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이지현] 글쓰기, 치유의 열쇠 기사의 사진
어린시절 정서적 학대나 결핍이 있으면 우리 안에 상처 입은 ‘내면 아이(inner child)’가 존재하게 된다. 내면 아이는 자신이 잘못해서 벌을 받는다고 느끼며 죄의식과 수치심에 사로잡힌다.

내 안에서 외로움에 떠는 내면 아이를 돌보지 않고 방치하면 더 큰 화를 입을 수 있다. 부정적인 감정 폭발, 가족 간의 불화, 관계 집착이나 중독 등으로 나타날 수 있다. 내면 아이를 치유할 수 있을까.

‘치유글쓰기’는 우울증이나 스트레스 분노 성폭력 등과 같은 심리적 상처의 치료는 물론 감정을 통제하고 사회적인 관계를 발전시키는 데 효과가 있는 것으로 이미 입증됐다. 미국 텍사스 대학 제임스 페니베이커 교수는 1980년대 후반에 성범죄 피해 여성들을 대상으로 글쓰기가 정신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연구했다. 절망의 늪에 깊이 빠져 있던 피해 여성들이 글쓰기를 통해 구원의 밧줄을 잡을 수 있었다. 노트에 깨알같이 쏟아낸 단어들이 눈물로 흠뻑 젖었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피해 여성들은 악몽의 껍데기를 한 겹 한 겹 벗겨낼 수 있었던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내면 아이를 만나는 방법 중 하나로 치유글쓰기를 추천한다. 방법은 펜을 들고 내면 아이에게 편지를 쓰는 것이다. 치유글쓰기를 통해 자신(내면 아이)이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한다. 자신 안의 해결되어야 할 문제나 갈등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일기장에 누구에게도 알리지 못한 나만의 비밀을 털어놓았던 경험을 떠올리면 쉽게 공감할 수 있다.

안네 프랑크(1929∼45)는 1941년 독일군이 네덜란드를 점령했을 때 강제수용소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2년 동안 작은 다락방에 숨어 지냈다. 안네는 13세 때 생일선물로 받은 일기장에 언제 발각될지 모르는 공포와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안타까움 등을 적었다. 안네가 그토록 필사적으로 원했던 삶을 대신한 것은 일기였다. 이것이 암담한 그의 삶에 한 줄기 빛이 되었다.

만약 갈등을 겪고 있는 인간관계가 있다면 치유글쓰기를 시작해보자. 치유글쓰기는 감정을 쏟아내는 안전한 토론의 장이 될 수 있다. 직장 상사에게 욕을 퍼부어도 좋고, 엄마나 아빠에게 비명을 지를 수도 있으며, 속이 후련하도록 남편이나 아내에게 소리칠 수도 있다. 이렇게 다 쓰고 나면 감정을 다 쏟아내 실제 대화를 할 때 이성을 잃는 일 없이 정상적인 대화를 할 수 있다.

치유글쓰기는 작가가 아니어도 누구나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간단한 질문 중 하나를 선택해 글쓰기의 문을 열자. ‘오늘 가장 나를 놀라게 한 일은 무엇인가’ ‘오늘 나를 가장 감동시킨 일은 무엇인가’ ‘오늘 내가 가장 기억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등에 대해 써본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당신을 깊이 사랑하는 누군가와 대화하는 형식으로 쓴다. 또 다른 방법은 편지 형식으로 쓰는 것이다.

지난 10여년간 ‘시와 글쓰기 치유반’을 인도하고 있는 오경숙 박사는 “우울, 분노, 불안, 슬픔과 굶주림 등의 정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글쓰기는 놀라운 치료 효과를 발휘했다. 특히 배우자나 자녀를 잃고 의사소통 능력이 멈춰버린 사람들에게 언어와 생각, 감정을 열어주는 소중한 창구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자신의 고통과 아픔을 고백, 혹은 편지를 쓰듯이 기록해보자. 지금의 감정이나 생각을 정제하지 않고 모조리 쓰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일단 외로움, 원망의 생각, 분노의 감정, 절망감, 무너져버린 꿈, 미움과 상처, 용서하고 싶지 않은 마음까지도 다 적는다. 그러고 여러 번 그 감정을 느끼며 읽어본다. 주님이 옆에 계신다고 생각해도 좋고, 비록 지금은 볼 수 없지만 나를 이해해주었던 과거의 누군가가 옆에 있다고 가정해도 좋다. 이렇게까지만 해도 감정의 흐름이 달라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지현 종교기획부 선임기자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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