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노석철] 조선업계 부실의 주범 기사의 사진
삼성중공업이 지난 17일 채권단에 자구계획을 제출했다. 삼성그룹 내에선 외환위기 여파로 초래된 삼성자동차 사태 이후 17년 만에 처음으로 구조조정안을 낸 사례라고 한다. 조선업계의 어려움은 이미 오래전부터 수없이 거론됐지만 ‘삼성’ 브랜드를 단 조선사여서 받아들이는 무게감이 다르다. 누적된 조선업계의 부실과 더욱 어두운 미래가 바로 눈앞의 현실이 되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다.

삼성중공업은 일단 팔 수 있는 것은 최대한 팔아 유동성을 확보하고, 부채를 줄이기 위해 살을 도려내는 심정으로 사력을 다해야 하는 처지다. 채권단에 수조원대 운영자금을 요청했다는 얘기도 들리지만 아직 그 정도까지 어렵지는 않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어쨌든 삼성중공업까지 미래가 불투명하다면 우리 조선업계는 이미 생존 자체가 어려운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자아낸다. 삼성중공업은 지난해 1조5019억원의 영업손실을 냈고, 지난 1분기 영업이익은 61억원에 불과했다. 문제는 일감이 안 들어오고, 맡아놓은 일감도 서서히 떨어져간다는 것이다. 삼성중공업은 올 들어 단 한 건도 수주하지 못했고,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도 수주에서 죽을 쑤고 있다. 당분간 조선업계의 미래는 계속 어둡고 호전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수주절벽이라고 하는 춘궁기가 계속되면 내년에는 일감이 모두 떨어질 것이란 위기감이 서서히 목을 조여 온다. 일감이 떨어지면 달리 방도가 없고 공장은 문을 닫아야 한다. 당장 체질을 바꿔서 다른 재주를 길러낼 시간도 없다.

그럼 수주잔량 세계 1∼3위를 늘 놓치지 않았던 국내 조선사들이 왜 이 지경이 됐을까. 원인을 놓고 ‘국내 업체들 간 출혈경쟁’과 ‘대우조선해양 원죄론’이 주로 거론된다. 국내 조선업계는 일감에선 늘 세계 최고 자리를 지켜왔는데, 그게 결국 ‘빛 좋은 개살구’였다는 얘기다. 여기에 대우조선을 비난하는 독설들이 이어진다. 주인 없는 대우조선해양이 눈앞의 실적에 급급해 시장 질서를 흐려놓으면서 우리 조선업계가 함께 부실해졌다는 것이다.

사실 대우조선해양은 외환위기 직후인 2000년 2조9000억원의 공적자금을 받아 기사회생했다. 그러나 속죄하는 심정으로 내실 경영을 하기는커녕 정치권의 낙하산 인사가 줄을 이었다. 월급쟁이 사장들은 단기 실적만 챙긴다는 지적을 끊임없이 받았다.

국내 업체 간 출혈경쟁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선박 수주가 급감하자 조선사들이 해양플랜트로 눈을 돌리면서 극에 달했다. 당시 국내 조선 빅3사이에선 타사가 거의 성사 단계까지 이른 계약을 저가로 밀어넣어 단숨에 뺏어오기도 하고, 하나의 플랜트를 국내 두 회사가 갈라서 수주하는 웃지 못할 일들이 벌어졌다고 한다.

여기에 능력도 안 되는 설계까지 하겠다고 수주를 했다가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쪽박을 차기 직전에 몰리게 됐다. 지난해 조선 3사가 낸 총 8조5000억원의 영업손실 가운데 7조원이 해양플랜트에서 발생했다. 이 중 대우조선해양의 부실 규모가 4조원으로 가장 컸다. 조선업계에선 “대우조선이 물을 흐려놓지 않았다면 이 지경은 안 됐을 것”이란 불만이 터져나온다.

게다가 대우조선해양은 정부 지원을 받아 회생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업계의 기록에 따르면 1987년, 1989년, 2000년, 2015년 등 적어도 네 차례나 된다고 한다. 국가가 기업에 이 정도 지원을 해줬으면 의무를 다한 거 아닌가. 이제는 그런 악순환을 끊어야 하지 않을까. 지금은 빅3 중 하나 살리기도 벅찬 상황일 수 있다. 정부가 또 다시 수를 잘못 두면 공멸할 수도 있다는 걱정이 앞선다.

노석철 산업부장 schr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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