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한국 군부, 더 이상 시위에 참지 않겠다는 결론 강조” 기사의 사진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 금남로에서 학생, 시민들로 구성된 시위대와 계엄군 진압 병력이 대치하고 있는 모습. 국민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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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이 일어난 직후 서울에 있던 미국 정부 관계자들은 당시 군부를 장악했던 전두환 국군보안사령관과 최규하 대통령, 이희성 계엄사령관을 각각 만났다. 전두환에 대해선 ‘군부 독재자(military strongman)’라는 표현을 썼다.

미국 관계자들은 “(이들과의) 만남에서 군부는 더 이상의 반대 (시위)에 참지 않겠다는 결론을 강조했다”고 지적했다. 이 사실은 5·18민주화운동 이틀째였던 1980년 5월 19일 에드먼드 머스키 국무장관이 지미 카터 대통령에게 보고한 국무부 문서에 기록돼 있다.

월간지 신동아는 최근 전두환 전 대통령이 5·18민주화운동 당시 발포 명령을 하지 않았다는 내용의 발언을 했다고 보도했다. 발포 책임자는 역사의 미궁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전 전 대통령이 이끌었던 군부가 5·18민주화운동 초기부터 강력한 진압 의사를 강조했던 사실이 미 국무부 기밀해제 문서에 들어있다.

1980년 5월 백악관 문서들의 맨 윗자리는 광주가 차지하고 있었다. 당시 광주 상황은 실시간 백악관에 보고됐다. 미국이 세계 각지에서 일어난 어떤 사건보다 5·18민주화운동을 매우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었음을 입증하는 대목이다. 백악관은 물론 국무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등 미국 외교안보의 최고 기관들이 모두 나서 5·18민주화운동을 예의주시했다.

미국은 광주에서의 저항 움직임에 대해 ‘시위(demonstration)’ 등 중립적인 단어를 쓰기도 했다. 하지만 반란(insurrection)이나 폭동(riot) 폭도(rioters)로 해석되는 부정적 표현들도 사용한 것은 5·18민주화운동을 바라보는 미국의 시각이 우호적이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미국은 당시 광주의 시위 전개 상황과 군부 동향에 정보력을 집중했다. 또 민심 수습을 위해 80년 5월 21일 단행된 개각 소식에도 관심을 보였다.

미 정부는 남한의 위기상황을 틈 탄 북한의 도발을 막기 위해 중국에 협조를 구했다.

하지만 미국의 대처는 많은 논란을 낳았다. 국민일보는 당시 상황을 일지 형식으로 기록된 백악관·국무부·NSC의 기밀해제 문서 6건을 입수했다. 다음은 이를 정리한 것이다.

80년 5월 19일 백악관 일일보고(Daily Report)

수신자는 지미 카터 대통령이고 발신자는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다. 제목은 ‘계엄령 이후의 한국’.

‘최규하 대통령과 이희성 계엄사령관 모두 윌리엄 글라이스틴 주한 미국대사에게 더 거대한 시위를 준비하는 대학생들의 계획, 그리고 그들의 공산주의 구호 사용, 대학생 조직의 힘과 이 같은 데모가 노동자와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 등을 지적하며 계엄령 선포를 정당화했다. 이 사령관은 자신의 역할에 편안해 보였으나 최 대통령은 더욱 수세적이었고, 명목뿐인 역할 속에 제한된 영향력을 갖고 있다. 한국 대통령과 그의 각료들은 명백하게 거의 토론 없이 상당한 지지 속에 계엄령 선포를 의결했다.

차기 대통령 자리에 앞서가는 세 명 중 두 명(삼 김씨 중 김대중·김종필)을 포함한 일부 지도층 인사들이 부패와 학생 선동 이유로 체포됐다. 최 대통령은 이 조치를 체포가 아니라 구금이라고 설명했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한국이 계엄령에서 벗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으며 우리는 기정사실로 하고 이를 다뤄야 한다고 생각한다.’

5월 19일 국무부 보고서

수신자는 카터 대통령이고 발신자는 머스키 국무장관. 제목은 ‘한국’.

‘비록 오늘 서울은 매우 조용하지만 남서부 도시인 광주의 대중적인 저항은 거대한 시위로 변했고 군대와의 폭력적인 충돌로 명백하게 일부 사망자가 발생했다. 여기는 체포된 반체제 지도자 김대중의 정치적인 고향이다.

