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人터뷰] 창립 30주년 세종연구소 진창수 소장 “동북아 균형 맞추도록 일본 전략적으로 이용해야” 기사의 사진
진창수 세종연구소 소장은 중국의 부상으로 동북아 질서가 개편되고 있는데도 한국인들은 아직도 일본을 식민지 시대 침략국이라는 렌즈로만 바라본다고 말했다. 성남=곽경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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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명한 일본 전문가인 세종연구소 진창수(55) 소장은 동북아 균형 유지에 일본이 긍정적 역할을 할 수도 있음을 인정하고 이를 전략적으로 이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국의 부상으로 동북아 질서가 새롭게 형성됐음에도 우리 국민은 아직 식민지 당시 침략국이라는 렌즈로만 일본을 보고 있다고 우려했다. 한·일 관계는 일본군 위안부 합의로 한고비 넘겼지만 질적으로 변해 과거와 같이 되기는 힘들다고 진단했다. 헌법 개정 자체보다 ‘우회 방법’을 통해 같은 효과를 얻는 일본 내 움직임을 더욱 주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중·일, 미·중 관계도 현상유지를 통한 관리모드에 들어갔다며 이런 환경 속에서 북한 제재의 필요성을 국제사회에 설득할 담론 개발이 우리 외교의 과제로 부상했다고 말했다. 특별인터뷰는 세종연구소 창립 30주년(5월 20일)을 앞둔 지난 12일 경기도 성남 세종연구소 소장실에서 1시간30분간 진행됐다.

-아베 신조 총리가 추진 중인 일본 평화헌법 9조(전쟁 포기, 국가의 교전권 부인, 군대 금지 조항) 개정의 향방에 관심이 높다.

“간단히 말해 헌법 9조를 대상으로 한 개헌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개헌 반대여론이 한국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하다. 아베 총리 집권 초기에 개헌 찬반은 거의 비슷한 수준이었으나 실제 개헌하겠다고 나서자 국민 67%가 반대한다. 전쟁에 휘말리고 싶지 않다는 의사가 분출한 것이다. 아베가 아무리 노력해도 정계 개편으로 민진당(구 민주당)을 자민당으로 편입하지 않는 한 참의원에서 (개헌에 필요한 의석) 3분의 2 이상을 얻기 힘들다.”

-헌법 개정 문제는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인가.

“우파들은 9조 자체를 바꾸는 개헌이 벽에 부닥치자 대안으로 집단자위권을 적용하는 범위를 확대해 (개헌과) 같은 효과를 거두려 한다. 또 아베 총리가 헌법 9조뿐 아니라 인권·기본권 조항 변경을 포함시키는 ‘물타기’로 헌법 개정을 추진할 가능성도 있다. 우리가 초점을 잘못 맞추고 있다는 얘기다. 헌법 개정 자체보다 두 가지 우회 방법을 통해 같은 효과를 얻으려는 일본 내 움직임을 주시해야 한다.”

-위안부 합의 이후 일본은 이명박정부에서 실패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의 조기 체결을 요청하고 있다. 미국도 같은 입장이다.

“지금 일본은 중국의 부상에 대응해 나름대로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그 움직임이 항상 우리에게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긍정적인 요인도 있다. 일본의 안보법제 변경으로 미·일동맹이 강화되고 한·미·일 군사협력이 원활해지면 중국의 부상으로 변화된 동북아 질서에 균형을 맞추는 효과도 있다. 이러한 흐름에 우리가 반대한다면 국제적 고립을 자초하고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게 된다. 일본의 집단자위권 해석 변경에 반대하는 나라는 세계 주요국 중 한국과 중국밖에 없다. 우리는 동북아 균형을 맞추는 쪽으로 일본을 유도하고 전략적 이용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한·일 방위협력 사안 중 GSOMIA는 북한의 위협에 노출된 우리 현실에서 필요하다. 일본의 레이다망이 우리보다 훨씬 촘촘한 게 사실이다. 그리고 우리 군사정보의 미국 의존도가 높은데 미국이 민감한 정보를 우리에게 다 제공하느냐는 문제도 있다. 미·일동맹은 동북아 전체를 보는 동맹이고, 한·미동맹은 북한을 주로 바라보는 동맹이라고 할 수 있다. 정보의 수준이 다르다는 점에서 일본과의 정보교류는 긍정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한·일 관계는 이제 고비를 넘긴 것인가.

