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 칼럼] 보수의 혁신, 싹수가 안 보인다 기사의 사진
보수(保守)의 혁신은 4·13총선을 계기로 집권세력에 내려진 지상과제다. 권력에 취한 탓인지, 시대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수구적 보수에 안주한 데 대해 국민이 매서운 심판을 내렸다. 개혁적 보수, 혁신적 보수로 나아가지 않으면 민심을 다시 얻기 어려울 것이다.

보수를 혁신해야 할 주체는 보수세력의 대변자이자 각종 선거의 당사자인 새누리당이다. 그러려면 새누리당부터 확 바꿔야 한다. 대통령 눈치를 살피는 정당, 총선을 자파 세력 확장의 수단쯤으로 여긴 친박의 탐욕, 걸핏하면 북한 문제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려는 비루함, 국정운영의 무능을 인정하지 않고 ‘발목 잡는 야당론’만 앞세운 무책임 등 달라져야 할 것은 이루 다 나열할 수 없을 정도다.

총선 직후 잠시 쇄신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듯했다. 비교적 젊은 의원 중심으로 혁신모임까지 생겼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혁신 대신 안정이 슬며시 자리를 꿰찼다. 정진석 원내대표가 비상대책위원장을 겸임하고, 혁신위원회를 따로 꾸리기로 하자 당내에서마저 “변화와 혁신의 의지가 있는 건지 매우 의심스럽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상임고문들 역시 “친박에 둘러싸여 또 청와대 얘기를 들으려는 것이냐”고 힐난했다. 그러자 혁신위에 쇄신과 관련한 전권(全權)을 주겠다는 발표에 이어 15일 비박계인 3선의 김용태 의원을 혁신위원장에 내정했다.

어떤 혁신 방안을 내놓을지 지켜봐야겠지만 기대할 게 얼마나 있을까 싶다. 무엇보다 속도감이 떨어졌다. 총선 이후 한 달을 허송세월했다. 비상상황이라는 구성원들의 위기의식도 엷어진 느낌이다. 친박은 20대 총선 새누리당 당선인의 다수가 친박이라는 점을 활용해 슬며시 면책받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비박은 방황하는 중이다. 미더운 구석을 찾기 힘든 지경이다.

보수의 혁신은 지난(至難)한 작업이다. 수평적 당청관계 구축과 여야 협치의 틀 마련 등 외형적인 것과 함께 보수의 정체성을 재구성하는 실질적인 것을 동시에 이뤄내야 한다. 무엇보다 가진 자와 재벌을 옹호하는 정당이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비정규직 근로자가 600만명을 넘었고, 청년실업 문제와 양극화는 악화되는 추세다. 이로 인해 사회 곳곳에서 분노와 절망이 표출되고 있다. 빈곤층과 실업자, 비정규직, 무의탁 노인 등 사회적 약자들 쪽으로 성큼 다가서야 한다. 경제 성장과 공정한 분배의 조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시대다.

이념에서도 탈피해야 한다. 좌우갈등은 지지자들을 결속시키는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으나 외연을 넓히는 데는 역작용을 낳을 뿐이다. 민생보다 이념을 우선하는 건 시대착오적이다. 그래서 ‘정의롭고, 평등하고, 공정하며, 진실되고, 희생하며, 따뜻한 공동체의 건설을 위해 땀 흘려 노력하는 보수’로 나아가자는 유승민 의원의 제안에 다시 눈길이 간다.

보수를 쇄신하려면 진지한 자성이 요구된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국민에게 고백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얘기다.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을 비롯해 오만불손한 행태를 보인 친박계는 대국민 반성문을 쓰는 게 옳다. 그 토대 위에서 새 인물들이 보수의 청사진을 만들어야 한다. 보수가 건강성을 회복하지 못하면 한국 사회 전체가 퇴보할 것이라는 사명감을 갖고 치열한 토론을 통해 보수를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한다.

그러나 새누리당 역량을 고려할 때 이런 과업을 충실히 해낼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고민과 철학이 부족한 이들이 대부분이다. 민주적 보수, 따뜻한 보수가 절실하지만 아직 싹수가 잘 안 보인다. 김용태 혁신위원장 내정자 어깨가 무겁다.

김진홍 논설실장 j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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