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공병호] 구조조정의 역사적 경험 기사의 사진
“조선업은 고용을 비롯해 경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무척 고민된다.” 경제 수장의 이 같은 발언은 대규모 인력 조정을 요구하는 구조조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선택인지를 말해준다. 과연 조선업계가 과감한 구조조정 없이 극심한 불황의 파고를 넘어설 수 있을까.

역사적 경험에서 해답을 찾아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현재 현대중공업이 소유하고 있는 대형 크레인 가운데 하나인 1500t급 대형 크레인(높이 128m)은 2002년 9월 단돈 1달러에 스웨덴 코쿰스(KOCKUMS)로부터 인수한 것이다. 한때 ‘코쿰스 크레인’으로 불렸던 이 크레인은 1972∼73년에 걸쳐 제작된 것으로 코쿰스가 위치한 말뫼시의 랜드마크였다.

스웨덴 조선업계는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조선 경기를 낙관했지만 1970년대 중반부터 고전을 면치 못했다. 정부는 막대한 보조금과 구제금융을 지원하면서 스웨덴 조선업계의 고용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게 된다. 하지만 정부 보조금이 끊어지는 1985년을 기점으로 조선 업체들의 도산이 이어지게 되는데 코쿰스도 1987년 파산하고 만다.

스웨덴 조선업계의 위기는 오늘날 한국 조선업계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당시 오일쇼크 이후 세계 경제의 물동량이 크게 줄어든 것이 충격을 주었다. 이른바 외부 환경의 변화를 들 수 있다. 그러나 내부적으로 스웨덴 업체들이 탄탄한 경쟁력을 갖고 있었다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1970년대 중반 스웨덴 조선업은 경쟁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아진 생산비용 때문에 고전하고 있었다. 이들 생산비용의 대부분은 높아진 인건비를 뜻한다. 1975년과 1977년 사이에 생산비용이 12%나 오른 것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여기에다 스웨덴 조선업이 보유하고 있던 조선 기술도 빠른 속도로 경쟁사들에 의해 복사됨으로써 보통 기술로 바뀌고 말았다. 결국 스웨덴 조선업 몰락의 결정적 요인은 두 가지 조합 즉, 급등한 생산비용과 기술 우위 상실이 합쳐졌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스웨덴 정부의 선택이다. 경쟁력을 잃어가는 산업에 대해 과감한 구조조정보다는 일자리 보호에 집중하게 된다. 두 가지 조치를 취하는데 하나는 다른 산업에 비해 파격적인 보조금을 지원한 정책이었다. 1970∼71년에 6500만 달러의 보조금이 매년 증가해 1979∼80년에는 12억5000만 달러까지 늘어난다. 같은 기간 정부의 금융 지원도 200만 달러에서 5억6300만 달러까지 증가했다.

또한 스웨덴 정부는 국영기업이 파산돼야 할 조선소들을 계열사로 편입시켜 경영하도록 유도했다. 엄청난 재정을 투입했음에도 조선사들이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자 1980년대 중반이 되어서야 보조금 지원책을 폐지하게 된다. 스웨덴 조선업의 위기를 분석한 칼 하밀톤은 ‘산업에 대한 공적인 보조금 지원: 스웨덴 조선업의 사례 연구’(1983)에서 이런 결론을 제시한다. “정부 보조금은 고용을 유지하는 데 일시적으로 약간의 도움을 줄 뿐이다. 새롭게 확장된 어떤 보조금도 경쟁력을 향상시키지 못하는 한 고용을 증가시킬 수는 없다.” 룬드대의 렌나르트 쉔 교수도 ‘현대 스웨덴의 경제사’(2012)를 통해 “스웨덴 정부의 보조금 지원 정책은 경제 위기를 연장하고 구조조정에 방해물이 되었다”고 지적했다.

스웨덴 정부는 정면돌파보다는 우회로를 선택했다. 이유는 대규모 실업 사태를 우려했기 때문이다. 결과는 재정을 낭비하고 궁극적으로 실업을 악화시킨 것뿐이었다. 우리가 여소야대 정국에서 올바른 구조조정으로 위기를 정면돌파할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정도가 아닌 모든 정책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공병호(공병호경영硏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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