“양국 정부가 지난해 말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합의한 뒤 합의이행을 위해 상대방을 자극하지 말자는 분위기가 정착되고 있다. 역사문제가 양국의 가장 첨예한 대립이었고 갈림길이었다는 점에서 청신호다. 하지만 국민감정이나 인식의 갭이 남아있다. 한국 국민은 일본이 과거사에 제대로 사과하지 않는다고 본다. 이에 반해 일본 국민은 한국이 항상 골대를 움직인다(정권이 바뀔 때마다 과거사 사죄를 요구한다)고 생각한다.

중국에 대한 양국 국민의 인식에도 큰 차이가 있다. 일본 사회에서 한국을 경제적 라이벌로 여기며 경계심이 높아져 경제협력, 기술이전이 원활하게 될 가능성도 낮아졌다. 이에 따라 한·일 관계가 과거와 질적으로 달라졌다. 일본인들은 과거에는 한국과 마찰을 빚다가도 함께할 수 있다고 여겼지만 이제는 전략적 판단을 통해 뭔가 이득이 될 때만 함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일 관계는 어떻게 되나.

“구조적으로 양국이 타협하긴 쉽지 않다. 중국의 전략은 동북아 질서에서 일본보다 우위에 서려는 것이기 때문에 일본이 허용하기 어렵다. 그러나 당장 서로가 협력할 부분도 많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경제적 안정과 성장을 유지해야 하는데 일본의 기술력과 자본이 필요하다. 아베 총리도 집단자위권 해석 변경을 통해 동북아 질서가 이전보다 안정되고 영토갈등도 완화됐다는 평가를 받아야 장기 집권할 수 있다.

중국은 역사문제로 일본을 압박하는 게 더 이상 효과를 발휘하지 못 한다는 점을 알고 있다. 일본과 서서히 타협하려 한다. 지난달 30일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 간 회담이 신호다. 한·일 관계뿐 아니라 중·일 관계, 미·중 관계도 관리모드에 들어갔다고 봐야 한다.”

-이런 가운데 우리는 북한에 강경제재 일변도다.

“북한 고립 전략은 지속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가 담론(discourse)을 주도해야 한다. 제7차 노동당 전당대회 이후 북한은 제재 국면을 무효화해 유화 국면으로 가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이에 중국이 동조해 평화협정과 비핵화를 동시에 논의해야 한다는 주장이 국제적 담론이 되고 있다. 평화협정을 동시에 논의한다는 것은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고 군축협정을 하자는 것으로 비핵화는 사실상 힘을 잃게 된다. 변화된 환경 속에서 ‘선 비핵화, 후 평화회담’이라는 우리 논리를 어떻게 다듬어 국제사회를 설득하느냐가 우리 외교의 과제다. 이와 동시에 환경, 에너지, 난민, 질병 등 비전통적 안보 분야에서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 등 다자간 틀을 확대해 영향력을 확대시켜야 한다.”

진창수 소장은

1994년 일본 도쿄대 정치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서울대 연구원을 거쳐 1996년 7월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이 됐다. 세종연구소 일본센터장, 부소장, 도쿄대 객원연구원 등을 역임했고 일본 정·관계에 폭넓은 인맥을 가진 대표적인 일본통이다.

한·일 관계가 이슈가 될 때마다 일본 주요 일간지에 기고하거나 NHK 등 방송에 출연해 한국 입장을 설명해 왔다.

세종연구소는

세종연구소 설립의 계기가 된 것은 1983년 10월 미얀마 랑군의 아웅산묘역테러 사태였다. 86년 재단법인 일해재단 산하 평화안보연구소로 문을 연 뒤 몇 차례 개편을 거쳤다. 국내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외교·안보·통일 분야의 대표적인 민간 공익연구기관이다.

한국처럼 정부의 입김이 강한 곳에서 국책연구기관이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기 쉽지 않다. 세종연구소는 이런 환경에서 국가정책의 선택지를 확대하고 건전한 토론을 양성화해 논쟁을 풍부하게 하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해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세종연구소가 창립 초부터 연 4회 펴내는 학술지 ‘국가전략’은 이 연구소의 대표 브랜드로 꼽힌다. 기존의 세종국가전략포럼 외에 정부 인사 및 학계 전문가와 정책을 논의하는 ‘세종정책포럼’, 청년·대학생을 위한 ‘세종정책아카데미’도 신설돼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배병우 선임기자 bwb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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