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전정희] “한신대 너마저…” 기사의 사진
1984년 4월이다. 전두환 정권 독재에 맞서 거리 시위에 나섰던 한신대생들이 전투경찰이 던진 돌에 맞아 피해자가 속출했다. 한데 당시 KBS가 ‘학생들의 폭력시위에 경찰 부상’만 부각시켜 보도했고 이 과정에서 학생들이 KBS 카메라 기자팀을 학교 안에 감금했다. KBS는 이튿날 헬기를 캠퍼스 위로 띄워 영상을 찍었다. 밤 9시뉴스 첫 기사로 학생들의 ‘납치와 폭력시위’가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학교가 뒤집어졌다. 그때 신학자 정대위 학장이 “우리가 학생들을 설득하겠다”며 교문 앞까지 들어온 경찰력을 온 몸으로 막았다. 경제학자 고(故) 김수행 정운영 교수 등도 마찬가지였다. 한신대는 그런 학교다.

교계에서 한국기독교장로회와 그 교단 학교인 한신대가 갖는 위치는 특별하다. 소위 ‘기장’으로 불리는 한국기독교장로회의 교인 수는 29만여명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의 전체 개신교인 수는 1100만명이고 그 수치 안에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과 통합 측이 각각 300만명에 육박하는 것에 비하면 적은 숫자다.

그런데 이 기장은 6·25 한국전쟁 직후 한국사회에 예언자적 자세로 진보적 가치의 신앙관을 표출해 왔다. 한국사회 그리고 한국교계가 소금의 맛을 잃을 경우 고난을 감수하며 저항했다. 그 저항 신앙의 신학적 배경이 한신대였다. 한국 현대사에 정의 평화 인권 생명을 위한 신앙적 연대는 김재준 장준하 안병무 서남동 문익환 강원룡 등 이 학교를 거쳐 간 지도자들 이름 석자에서도 금방 알 수 있다. 실천신앙의 요람이었다.

한신대는 70년대 말 박정희 독재정권의 민주주의 억압이 극에 달하자 안병무 교수 등을 비롯한 교수·학생이 삭발 투쟁으로 저항했다. 그들은 감옥 가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결국 신학과가 폐과돼 한동안 신학생을 뽑지 못하기도 했다. 전두환 정권 당시에도 이 학교는 십자가를 들고 거리로 나섰다. 86년 10월 이른바 ‘건국대 사태’ 때 100명이 넘는 한신대 학생들이 구속됐다. 구속자 수가 건국대 고려대 서울대 연세대 학생 다음이었다. 단과대학 수준의 작은 학교였으나 ‘예수 정의’ 이름으로 핍박받는 자를 대변했다.

그런데 이 한신대가 총장 선출을 둘러싸고 교권 장악을 위한 진흙탕 싸움을 하고 있다. 권력화된 한국교회가 세상 사람들의 질타를 받고 있는 가운데 “한신대 너마저…”라는 탄식이 들린다. 지난 3월 말 한신대 총장 선임 이사회에서 득표 순위 3위 후보자가 총장으로 선임됐다. 학생들이 이사장실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였다. 이 대학의 오랜 전통 가운데 하나는 학생·직원·교수가 최종 후보 2인을 결정해 이사회에 추천하는 민주적 방식이다. 물론 이 전통은 법적 구속력이 없다. 한데 이사회에서 구성원 11%밖에 지지를 받지 못한 3위 후보를 선임한 것이다.

문제는 이사회의장 안의 충돌 과정에서 학교 측이 반발하는 학생 40명을 특수감금과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하면서 발생했다. 학생들은 경찰의 출석 요구를 받았다. 더 나아가 학교 측은 학부모에게 가정통신문을 보내 이사장실 점거와 같은 행위가 사법처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압박했다. 이 일은 지난 9일 고소 취하로 일단 마무리되는 듯했다. 그러나 지난 12일 이사회에 참석이 막힌 개방이사 2명 가운데 1명이 ‘총장선임결의 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하면서 권력 싸움 문제였음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이 사태는 성서적 정의를 바탕으로 한 ‘기장성’ ‘한신성’이란 자부심을 스스로 지우는 결과를 초래했다. 내부 구성원들은 ‘상왕 교권’을 유지하려는 교권주의파들의 술책이라고 말한다. 평양신학교 조선신학교 한신대를 잇는 ‘민족 교회 산실’의 전통은 그들이 그토록 꾸짖던 바리새파적 사고에 매몰되고만 걸까. “한신대 너마저…” 이 탄식은 예언자적 시대정신에 충실하지 않고, 이제는 세속화돼 침묵하는 한국 교권주의에 대한 경고다.

전정희 종교국 부국장 jhj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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