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항 칼럼] 실종된 환경정책을 찾아서 기사의 사진
새누리당과 정부가 지난 8일 가습기 살균제 사태 후속대응 방향을 밝히는 자리에서 윤성규 환경부 장관은 정부를 대표해 대국민 사과를 했다. 윤 장관은 “국민의 생명을 지키지 못한 정부의 책임을 통감한다”고 말했다. 일본 미나마타병에 필적할 만한 환경·보건 재앙으로 기록될 사건에 대한 뒷북대응, 지각사과다. 정부 책임은 사과, 그나마 1개 부처 장관의 사과로 대신할 단계를 이미 훌쩍 넘어섰다.

확인된 사망자가 239명에 이르는 이번 사태가 유해 화학물질 관리의 실패에서 비롯됐다는 측면에서 환경부 책임이 크다. 그러나 규제 완화라는 미명 아래 유해물질 관리의 사각지대를 만들고, 업계의 규제 우회를 방조한 산업통상자원부의 잘못도 막중하다. 환경부는 1997년 가습기 살균제 ‘옥시싹싹’의 원료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의 유해성 심사에서 흡입독성 시험 없이 유독물질이 아니라고 관보에 고시했다.

또한 2001년 옥시가 PHMG를 가습기 살균제 원료로 사용해 제품을 출시할 때도 흡입독성 검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유해 화학물질이 들어간 제품의 안전성은 환경부가 아닌 산업부가 관리한다. 가습기 살균제는 당시 별도의 안전성 인증 대상이 아니었다는 게 산업부 설명이지만, 누가 봐도 흡입 가능성이 큰 화학물질을 원료로 한 제품인 만큼 규정에 따라 추가 시험 자료를 요구했어야 했다. PHMG 등 가습기 살균제 원료는 미국에서는 농약으로 분류한다.

질병관리본부도 마찬가지다. 소아 급성 간질성 폐렴에 대한 논문이 대한소아학회지에 실린 2006년 이후라도 질병관리본부가 적극적으로 신속하게 대응했더라면 많은 사망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백도명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건강문제니 복지부다, 제조물이니 산업부다, 환경문제니 환경부다… 이런 식으로 부처 간 떠넘기기를 계속했다”고 지적했다.

규제를 둘러싼 정부의 혼선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환경부가 2011년 제정한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은 업계의 부담을 크게 늘린다는 이유로 규제 범위가 턱없이 위축되고 말았다. 기업이 사용하는 모든 화학물질을 등록해 관리토록 규정했지만, 이미 사용 중인 화학물질 중 연간 1t 미만으로 유통되는 물질은 이 과정을 생략토록 한 것이다. 화평법 난타사건 이후 환경부가 국무회의에서 경기침체의 책임을 뒤집어쓰는 ‘동네북’ 신세라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랬던 정부가 이제는 환경규제를 강화하겠다고 나섰다. 우선 내년 말까지 유럽연합(EU) 기준을 도입해 생활용품 등에 쓰이는 모든 살(殺)생물제에 대한 조사를 거쳐 위해성이 확인되면 퇴출시키기로 했다. 미세먼지의 심각성도 최근 새삼스럽게 부각되고 있다. 폐지했던 경유차 환경개선부담금 부활, 수도권 차량부제 시행과 노후 경유차의 도심 진입금지, 수도권 공장·발전소 등의 규제대상 확대 방안 등이 다시 협의 테이블에 올랐다. 그간 경유의 상대가격 인상 등 숱한 미세먼지 규제책이 나왔지만, 규제완화와 산업경쟁력 논리에 막혀 답보와 후퇴를 거듭했다. 그 결과 미세먼지 농도는 2012년 이후 차츰 악화되고 있다.

환경부가 나서야 할 때다. 그렇지만 윤 장관은 여전히 직원들 입단속을 하고 있다. 사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의 참혹성과 미세먼지의 심각성도 환경·시민단체와 일부 양심적 전문가들이 일깨운 것이다. 정부가 당장 경제성장 실적이 중요하다고 해서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도외시하는 관행은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 대한 청문회는 정부의 책임 규명과 더불어 무분별한 규제완화에 대한 반성의 계기가 돼야 한다.

임항 논설위원 hngl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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