무, 꽃개회나무, 섬개회나무, 흰섬개회나무, 개회나무, 수수꽃다리 등 6종, 4000여 그루를 같은 방식으로 증식했다. 이로써 개체 수가 줄고 있는 물푸레나뭇과 수수꽃다리속의 ‘토종 라일락’ 7종의 서식지 외 보전의 틀이 마련됐다.

끝물인 수수꽃다리 꽃향기가 은은하고, 정향나무 꽃봉오리가 막 맺히기 시작한 지난달 28일 정향나무 농장에서 김씨와 2시간 동안 인터뷰를 진행했다.

-굳이 정향나무를 대량 증식해 보겠다고 생각한 계기는.

“나는 귀농하기 이전에 한 일간신문에서 환경담당 기자를 꽤 오랫동안 한 적 있다. 취재 과정에서 정향나무종이 미국으로 유출돼 미스김라일락으로 개량된 이후 미스김라일락은 관상수로서 세계적으로 널리 퍼지고, 심지어 국내로까지 역수입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게다가 미스김라일락의 원종인 정향나무가 우리의 야생에서 날로 개체 수가 줄어들어 멸종위기에 이르게 된 현실이 안타까웠다. 유전적으로 순수한 원종은 야생에서 멸종으로 치닫고 있는 데 반해 그 개량종은 지구상에서 널리 퍼져 번성한다는 것도 불쾌했다.”



-정향나무를 모르는 사람이 많다. 특히 서양에서 들여온 미스김라일락을 정향나무로 부르기도 하는데 라일락과 정향나무의 유전적 계통이 어떻게 다른가.

“정향나무가 백두대간 능선의 높은 곳에서 자생하다 보니 이 나무를 접할 기회가 거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국립수목원 등 유명 수목원에 가면 표본수로 몇 그루씩 심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면 미스김라일락이나 왜성(矮性·키 작은) 라일락을 정향나무라고 부르면서 매매하거나 기르고 있다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무지와 오해 때문이다. 미스김라일락은 정향나무를 대상으로 키가 작아지도록 미국에서 인위적으로 육종된 것이고, 정향나무는 비록 개체 수가 줄고 있지만 여전히 한반도 백두대간에 자생하고 있다. 국가표준식물목록에도 이 둘은 엄연히 다른 종으로 구분되어 있다.”



-중앙일간지 기자를 그만둔 지 10년이 다 돼 간다. 정향나무 증식에 오랜 시간을 투자했는데 어려움은 없었나.

“토지를 구입해 본격적으로 파종하기 시작한 것은 2007년부터다. 정향나무의 생육과 번식에 관한 사전지식이나 전례가 없어 시행착오가 많았다. 내게 증식 작업은 이 나무의 번식과 생육을 공부하는 일이기도 했다. 이제 제법 많은 지식이나 노하우가 쌓였다. 지난해 중부지방에 가뭄이 심했는데, 이곳 농장도 예외가 아니었다. 정향나무와 섬개회나무의 1년생 묘목 약 5000그루가 가뭄에 고사하고 말아 안타까웠다.”



-대량 증식에 성공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나.

“야생에서 채종한 씨앗을 최초로 파종했더니 발아율이 10%에도 미치지 않았다. 100여개를 파종했을 때 싹을 틔운 것이 10개 미만이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싹을 틔운 개체를 5년쯤 키워 그 종자를 파종했더니 발아율이 높아지는 것을 확인했다. 2004년 꽃이 피는 성목(成木)으로 키워낸 8그루를 밑천으로 2007년부터는 매년 자가 채종, 파종, 발아, 묘목이식 등의 과정을 거쳤다. 그 결과 지금은 발아율이 30%를 웃돈다. 일단 발아되기만 하면 어미 나무로 자라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 발아율이 해를 거듭할수록 높아진다는 것은 새로운 환경에 무난히 잘 적응하고 있음을 뜻한다.”



-증식된 토종 라일락들은 대개 아고산식물인데 우리 생활 속에 대중화될 수 있을까.

“이미 서울과 충북, 그리고 남부지방의 정원에 심어봤다. 해발 200m인 내 농장에서 지금까지 잘 자라고 있으며, 꽃을 피우고 씨앗까지 남겨 번식에도 성공했다. 여느 식물과 마찬가지로 햇빛이 잘 들고, 물 빠짐이 좋은 토양이라면 어디든 잘 자란다. 내가 증식한 토종 라일락 7종은 18년 동안 고도가 낮은 환경에서 적응했기 때문에 생육과 번식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렇다면 멸종 위기에 처한 백두대간의 다른 식물도 우리 생활 속의 낮은 지역에 적응할 수 있다는 것인가.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정향나무와 꽃개회나무를 증식하면서 체득한 경험이다. 이를테면 만병초와 노랑만병초, 월귤, 구상나무, 분비나무 등의 여러 북방계 수종들도 멸종 위기에 있지만 오랜 시간 적응시키면 우리의 생활 속으로 데려올 수 있을 것이다. 기후변화 핑계를 대면서 토종 식물의 멸종이나 개체 수 감소를 당연시해서는 안 된다. 한반도의 (아)고산대 식물은 약 1만8000년 전까지 지속된 마지막 빙하기에 번성했지만, 그 후 기온이 높아지면서 지금까지 이어진 간빙기 동안 서식범위가 백두대간 고지대의 생태섬으로 좁아진 것이다. 이는 비교적 낮은 위도에서 기후변화와 싸우는 북방계 식물이라는 독특한 생태적 지위가 아닐 수 없다.”

