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글라이스틴 “전남도청 진압작전 포기하라고 말하지 않았다” 기사의 사진
미국이 1980년 5월 27일 새벽에 전개됐던 계엄군의 전남도청 진압작전을 묵인했다는 내용이 포함된 백악관 상황실 문서. 미국 정부는 이 문서를 기밀해제하면서 일부분을 검은색으로 칠해 공개하지 못할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출처=미국 기밀해제 문서 온라인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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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글라이스틴 주한 미국대사가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전남도청 진압작전이 전개되기 전날인 1980년 5월 26일 “우리(미국)는 광주를 재점령하기 위한 군사작전이 오늘 밤 자정을 전후해 시작될 것이라는 믿을 만한 정보들을 입수했다”고 미국 백악관 상황실에 보고했던 사실이 17일 확인됐다.

그는 이어 “우리는 광주의 무법 상황이 장기화되는 데 대한 위험성을 인지했기 때문에 (군부에) 군사작전을 포기하라고 말하지 않았다”고 백악관에 알렸다.

이 같은 사실은 국민일보가 입수한 당시 백악관 상황실 기밀해제 문서에서 드러났다. 이 문서는 미국이 전남도청 진압작전을 사전에 알고 있었으면서도 이를 묵인했음을 증언하고 있다. 미국이 전남도청 진압작전을 반대하지 않았다는 진술은 이전에도 있었으나 이를 입증하는 미국 정부 문서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백악관 상황실 문서의 제목은 ‘5월 26일 최광수 청와대 비서실장과 회의’다. 전체 2장인 이 문서는 글라이스틴 대사가 최 실장과 만나 대화한 내용을 백악관 상황실에 보고한 것이다.

문서는 글라이스틴 대사가 진압작전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다는 내용으로 시작됐다. 그는 “어젯밤 통화에 이어 나는 최 실장을 오늘 5월 26일 아침에 짧게 만났다”고 썼다. 이어 “존 위컴 주한미군사령관을 통해 광주에서 전개되는 어떠한 군사작전도 인명 피해를 최소화할 것을 요구하는 메시지를 군부 지도부에 보냈다”고 설명했다.

특히 글라이스틴 대사는 “(군부에) 군사작전을 포기하라고 말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모든 현실적인 비군사적 옵션을 모두 다 써봐야 하며 어떠한 군사작전도 최대한 신중하게 수행돼야 한다고 촉구했다”고 덧붙였다.

미국이 군부에 요구한 인명 피해 최소화, 신중한 군사작전 수행 등은 진압작전을 전제로 한 소극적인 대응이었다. 미국은 평화적 해결을 끝까지 고수하며 유혈 작전을 적극적으로 저지하는 노력을 펼치지 않았다. 당시 미국의 대응에 대해 역사적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특히 글라이스틴 대사는 공수부대의 만행을 알고 있었으면서 이들의 진압작전 투입도 막지 못했다.

국민일보는 또 미국이 5·18민주화운동 초반부터 군부의 강경 진압 방침을 알고 있었음을 입증하는 미 국무부 기밀해제 문서를 입수했다. 5·18민주화운동 이틀째인 80년 5월 19일 작성된 이 문서에서 에드먼드 머스키 국무장관은 지미 카터 대통령에게 “한국 군부는 더 이상의 반대(시위)에 참지 않겠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보고했다. 미국은 5·18민주화운동 처음부터 끝까지 군부의 무력 진압 가능성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이를 수수방관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전남도청 진압작전을 담은 백악관 상황실 문서는 네 군데나 검은색으로 덧칠해져 내용이 가려진 상태로 기밀해제됐다. 미국이 아직도 세상 밖에 내놓지 못할 비밀을 갖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드는 대목이다.

계엄군은 1980년 5월 27일 새벽 4시 광주시민들이 7일 동안 차지했던 전남도청에 대한 진압작전을 시작했다. M-16 소총으로 무장한 2만5000여명의 계엄군과 헬기, 장갑차까지 동원됐다. 광주시민들의 마지막 항전이 진압되면서 5·18민주화운동은 막을 내렸다.

블루밍턴(미국 인디애나주)=

하윤해 기자 justice@k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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