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 황주리의 나의 기쁜 도시] 사라예보의 봄 기사의 사진
황주리 그림
오래전 꿈에 그리던 발칸반도 여행을 했다. 10년 전만 해도 그곳은 이름만 들어도 신비로운 곳이었다. 1990년 소련이 붕괴되면서 유고 연방이 해체되는 과정 중 1992년 4월 보스니아 내전이 발발했다. 그때부터 텔레비전을 통해 안타까운 마음으로 비극적인 소식을 접했던 나는 1995년 처참했던 전쟁이 끝난 10년 뒤인 2006년에 드디어 발칸여행을 했다.

루마니아 불가리아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슬로베니아 등 이름만 들어도 아름다운 나라들을 두루 돌아보고 돌아와서 한동안 눈에 밟힌 곳은 내전의 상처로 얼룩진 보스니아 사라예보의 풍경이었다. 10년 전의 전쟁의 추억에 관해 젊은이들에게 물으면 밝은 얼굴로 답했다. 학교 수업 중에 폭격소리가 들리면 숨어 있다가 집으로 돌아갔다고.

2010년 다시 가본 사라예보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그 아름다운 우리나라 꽃들을 뒤로한 채 남의 나라꽃들을 구경하는 게 아쉽기도 했지만, 세상 어디나 봄은 왔고, 꽃들은 다투어 피었다. 유럽 문화와 이슬람 문화가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매력적인 도시 사라예보는 전에 갔을 때보다 밝아 보였다. 진짜 세월이 약이었을까? 가족 중 누군가를 잃은 사람들이 대부분인 슬픈 도시 사라예보에도 봄이 와서 온 세상이 울긋불긋했다. 가운데 내륙 평지를 뺑 둘러싼 산들 위에 조그만 집들이 빼곡한 동화처럼 아름다운 도시 사라예보는 마치 우리 동요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을 생각나게 했다.

중앙시장이라는 뜻의 ‘바슈카르지아’는 상점과 카페들이 밀집되어 있는 매력적인 골목들이 이어진다. 지금은 평화롭기 짝이 없는 골목들을 천천히 거닐며 나는 산 위에서 쏘아대는 총소리를 들었다. 산꼭대기로 둘러싸인 분지 스타일의 특이한 지형 탓에 일거수일투족이 적에게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 전쟁 당시 사람들은 땅굴을 파서 그곳을 빠져 나가고, 음식과 물을 들여왔다 한다. 세르비아 무장 군인들이 산 위를 모두 점령하고 꼼짝없이 포위된 산 아래 평지에 사는 민간인 회교도들을 향해 허구한 날 총을 쏘아대던 4년 동안의 내전의 상처가 겉으로는 다 아문 듯 보였지만 그럴 리 없었다. 60여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여기저기 고름이 흐르는 한국전쟁의 상처도 불현듯 생생했다.

보스니아 내전이 끝난 지 15년째였다. 내전 중 ‘인종청소’라는 명목으로 세르비아 군에게 집단 강간을 당했던 수많은 보스니아 이슬람계 여인들은 집단 수용되어 원치도 않는 아이를 낳았다. 출생의 비밀을 모르는 채 자라기도 했을 그 아이들 또한 이제는 스무 살이 넘은 젊은이가 되었을 것이다. 보스니아의 젊은 여성 감독 ‘야스밀라 즈바니치’의 영화 ‘그르바비차’가 생각난다. ‘그르바비차’는 보스니아의 수도인 사라예보의 한 작은 마을의 이름이다. 이 영화는 보스니아 내전이 남긴 참혹한 상처의 흔적들과 그 흔적을 이겨내려는 아름다운 사람들의 마음을 잔잔하게 그려내고 있다. 깨진 유리창들과 폐허가 된 건물들이 10년이 넘도록 방치된 채 남아 있던 폐허의 풍경들이 떠오른다.

여주인공 에스마는 보스니아 내전 당시 세르비아계 군인들에게 윤간을 당해 딸 사라를 낳는다. 힘든 일상을 견디며 오직 딸을 위해 살아가는, 어머니의 딸에 대한 애증이 교차하는 장면들이 가슴 찡했다. 열두 살이 된 딸 사라는 아버지가 전사한 전쟁영웅이라고 믿고 있다. 전사자 가족에게는 수학 여행비가 면제된다며 아버지의 전사 증명서를 달라고 떼를 쓰는 딸을 향해 어머니는 끔찍한 비밀을 이야기해 버린다. 출생의 비밀을 알아버린 사춘기 소녀가 그 현실을 극복할 수 있을지 생각만 해도 마음이 무거웠다. 만일 내가 저 영화 속 엄마라면, 동시에 딸이라면 하는 생각들이 꼬리를 물었다. 영화는 시대적 비극 속의 여성의 아픔을 그려내면서 동시에 강간당한 2만여명의 보스니아 여성들과 목숨을 잃은 10만여명의 보스니아인들의 기억을 일깨운다. 영화 ‘그르바비차’는 엄마와 딸이 서로를 이해하며 고통을 함께 헤쳐 나가는 가장 가까운 존재임을 암시하면서 끝이 난다.

문득 쓸쓸한 사라예보의 아름다운 구시가지 풍경이 눈에 선하다. 아직도 불씨를 지닌 보스니아 내전은 우리에게는 이미 잊힌 전쟁이다. 세상에는 매일 다른 전쟁이 일어나고 있고, 오늘도 극단적 이슬람 무장단체 IS의 폭력이 온 세상을 난무하는 국경 없는 전쟁 중이다. 그래도 세상 어디에나 흐드러지게 핀 꽃들을 바라보며, 나는 문득 머리에 꽃을 꽂고 반전을 외치며 걸어가는 60년대 히피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flower children’이라 불리던 그들처럼 나도 머리에 꽃을 꽂고 반전을 외치며 세상의 모든 길들을 걸어가고 싶었다.

황주리 (서양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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