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남도영] 치킨과 조선, 10조원의 무게 기사의 사진
우리나라 치킨집 수는 2013년 조사 기준 3만6000곳이다. 영업 실적은 신통치 않다. 40% 정도는 3년 안에 문을 닫는다는 조사 결과가 있었다. 치킨집은 우리나라 자영업의 ‘근간’이자 ‘상징’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간담회에서 “은퇴 후에 할 수 있는 게, 자영업으로 치킨집이라든가 뻔하지 않습니까”라고 말했다. 과격하게 비유컨대 치킨집들이 망하면 우리나라 자영업이 흔들리고, 자영업이 흔들리면 수많은 위기 가정이 생겨난다. 자영업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의 전체 경제 특성상 치킨집의 위기는 경제의 위기로 치달을 수 있다.

사실 치킨집 위기는 오래전부터 누적된 산업구조적인 문제다. 위기 상황을 더 이상 방치하기 어려웠던 정부가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나섰다고 가정해보자. 정부는 폐업 위기에 몰린 40%의 치킨집(1만4400곳)에 1억원씩을 긴급 지원키로 했다. 지원 금액은 1조4400억원이다. 치킨산업 발전을 위해 시설 개선비 1억원과 그동안 밀린 부채를 갚으라고 1억원을 합쳐 2억원씩을 추가 지원키로 했다. 2조8800억원이다. 합쳐서 4조3200억원의 돈이 치킨집 ‘구조조정’에 투입된다. 치킨집 업주들이 집단으로 공개 사과하고, 치킨집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정부 책임론도 불거질 것이다. 어쨌든 치킨집들은 한숨 돌리게 된다.

물론 4조3200억원이 투입됐다고 치킨집들이 위기를 벗어나리라는 보장은 없다. 치킨집이 어려운 이유가 어디 한두 가지이겠는가. 자본의 문제일 수도, 경영의 문제일 수도, 근본적으로는 맛의 문제일 수도 있다. 치킨집들이 잘되기를 기원하지만, 치킨산업이 중요하다는 점은 정말 잘 알고 있지만, 치킨집이 망한다고 해서 그걸 국민이 책임질 수는 없다.

그런데 그런 일이 현실로 일어난다. 요즘 정부가 해운·조선 등 부실 업종 구조조정 비용을 마련하려 애쓰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5조원이라고도 하고, 10조원이라고도 한다. 조건부 자본증권 같은 어려운 용어들이 많은데, 해운업과 조선업이 어려우니 국민 세금으로 빚도 갚아주고, 경영 자금도 지원해주자는 얘기다.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정부는 1989년부터 최근까지 대우조선해양에만 6조5000억원의 혈세를 투입했다. 그렇게 돈을 줬는데도 어려우니 다시 돈을 주자는 거다. 그건 국민 돈이다.

본 적도 없고 만져본 적도 없지만, 5만원 신권 100장 묶음 두께는 1.1㎝라고 들었다. 500만원이다. 산술적으로 5000만원은 11㎝이고 1억원은 22㎝다. 1조원은 2.2㎞이니 10조원은 22㎞다. 22㎞면 국민일보 여의도 본사에서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까지 거리다. 국민일보에서 아산병원까지 5만원 신권을 옆으로 세워서 한 치의 빈틈없이 빽빽하게 늘어놓으면 10조원이 된다. 상상조차 하기 힘든 5만원권 돈길이다.

치킨집은 줄 수 없고 조선업은 준다. 치킨집이 망하면 개인 문제이고, 조선업이 망하면 나라가 흔들린다는 논리다. 정말 그런가. 조선업의 위기를 말할 때마다 등장하는 게 스웨덴 ‘말뫼의 눈물’이다. 20세기 후반까지 세계 조선업계 선두주자였던 스웨덴 조선도시 말뫼의 골리앗 크레인이 2003년 1달러에 현대중공업에 팔렸다. 크레인을 보유했던 코컴스 조선소는 문을 닫았다. 아직 스웨덴 경제가 몰락했다는 얘기는 들려오지 않는다.

돈은 국민이 내고, 생색은 정부가 내고, 잔치는 기업이 한다. 이건 아니다. 10조원의 돈길을 깔려면 적어도 누가 쓰고, 어떻게 쓰는지 국민의 동의와 감시를 받아야 한다. 국회는 그런 감시를 하라고 만들어놓은 조직인데, 뭘 하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남도영 사회부장 dy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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