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크레디토크라시] 부채는 어떻게 인간을 지배하나 기사의 사진
2011년 11월 미국 뉴욕의 공원인 듀어트 스퀘어 점거 시도에 나선 학생 시위대가 사용한 피켓. 갈무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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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가 우리 삶의 전제조건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빚 없다는 사람이 없고, 빚 갚기 위해 일한다는 사람들도 많다. 부채거부운동 이론가인 앤드루 로스(뉴욕대 사회문화연구대학 교수)는 그 이유를 우리가 ‘크레디토크라시(creditocracy)’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빚이라는 의미의 ‘크레디트(credit)’에 체제를 뜻하는 ‘크라시(-cracy)’를 붙여 만든 이 신조어는 ‘부채의 지배’로 해석된다.

여기서 ‘부채의 지배’란 우리 삶이 부채 없이는 영위되지 않는다는 현실을 묘사하는데 그치는 게 아니다. 부채를 통한 착취를 핵심으로 하는 금융자본주의의 구조, 채권자들의 이익에 복무하는 권력체제, 그리고 개인부채 대부분이 생활필수재 접근 과정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 등을 드러낸다.

학자금 대출은 단적인 사례가 된다. 2013년 6월 미 의회 예산처는 그해 연방정부가 학자금 대출을 받은 사람들에게서 거둬들일 이익이 510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발표했다. 학자금 대출 이익금이 연방정부의 상당한 수익원이 되어 왔다는 건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엘리자베스 워런 민주당 상원의원은 510억 달러에 대해 “‘포춘’ 선정 500대 기업의 연간 수익을 초과할 뿐만 아니라 구글이 거둬들이는 연간 수익의 약 다섯 배”라고 지적하고, 학자금 대출 시 적용되는 고금리(6.8∼7.9%)를 은행들이 연방준비은행 자금 조달 시 부담하는 금리(0.75%) 수준으로 낮추라고 요구했다.

이런 사례는 청년들의 미래를 질식시키고 있는 학자금 대출금이 과연 온당한 것인가 질문하게 한다. 가계부채도 마찬가지다. 그 빚은 개인들이 일을 안 하거나 과소비를 하기 때문에 생긴 게 아니다. 교육비, 주거비, 의료비 등을 충당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다. 그것은 본래 정부가 감당해야 하는 비용이다. 정부부채도 다르지 않다. 정책 실패, 금융회사에 들어간 공적자금, 기업과 자산가들의 탈세 등에서 생겨난 게 대부분이다.

이 책은 부채에 대한 완전히 다른 시각을 제시한다. 부채는 개인의 책임이며, 반드시 갚아야 한다는 오래된 인식에 도전하는 것이야말로 이 책의 목표이기도 하다.

저자는 “산업화 과정에서는 대체로 임금을 둘러싼 갈등이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그러나 고도로 금융화한 사회에서는 부채를 둘러싼 투쟁이 점점 더 첨예한 갈등을 빚어내고 있다”면서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부채거부운동과 대안적 신용경제를 구축하기 위한 움직임들을 소개한다.

부채거부라니, 한국에선 꿈같은 얘기로 취급될 수도 있다. 그러나 부채가 불평등과 민주주의의 약화, 재정위기를 초래하는 원인이라는 주장은 점점 더 힘을 얻고 있다. 폴 크루그먼, 조지프 스티글리츠, 로버트 커트너 같은 자유주의 경제학자들도 채무경감 찬성론을 펼치고 있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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