서울의 미국 국가팀(US Country Team·미 대사관과 한국에 파견된 미 정부 조직의 대표들로 구성된 회의체. 대사가 팀장이며 미국과 외교관계를 맺은 모든 나라에 이 조직이 있다) 멤버들이 (최규하) 대통령과 (이희성) 계엄사령관, 군부 독재자 전두환을 만난 자리에서 군부는 더 이상의 반대 (시위)에 참지 않겠다는 결론을 강조했다. 일부 군부 지도자들은 과격한 학생운동 지도부가 한국 경제 시스템을 파괴하고 계급투쟁을 조장할 의도를 지녔다고 주장했다. 민간 정부의 권한을 완전히 장악하기 위한 추가적인 군사작전이 있을지 여부는 불확실하다.

군부는 “몇 달 안에” 정치 개혁 일정이 재개될 것이라는 말만 하고 있다. 정치 일정이 아직 충분히 회복되지 않았고 긍정적인 결과를 위한 가능성은 크게 줄어들었다. 우리는 보고를 계속적으로 받고 있으며 목요일(5월 22일) 오후에 있을 (NSC의 광주 관련) 정책검토위원회(PRC) 이전에 보다 명확한 윤곽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5월 21일 백악관 저녁 보고(Evening Notes)

백악관 상황실이 브레진스키 보좌관에게 보낸 보고서다. 제목은 ‘광주에서의 시위’.

‘광주에서 긴장된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폭도들은 세 개의 지방청사 건물을 제외한 모든 건물을 차지하고 있으며 트럭과 버스를 징발하고 있고, 지역 무기고에서 총기를 입수했다. 모든 군인들은 도시에서 철수했으며 공격을 막기 위한 저지선을 시 외곽에 구축했다. (한국군) 합동참모본부는 광주 공군기지는 여전히 안전하며 (미군을 포함한) 미 정부 직원들의 어떠한 사망이나 부상 사실이 없다고 전했다. 폭동은 많은 한국 국민들이 미국은 내정간섭을 하는 것이 아니지만 계엄령을 지지한다고 느끼는 상황에서 어느 정도의 반미감정을 주입시키고 있다고 CIA는 덧붙였다. 오늘 개각이 발표됐는데, 군부를 지지하는 일부 각료는 유임됐고, 5명의 새로운 장관이 추가됐으며 일부 장관은 자리를 바꿨다. 박충훈이 총리 서리로 임명됐다.’

5월 22일 NSC 보고서

로저 설리반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부차관보가 브레진스키 국가안보 보좌관에게 보낸 보고서. 제목은 ‘브레진스키 보좌관과 레너드 우드코크 주중 미국대사의 회의’.

‘우드코크 대사는 본국에서 휴가와 업무 협의 중이며 다음 주로 예정된 겅바오 중국 부수상과의 회담(겅바오는 80년 5월 25일부터 6월 4일까지 방미했다)에 참석할 예정이다. 나는 겅바오와의 회담에 앞서 당신이 우드코크 대사와 남한의 상황을 악용하려는 북한의 시도를 중국이 저지해 주기를 바라는 우리의 현실적인 기대에 대해 논의하기를 권한다.’

5월 28일 백악관 정오 보고(Noon Notes)

백악관 상황실이 브레진스키 보좌관에게 보낸 보고서다. 제목은 ‘한국 상황’.

‘광주 사태 이후 한국 정부는 ‘종합후속대책’을 발표했다. 서울 대사관은 이 대책의 최우선순위 두 가지가 민심을 수습하고 생활필수품을 광주에 공급하는 것이라고 보고했다. 이 위기의 여파로 전남지사와 치안본부장, 전남도경국장이 경질됐다.

광주에 대한 여행주의경보가 아직 해제되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인들은 아직 광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한국군 관계자는 연세대에 재학 중인 미국인 학생이 광주 시위에서 중요한 일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우리 대사관에 알려왔다. 미국대사관은 한국 정부가 (외국 기자들의) 통역으로 일한 선교사의 아들(미국인 유진 벨 선교사의 외증손자인 인요한 박사를 지칭)을 언급한 것으로 보고 있다.’

블루밍턴(미국 인디애나주)=하윤해 기자 justi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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