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직격 인터뷰-양승준 단장] “한국아이스하키 세계선수권 쾌거는 모두가 죽을힘 다한 결과” 기사의 사진
양승준 대한아이스하키협회 올림픽준비기획단장이 18일 국민일보 편집국에서 한국 대표팀의 폴란드 카토비체 세계선수권대회 디비전1 그룹A 선전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서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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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폴란드 카토비체 아이스하키 경기장에는 눈물을 뚝뚝 흘리는 한국 남자가 한 명 있었다. 우리 대표팀이 세계선수권 디비전1 A그룹 일본과의 경기에서 3대 0으로 이기던 날이었다. 말쑥한 양복 차림으로 라커룸으로 들어가는 우리 선수들을 한 명 한 명 악수하며 눈물을 훔치던 이 남자. 양승준(51) 대한아이스하키협회 올림픽준비기획단장이었다.

왜 울었을까. 그의 눈가에는 뭔가 사연이 가득 들어 있을 것만 같았다. 비인기 종목 설움으로 실업팀에 가지 못한 회한, 34년 만에 일본을 넘어선 감격까지 복잡한 감정들 말이다.

지난 18일 국민일보 편집국 회의실로 초청해 만난 양 단장의 얼굴은 훨씬 밝아 보였다. 사실 우리 아이스하키는 세계적 수준에는 한참 처지는 상태다. 캐나다 미국 러시아 스웨덴 체코 핀란드 등이 주름잡는 무대에서 우리 수준은 2부리그다. 그것도 30여년 만에 3부리그에서 2부리그 안착에 성공했으니, 올림픽에 나가면 강팀에 10대 0, 아니 15대 0, 20대 0으로 지는 수모를 당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양 단장 얼굴에는 자신감이 엿보였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아이스하키 종목 출전이 확정된 우리 대표팀의 미래에 대한 확신 말이다.

-일본전이 끝나자 우리 팀 벤치에서 우는 모습을 봤다.

“정말 너무 복받쳤다. 30년 전 선수로 뛸 때가 생각났다. 일본과 붙으면 10대 0으로 지던 시절이다. 도저히 뚫을 수 없는 콘크리트벽 같았는데, 그날 우리가 완벽하게 이겼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줄줄 흘렀다.”

-왜 아이스하키에 투신하게 된 건지.

“중·고교 때 선수 생활을 시작해 연세대까지 이어졌다. 졸업하니 계속 아이스하키를 할 수 있는 실업팀이 없어서 그만뒀다. 힘들게 만도기계 영업부에 취직했는데, 마침 정몽원 아이스하키협회장이 회장이셨다. 입사 1년차에 정 회장이 의욕적으로 추진한 만도 아이스하키팀 창단을 도맡았다. 그렇게 지금까지 온 거다.”

-실업 아이스하키팀을 염두에 두고 취직한 것 아니냐.

“절대 아니다. 군대 갔다 취직하려 했는데 학점이 너무 안 좋았다. 아이스하키 선수였다는 게 부끄러워 늘 이력을 숨겼다. 여기저기 떨어지고 만도에 지원했는데 면접에서 한 임원이 ‘당신 운동했지, 학점 보니 그러네’라고 묻더라. 그래서 ‘어떻게 아셨나요’라고 했더니, ‘운동권 학생이네’ 그러더라. 내가 ‘아 그게 아니라 아이스하키 했다’고 하자, 전부 껄껄 웃었다. 그래서 취직이 됐다.”

-아이스하키 얘기를 해보자. 4월 세계선수권 디비전1 그룹A 경기에서 우리 팀이 네 경기 모두 너무 잘하더라.

“선수들과 감독, 코치가 한몸이 돼 정말 죽을힘을 다해 준비한 결과다. 협회와 선수단 지원부서도 온 힘을 다했다. 백지선 감독을 데려온 게 결정적이었다.”

-나도 아이스하키 마니아다. 백 감독은 잘 안다. 내가 좋아하는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뉴욕 레인저스의 라이벌팀(피츠버그 팽귄스) 수비수였다.

