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뷰-손화철] 알파고에 대해 묻다 기사의 사진
알파고도 대단했지만, 알파고에 대한 관심이 끓다가 식는 속도도 놀라웠다. 워낙 새로운 기술의 등장이 잦아서 내성이 생긴 탓일 터이다. 그러나 알파고는 ‘배움’이라는 신비한 과정을 모방하는데 성공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이세돌 9단이 스승을 이겼듯 배움의 결과는 가르침을 넘기 때문에 인공지능의 판단에 무작정 의존하는 세상이 올 가능성은 매우 높아 보인다. 이런 특별함 때문인지 알파고 열풍 이후 계속 회자되는 두 이슈가 있는데, 유감스럽게도 정작 꼭 필요한 논의는 살짝 비켜가고 있어 검토해 보려 한다.

먼저 인공지능이 자의식을 갖게 되는 경우에 대한 시나리오들이 많이 언급된다. 그러나 알파고가 보여준 능력은 놀랍지만 제한적이기 때문에 자의식을 운운하는 것은 지나치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감성, 상상력, 창의력, 탐욕, 심술 등을 구현하는 것은 요원해 보이고 개발자들이 굳이 그런 노력을 해서 얻을 실익도 적다. 이런 논의는 흥미롭지만 당면한 실제 문제를 직시하는 것을 방해한다. 이와 반대로 알파고를 만든 것은 결국 인간이고, 이세돌이 대국에 연거푸 지면서도 보여준 품격만 고려해도 인공지능과 인간은 전혀 차원이 다르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인공지능을 개발한 사람은 인류 전체가 아니라 소수의 개발자들이고, 이세돌을 제외한 거의 모든 사람은 절대 알파고를 이기지 못한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이세돌의 1승은 이세돌의 승리지만 그의 4패는 인간 모두의 패배다. 게다가 이 세상에는 품격을 갖추지 못한 인간이 많고, 그 품격마저 효율성 앞에서는 별 의미가 없다.

인공지능이 대량 실업을 불러오리라는 예상과 우려 역시 현실적이다.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일자리가 생겨나겠지만 그 전환의 기간은 길고 고통스러울 것이다. 단순 노동부터 대체해 온 과거의 기술들과는 달리 인공지능은 변호사 같은 최고 전문직을 대체하게 되리라는 점도 고민거리다.

상황이 이러하므로 ‘배움’의 능력을 가지게 된 인공지능은 자의식이 없어도 이미 충분히 위험하다. 세상의 악한 권력관계 속에서는 인공지능이 권력과 부의 집중을 심화시키고 다수인 약자들의 자유와 행복을 제한하는 방향으로 사용될 공산이 크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하는 것 말고 인공지능이 강한 소수가 약한 다수를 억압하는 도구로 전락하는 상황을 걱정해야 한다.

이렇게 비관적인 예측과 반응만큼 심각한 문제가 또 있다. 이 우려들이 깔고 있는 전제, 즉 기술의 발전을 통제 불가능한 날씨 같은 현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다. 그러나 기술은 인간의 산물이다. 따라서 그 발전에 수동적으로만 대응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인공지능의 발전이 대량 실업으로 이어진다면 그 발전의 방향을 조정해야 한다. 간단하지는 않겠지만 세상의 권력관계를 재조정하는 것보다는 인공지능이 그 권력관계 내에서 악용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훨씬 쉽다. 기술의 유용성에 대한 의견 충돌이 있다면 기술 개발의 유보에 합의할 수도 있다.

기술 발전이 무조건적인 선이며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황당하게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기술의 통제는 이미 이루어지고 있다. 핵 관련 기술 활동은 국제적으로 제어·조정된다. 자동차 기술은 속도를 버리고 환경과 안전을 택했다. 인공지능은 인류의 역사를 근본적으로 바꿀 기술이기 때문에 강력한 제어가 필요하다. 우선 인공지능이 간접적으로라도 윤리적 판단의 주체가 되는 일이 없도록 하고, 의사소통의 상대보다는 정밀한 판단을 수행하는 기능적 보조 역할에 충실하게 해야 한다. 기술의 독점과 소수의 악용을 막기 위한 정책적 노력도 중요하다.

인공지능, 생명공학, 뇌공학, 나노기술, 로봇공학, 빅데이터와 같은 최신 기술들은 인간 삶의 목적이 무엇이며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 물음을 다시 묻게 한다. 다소 막연한 이 고민을 구체화하기 위해 개발자, 사용자, 정책 결정자의 입장에서 특정 첨단 기술 개발을 포기하는 것이 옳다는 결론을 내릴 가능성을 상정하고 있는지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기술이 엄청난 혜택을 주기도 했지만 인간의 삶과 사고에 남긴 고통의 흔적도 만만치 않다. 인공지능 역시 혜택만을 주지 않을 것이다. 알파고 열풍은 인공지능이 남길 흔적은 어떤 것이며, 어떤 것이어야 할지에 대한 물음으로 이어져야 한다. 바로 그 물음이 사람과 인공지능을 가른다.

*이 칼럼은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와 함께합니다.

손화철 한동대 글로벌리더십학부 교수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