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영 칼럼] 보여주기식 골프회동은 이제 그만 기사의 사진
지난달 30일 유일호 경제부총리와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등 경제단체장들의 골프 회동은 여러모로 찜찜했다. 모임은 박근혜 대통령이 편집·보도국장과의 만남에서 골프 해금을 언급한 지 불과 4일 만에 이뤄졌다. 경제단체의 제의로 성사됐으며 명분은 내수 진작이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매년 2조원가량 소비되는 해외 골프비용을 국내서 쓰게 하자는 것이다. 골프가 금기가 아니라는 것을 정부가 먼저 보여줌으로써 소비의 물꼬를 트게 하자는 의도였다.

그러나 너무 구태의연한 발상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명목은 그럴듯했지만 효과는 기대하기 힘든 보여주기식 모임이었다. ‘공무원 골프 허용=소비심리 자극=내수 촉진=경기 활성화’의 등식부터 틀렸다. 지난 한 해 국내 골프장 이용객은 연인원 3000만명이 넘었다. 제법 돈이 드는 운동임에도 사실상 대중화됐다는 얘기다. 올해는 100만명 정도 더 늘어날 것 같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정부가 외치지 않아도 골프는 이미 국내 소비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셈이다. 공무원의 골프와 경기활성화가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명확한 자료도 없다. 기획재정부가 추산한 해외골프 비용 2조원은 정부 짐작대로 ‘따가운 시선이나 손가락질을 피하기 위해’ 출국하는 사람들 때문이 아니다. 호텔 수준의 비싼 음식값, 과도한 카트 비용 등 국내 골프장의 값비싼 비용을 피하고 해외에서의 라운딩을 경험해 보고자 하는 목적이 더 많다.

이날 모임이 이해되지 않는 이유가 또 있다. 참석자들 중 허 회장과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소유의 골프장이 있음에도 굳이 남여주CC를 찾았다는 점이 개운치 않다. 상대적으로 돈이 적게 드는 퍼블릭 골프장을 이용했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한 목적인 듯하나 어색하다. 평소 고급 승용차로 출퇴근하다가 사진기자들이 몰리자 갑자기 지하철을 타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부킹 과정도 이해되지 않는다. 이 골프장은 라운딩 2∼3주 전부터 인터넷 부킹 접수를 받는데 주말의 선호하는 시간대는 경쟁률이 보통 수십대 일이 넘는다. 예컨대 3일 오후 현재 21일(토) 오전 10시대의 부킹 경쟁률은 최고 151.2대 1이다. 골퍼들은 남여주CC 주말 부킹에 성공하면 로또에 당첨됐다고 비유할 정도다. 대통령 발언 이후 며칠 만에 무슨 수로 주말 황금시간대에 두 팀의 라운딩이 가능했는지 궁금하다. 이 과정에서 관의 입김이 작용한 것은 아닌지 알 수 없다.

압권은 기재부 보도자료다. 기재부는 “(참가자들이) 라운딩 후 (골프장 근처의) 영릉(세종대왕릉) 방문을 통해 세종대왕의 창조경제 정신을 확인했고, 한식당 오찬을 통해 K푸드의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내가 본 최고의 골프 헌사다.

경제는 심리에 의해 작동되는 생물로 비유되곤 한다. 소비주체의 마음이 경제 활동에 결정적이란 설명이다.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진정성에 바탕을 둔 소통이지 쇼맨십이 아니다. ‘3일 반란’으로 끝났지만 한국은행 일개 부총재보가 대통령까지 강조한 ‘한국형 양적완화’를 치받은 이유가 뭘까. 한은의 고유 역할에 충실하자는 것이 주원인이었겠지만 총재조차 신문을 보고 내용을 알 정도로 철저히 자기들을 무시한 데 대한 반감이 작용했을 가능성도 적지 않을 것이다. 정부 부처가 중앙은행의 심정도 헤아리지 않는데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일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대량 실업이 임박한 상황에서 ‘내수’ 운운하며 골프를 치자는 사회지도층을 보며 ‘아, 이제부터 골프도 치고 소비도 좀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런 류(類)의 골프회동 같은 클리셰가 반복된다고 내수가 살아나지 않는다.

정진영 논설위원 jy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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