“정말 대단한 리더다. 백 감독의 리더십은 한마디로 진정성이다. 어릴 때부터 받은 교육, 품성, 아이스하키 노하우를 우리 선수들에게 전부 주려고 한다. 완전히 선수단을 장악하고 있다. 선수들에게 지금 백 감독은 ‘신’이다.”

-구체적으로 백 감독이 어떻게 지도하는지.

“선수들에게 훈련과 경기 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시키지 않는다. 모든 선진기법을 동원해 상대팀 전력 분석을 하고, 그걸 개별 선수에게 아주 구체적으로 지시한다. 진짜 NHL 구단을 그대로 옮겨온 것 같다. 백 감독이 세계 유수 지도자들과의 네트워크도 잘돼 있어서 수준 높은 팀과 대회에 참가해 실전경험도 많이 한다. 시합 전에는 ‘우리는 기적을 일으켜야 한다. 그리고 기적은 이뤄진다. 뒤로 물러설 생각을 하는 사람은 내 팀에서 떠나라’ 그렇게 말한다. 어떻게 우리 선수들의 혼이 움직이지 않겠나.”

-박용수 코치도 엄청난 커리어를 가진 선수 출신인데.

“경력만 보면 박 코치가 더 NHL에서 엘리트였다. (박 코치는 미네소타 와일드, 뉴욕 아일랜더스 등을 거치며 통산 400 공격 포인트를 올린) 화려한 공격수 출신이다. 백 감독과는 서로 라이벌이었는데, 백 감독이 박 코치를 딱 집어 데려왔다. 박 코치는 천재다. 엄청난 분석력을 지닌 사람이다. 한번 본 선수는 이름, 등 번호, 장단점을 마치 데이터베이스처럼 기억한다.”

-아이스하키만큼 재밌는 경기가 없는데, 국내에선 왜 이리 인기가 없는지.

“가장 정직한 스포츠다. 어떤 경기보다 스피디하고 똘똘 뭉친 팀워크, 정신력이 없으면 절대 이길 수 없는 경기가 바로 아이스하키다. 한번 빠지면 절대 벗어날 수 없다. 저처럼 중년이 된 아이스하키 선수 출신들도 동호회, 스포츠클럽 등에서 아이스하키를 한다.”

-그럼 인기 스포츠가 될 수 없을까.

“일단 저변이 넓어져야 한다. 아이스하키 링크 수가 절대적이다. 링크가 많아지면 자연스레 아이스하키를 즐기는 인구가 늘어난다. 보고 직접 즐기고 하다 보면 인기 스포츠가 될 것이다. 지금 링크는 포화 상태다. 늘어날 저변은 깔렸지만, 클럽들이 서로 링크를 차지하기 위해 아비규환이다.”

-다시 물어보자. 우리가 일본을 이긴 비결이 진짜 뭔가.

“우리는 백 감독을 모셔오고, 용병 선수도 여러 방면으로 적절하게 평가해 적임자들을 뽑아 좋아졌는데, 일본은 상대적으로 이전보다 후퇴했더라. 우리 선수들이 페널티를 받아 5대 3 상황이 됐는데도 숫자가 두 명이나 더 많은 일본팀은 결정적 슈팅 하나 쏘지 못했다.”

-용병 6명은 정말 잘하더라.

“다른 용병도 다 잘했지만, 골리였던 맷 달튼이 결정적이었다. 아이스하키 골리는 시합에서 정말 정신력과 집중력을 발휘해야 한다. 경기를 준비할 때부터 필승의 각오를 다져야 한다. 우리 용병들은 자신들이 ‘사온 선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진짜 한국을 좋아하고, 한국 아이스하키 발전에 밀알이 되겠다고 생각한다. 그런 마인드를 가진 선수라야 대표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평창 동계올림픽이 걱정이다. 캐나다 체코 같은 최강팀과 엄청난 수준 차이가 난다.

“이번 대회 전까진 나도 그런 걱정이었다. 그런데 세계선수권을 준비하면서 최강 그룹인 덴마크 노르웨이 등과 1골 차 승부까지 갈 정도로 우리 팀과 선수들이 일취월장했다. 선수들만큼 우리도 여러 방면의 지원을 다할 것이다. 투혼을 다해 좋은 모습을 보여 국민들에게 진한 감동을 드리는 게 목표다.”

신창호 스포츠레저팀장 proco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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