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전석운] ‘세계 깡패’ 되겠다는 트럼프 기사의 사진
미국 공화당의 사실상 대선후보 도널드 트럼프는 ‘철새’ 정치인이다. 지난 30년간 6번 소속 정당을 바꿨다. 1987년 이전까지는 민주당원이었다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10년간 공화당원으로 활동했다. 그러다 1999년 억만장자 로스 페로가 만든 개혁당의 대선후보 경선에 참여했다. 2년 만에 개혁당을 탈당하고 이후 민주당원으로 지냈다. 2009년엔 다시 공화당으로 옮겼다가 2년 간격으로 탈당과 복당을 반복했다.

정치적 입장은 당적이 바뀔 때마다 달라졌다. 민주당 시절에는 낙태를 찬성했으나 공화당 경선 후보가 되면서 낙태 반대론자로 변신했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과거 낙태설이 돌자 낙태 여성을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역풍이 일자 불과 몇 시간 만에 번복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도 민주당원 시절에는 지지했다가 공화당 대선 경선 이후 입장을 바꿨다. 개혁당 시절에는 미국의 대외 군사개입을 절제해야 한다는 주장에 동조했으나 지금은 미군의 해외파병에 대한 입장이 모호하다.

그런 그가 일관되게 주장하는 게 있다. 한국의 방위비 인상 요구다. 한국의 안보를 미군이 지켜주는데 한국은 돈을 내지 않는다고 우기고 있다. 2011년부터 이런 주장을 편 트럼프는 공화당 경선 내내 같은 주장을 반복했다. 최근 CNN과의 인터뷰에서 앵커 울프 블리츠가 ‘한국은 주한미군 인적 비용의 절반 이상을 내고 있다’는 빈센트 브룩스 주한미군사령관의 발언을 소개하자 트럼프는 “왜 100%가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트럼프는 한국뿐 아니라 일본과 독일 등 미국의 전통적인 동맹국들에 모두 미군 주둔 비용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트럼프는 미국이 경제적 형편에 어울리지 않게 대외 군사 활동을 과도하게 벌이고 있기 때문에 줄여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이런 생각이 ‘미군의 주둔이 필요하면 동맹국들이 더 많은 돈을 내라’는 요구로 이어지고 있다.

동맹국들에 군사비를 떠넘기겠다는 트럼프의 주장은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로 포장돼 미국인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여론조사기관인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미국이 남의 나라 문제에 신경 쓰지 말고 다른 나라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해야 한다’는 견해에 57%가 동의했다. ‘미국이 다른 나라를 도와야 한다’는 응답은 37%에 그쳤다. “미국이 더 이상 세계의 경찰 역할을 할 수 없다”는 트럼프의 주장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은 것이다. 하지만 미군의 주둔비용을 모두 동맹국들에 떠넘기겠다는 트럼프의 거친 공약은 도가 지나쳤다. 그의 주장은 ‘세계의 경찰’을 포기하는 대신 ‘세계의 깡패’가 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미군철수와 비용인상을 흥정한다면 미국의 영향력을 위축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트럼프는 한국과 일본에 핵 무장을 허용할 수 있다고 발언해 미국 정부의 입장과 전혀 다른 주장을 폈다. 한국과 일본이 돈을 더 내놓지 않으면 군대를 철수하고 핵우산을 제공하지 않을 것이라는 협박성 발언이지만, 그의 핵 무장 허용 발언은 미국 자신이 만든 전후 국제 질서를 뒤흔들어놓을 수 있다.

한국이 핵무장에 나서려면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하고, 미국과 체결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협정도 깨야 한다. 그로 인한 부작용들을 감수하더라도 세계 원자력 6대 강국으로 꼽히는 한국이 핵무장에 나서면 단기간에 북한보다 훨씬 많은 핵무기를 생산할 수 있기 때문에 북한의 핵 위협에 대한 억지력이 생길 수 있다. 한국의 핵무장으로 미국 본토를 겨냥하는 북한 핵미사일 발사의 위협이 줄어든다면, 미국은 거꾸로 한국에 안보비용을 지불할 것인가.

워싱턴=전석운 특파원 swchun@kmib.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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