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청년] 독거 할머니 손녀로… 한글교사로… ‘빛나는 스물둘’

나눔밥상 최윤경 대표

[예수청년] 독거 할머니 손녀로… 한글교사로… ‘빛나는 스물둘’ 기사의 사진
최윤경 나눔밥상 대표는 “쪽방촌 어르신들이 늘 손자손녀처럼 맞아주시고 간식도 챙겨주신다”며 “어르신들께 한글을 가르쳐 드릴 뿐 아니라 활기찬 에너지를 전달하는 것도 우리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강민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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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경(22) 나눔밥상 대표는 대학 졸업반 때 학교 앞에서 접한 한 독거노인의 이야기를 아직도 또렷이 기억한다. 2014년 9월, 최 대표는 우연히 노인복지센터 소식지 홍보에 나선 판매원을 만났다. 그는 사망한 지 5일 만에 집에서 발견된 독거노인 기사를 보여주며 “정말 슬픈 건 이분이 가난하고 혼자였던 게 아니다. 5년 간 아무도 찾아온 이가 없었다는 것”이라 말했다. ‘고독’이라는 단어가 귀갓길 내내 최 대표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인생 마지막이 고독하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겠구나. 혼자 사는 어려운 이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다면 더 이상의 쓸쓸한 죽음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다소 엉뚱한 이 생각은 최 대표의 삶을 180도 바꿔놓았다.

◇500원의 기적=당시 최 대표는 전문대에서 푸드스타일리스트학을 공부하며 학내 요리대회 동아리 부회장으로 활동 중이었다. 그날 일을 계기로 어려운 이웃들을 돕는 삶을 살기로 한 그는 동아리 회원들에게 자신의 뜻을 밝히고 같이할 사람을 구했다.

“요리대회 준비를 하다보면 식재료가 남거든요. 이걸로 요리 재능을 발휘해 어려운 이웃을 위한 음식을 만들어보자고 하니까 몇몇이 좋다고 하더군요. 이들과 형편이 어려운 어르신께 요리를 대접한 게 ‘나눔밥상’의 시작이었죠.”

나눔밥상의 첫 메뉴는 자장면이었다. 최 대표는 자장면 30인분을 만들어 서울 동작구의 한 영세민 아파트 내 복지관을 찾았다. 무작정 찾아갔지만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담당 사회복지사가 맛보고는 일주일 뒤부터 복지관에서 요리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이후 최 대표는 동아리 친구,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매주 복지관을 찾아 도시락을 만들고 아파트 내 차상위계층 30가정에 배달했다.

그러나 요리대회 준비 후 남은 식재료만으로는 도시락을 제대로 만들기 어려웠다. 이때 그가 떠올린 것이 ‘지갑 속 동전’이었다. 지갑이나 서랍 구석에 뒹굴고 있는 동전을 모아 어려운 이웃들에게 보내면 의미가 있겠다 싶었다. 후원자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기부액도 최소 500원에서 최대 1만원으로 한도를 정했다.

후원금 최고액이 1만원이고 정기후원자도 2명뿐이었지만 나눔밥상은 매주 차려졌다. 밥상 봉사 시작하기 전날이나 당일에는 꼭 필요한 금액이 채워졌기 때문이다. “후원금 잔고를 보고 ‘이번 주는 어떻게 운영하나’ 해도 기도하면 이튿날 후원이 더 들어와요. 이런 기적들이 모여 독거어르신들께 좋은 재료로 만든 도시락을 배달할 수 있었습니다.”

◇밥보다 배움이 갈급한 사람들=도시락 나눔은 9개월간 이어졌지만 복지관의 사정으로 주방공간을 쓸 수 없게 되면서 지난해 9월 잠정 중단됐다. 밥상이 필요한 또 다른 이웃을 찾던 최 대표는 우연히 서울역 인근 쪽방촌 사역자를 만난다. 거동이 힘든 쪽방촌 독거노인에게 음식을 제공하겠다고 하자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어르신들은 음식보다 글을 배우고 싶어한다’는 것이었다.

쪽방촌 독거노인 가운데 70∼80대 할머니들은 배움의 기회를 놓쳐 평생을 까막눈으로 지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일상생활에 큰 지장을 겪지만 배울 곳도 없고 누군가에게 이용당할까 잘 드러내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최 대표는 식재료 대신 한글교재를 사서 쪽방촌 할머니를 위한 한글교실을 열었다.

지난해 10월 ‘나눔학교’란 이름으로 문을 연 한글교실은 현재 60∼80대 할머니 6∼7명이 수강 중이다. 최 대표와 봉사자들이 매주 가가호호 방문해 가르치지만 할머니들의 실력은 신통치 않은 편이다. 치매 초기 증상을 보이는 분들도 있으니 글자 깨치기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성경필사, 색칠공부, 연극 관람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가르친다는 생각보다 외롭게 돌아가시지 않도록 한다는 마음으로 찾아뵙고 있어요. 어르신들은 치매에 걸려도 돌봐줄 사람이 없거든요. 치매 진행을 막고 외로움을 더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요.”

경기도 부천교회(윤대희 목사)에 출석하는 최 대표는 평일에는 일을 하고 주말마다 나눔밥상 사역을 한다. 평일에는 봉사자들과 사역을 논의하느라 밤늦게 귀가하는 날이 많다. ‘어린 나이에 자기를 돌볼 틈 없이 봉사에만 몰두하는 것 아니냐’고 걱정하는 이들도 있지만 크게 개의치 않는다고 했다.

“십계명에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은 있지만 ‘자신을 위해 투자하라’는 건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웃을 섬기는 삶, 그게 진정 나를 위하고 돌보는 삶이 아닐까요.”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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