-백두대간 야생에서 정향나무가 차츰 사라지고 있다는데.

“그렇다. 나는 1999년 봄 금강산 관광에서, 그리고 2005년 백두산(중국 쪽)에서 그 나무의 큰 군락을 본 적 있다. 남한보다는 북한에 이 나무가 더 많은 편이다. 남한에서는 설악산과 향로봉에 군락이 몇 군데 있을 뿐 대부분 사라져버렸다. 지리산에도 수십년 전에는 꽤 큰 군락이 있었지만 지금은 거의 사라지고 몇몇 개체만이 띄엄띄엄 자랄 뿐이다. 서울 근교 북한산에도 1980년대 중반 이 나무가 꽤 많이 자생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 정향나무와 꽃개회나무가 산림청 지정 희귀식물이기는 하지만, 토종 라일락 7종 모두가 멸종위기종 등 법적 보호종은 아니다. 섬개회나무 등은 법적 보호를 받아야 한다.”

(환경단체 ‘우이령사람들’의 이병천 회장은 “증식된 정향나무가 라일락과 개량종이 많은 수수꽃다리 대신 정원수나 조경수로 널리 보급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토종 라일락의 종 보전을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가장 시급한 것은 수수꽃다리속의 여러 종에 대한 분류를 명확히, 체계적으로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정향나무와 흰정향나무가 과연 별개의 종으로 분류돼야 하는지 나의 경험으로 보자면 좀 회의적이다. 정향나무의 꽃 색깔은 보라색인데, 그 개체로부터 씨앗을 받아 파종해 길렀더니 간혹 흰색의 꽃이 피기도 한다는 것을 경험했다. 또 종 보전 차원에서 분포 지역, 생육 특성 등에 관한 면밀한 연구나 조사가 필요하다. 특히 강원, 경북, 경남 등의 내륙에 소규모의 정향나무 군락이 몇 군데 있는데, 그런 군락이 훼손되지 않도록 보전해야 한다. 또한 정향나무와 꽃개회나무가 주로 자생하는 설악산 등 백두대간 능선이 근래 등산객의 증가, 케이블카 건설 등으로 급속히 훼손되거나 훼손될 우려가 있는데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만약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토종 라일락의 증식에 나선다면, 증식 과정에서 익힌 나의 경험이나 노하우를 보잘것없지만 기꺼이 제공하겠다.”



-관상수로서 토종 라일락을 외래종과 비교한다면.

“지난 한 세기 동안 우리가 걸어온 서구화를 식물로 대변한다면 단연 라일락일 것이다. 이 땅에는, 심지어 박물관이나 고궁에도 수많은 라일락이 심어졌고, 우리는 그 서양의 꽃과 향기로 힐링해 왔다. 대중가요 가사에도 라일락이 자주 등장한다. 이제 정향나무 등 토종 라일락으로 힐링해 보자고 감히 제안한다. 왜 토종을 외면한 채 굳이 외래종으로만 꽃의 아름다움과 향기를 즐겨야 하는가. 정향나무 꽃의 아름다움은 라일락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정향나무는 개량 품종이 아닌 자생종으로서 꽃송이의 크기는 라일락보다 작지만, 한 나무에서 맺히는 꽃송이 수는 더 많다. 그리고 정향나무는 꽃의 지속 기간이 길다. 향기도 정향나무가 라일락에 못지않다.”

(국립공원연구원의 오장근 박사는 “우리나라의 4월말부터 6월말까지는 높은 산의 철쭉 이외에 이렇다 할 꽃이 없는 시기”라며 “20일 정도씩 오래 피어 있는 정향나무, 꽃개회나무 등이 정원수나 가로수 등으로 보급되면 이 시기를 대표하는 꽃으로 각광받을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토종 라일락을 널리 보급하기 위한 특별한 계획이 있다면.

“정향나무 등 토종의 관상 가치를 널리 소개할 계획이다. 혈통으로 보자면 개량 품종은 시쳇말로 ‘짝퉁’이고, 정향나무가 ‘진품’이지 않은가. 보급을 위해서는 가격도 낮아야 한다. 정향나무 5만 여 개 등 토종 라일락 6만여 개의 종자를 매년 확보할 수 있게 된 만큼 개량 품종보다 훨씬 더 저렴한 값에 내놓을 계획이다. 이들 토종라일락이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라일락과 공존하게 되길 바란다.”

만난 사람=임항 논설위원 hngl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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