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박창균] 금융안정협의체 필요하다 기사의 사진
‘한국형 양적완화’를 둘러싸고 뜨거운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 말꼬리를 잡는다는 오해를 받더라도 용어부터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잘못된 용어 사용으로 불필요한 논란이 야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형 양적완화는 원래 의미의 양적완화와 수단을 일부 공유하긴 하지만 본질적으로 전혀 다른 개념이다. 원래 의미의 양적완화는 전통적 통화정책 수단이 무력해지면 중앙은행이 금융기관으로부터 자산을 직접 매입함으로써 이자율을 낮추어 경기 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가리키는 용어다. 그러나 한국형 양적완화는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이 발행한 증권을 한국은행이 직접 매입함으로써 이들 국책은행의 산업 구조조정에 필요한 자금 동원 능력 확충을 지원하는 정책이다.

구조조정에 국책은행이 직접 나서는 것이 옳은 것인지, 국책은행의 자본 확충에 중앙은행의 발권력이 동원되는 게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경제 원칙과 규율 확립이라는 측면에서 상당히 중요하다. 그러나 논쟁을 통해 현재 상태에서 합의에 도달하거나 문제 해결에 직접 도움이 되는 방안을 도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실용적인 측면에서는 그다지 큰 의미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한국형 양적완화는 통화정책이 아니라 금융 안정성 차원에서 접근할 문제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조조정을 위해 한국은행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필요성을 제기하는 것 자체에 대해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훼손한다든지 전통적인 통화정책 수단을 활용할 여지가 여전히 존재하므로 불필요한 정책이라는 등 본질을 벗어난 논란이 발생하고 있음은 심히 우려스러운 현상이다.

사실 이러한 논란은 정확한 의도와 상응하지 않는 양적완화라는 용어를 먼저 사용한 정부가 원인을 제공한 측면이 없지 않다. 그렇다 하더라도 내부 논의를 거쳐 이견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기 전에 정부 의견에 대해 비판적으로 공개 언급함으로써 다투는 듯한 모습을 보인 한국은행에도 책임이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소통과 협력 부재의 문제가 여기에서도 발견된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경제를 안정적으로 운용할 막중한 책무를 부여받았다. 따라서 국민들은 두 기관이 협의해 국민경제에 가장 바람직한 정책을 도출하고 실행해줄 것을 기대한다. 그러나 정부와 한국은행 사이는 긴장감을 넘어 적대감까지 감지될 정도다. 2008년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의 충격에 대비하기 위해 미 연준과 체결한 통화스와프 협정을 둘러싸고 발생한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간 다툼이 재현된 듯한 느낌이다. 막후에서는 치열한 토론과 논쟁을 하되 결론이 도출된 이후에는 한 목소리를 내고 각자 맡은 역할을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성숙한 모습을 기대하는 것이 지나친 요구가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차제에 학계에서 여러 차례 필요성이 제기돼 왔던 금융안정협의회를 법제화하는 방안을 심각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는 기재부 및 금융위원회와 한국은행은 물론 금융감독원 예금보험공사 등 금융 안정과 관련된 모든 기관의 장이 참여해 금융시장 안정성 확보에 필요한 정책을 협의·결정해 집행하는 체제를 법제화하자는 제안이다. 특정 부처나 기관이 금융 안정의 책무를 전담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또 바람직하지도 않다. 금융 안정에 기여할 수 있는 모든 주체가 공동의 노력을 경주함으로써 굳건한 금융 시스템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협의체가 법제화된다면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불필요한 논란이 발생하는 민망스러운 상황을 미연에 방지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박창균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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