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 삶의 끝을 아름답게 3부 ②] 英 ‘죽음의 질’ 1위 비결은… 공동체에 녹아든 호스피스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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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 임종케어 선진국서 배우다

② 호스피스의 원조, 영국


지난달 26일 오전 영국 런던 외곽 시드넘에 위치한 성 크리스토퍼 호스피스 응접실에서 산소호흡기를 낀 채 휠체어에 앉은 파텔(69)씨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주치의가 도와줄 수 있는 게 더는 없다고 하더라고요. 죽음이 두렵습니다.”

파텔씨는 2년 전 만성폐쇄성 폐질환(COPD) 진단과 복부 대동맥류 진단을 함께 받았다. 죽음 맞을 준비가 돼 있지 않은 그에게 주치의는 성 크리스토퍼 호스피스를 권했다. 이날 아내와 함께 성 크리스토퍼를 찾은 파텔씨는 등록 상담을 받기로 했다.

세계 최초의 호스피스

봄볕이 쏟아지는 성 크리스토퍼 호스피스의 응접실은 삼삼오오 모여 다과를 들거나 얘기를 나누는 사람들로 활기가 넘쳤다. 파텔씨처럼 휠체어를 탄 백발의 노인, 병색이 완연한 중년 남성 등 대부분 말기 환자들인데도 얼굴은 하나같이 평온했다. 환자를 방문한 가족들, 지역 성직자들, 인근 주민 등은 그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있었다.

1967년 의사 시슬리 손더스가 세운 성 크리스토퍼 호스피스는 세계 최초의 호스피스다. 암뿐 아니라 각종 질병의 말기 환자들을 두루 받아 가족 같은 ‘공동체’를 만들겠다는 신념이 뿌리가 됐다. 지금은 임종은 물론 사별 후 돌봄, 전문인력 양성까지 책임지는 ‘종합기관’으로 자리매김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4년부터 지난해 상반기까지 성 크리스토퍼 호스피스에서 돌봄을 받은 말기 환자는 3300여명을 넘는다. 전년보다 13% 증가했다. 인근 브롬리, 크로이던, 램버스, 루이스햄과 서더크 지역의 150만명에 이르는 인구가 잠재적인 돌봄 대상자다. 4개 병동, 48개 병상이 있고 가정방문형, 지역기반 센터형, 외래진료형 등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각 환자의 상황에 맞는 임종 돌봄을 적절하게 제공하기 위해서다. 455명의 직원, 100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이 함께 일하고 있다.

질적인 성장도 돋보인다. 원하는 장소에서 죽는 환자의 비율이 매년 늘어 2014년부터 지난해 상반기까지 성 크리스토퍼 환자의 72%가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삶을 마무리했다. 병원에서 죽는 환자 비율은 21%에서 17%로 줄었다. 호스피스 방문 서비스는 같은 기간 1만4000회 진행됐다. 한밤중, 주말 등에 이뤄진 방문도 600여회에 달한다. 심장질환, 치매 환자 등 상대적으로 호스피스 제도에서 소외된 환자들의 유입도 늘었다.

환자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손길’은 이어진다. 지난해 상반기까지 1년 동안 800여명의 성인 유가족이 사별 돌봄을 받았다. 어린이에게는 ‘촛불 프로젝트’라는 맞춤형 사별 돌봄을 통해 죽음을 바라보는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준다. 지난해 상반기까지 1년간 어린이 373명이 이 서비스를 받았다.

지역사회로 파고들다

성 크리스토퍼 호스피스는 최고 수준의 ‘교육기관’이기도 하다. 매년 4000여명이 호스피스 완화의료와 임종 돌봄, 자원봉사 활동 등에 대한 교육을 받는다. 인근 호스피스기관 직원들이나 일반의(GP) 등 의료전문가를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사회복지사나 성직자들은 아예 상주하면서 교육받는다. 1년에 1∼2번 열리는 1주일짜리 코스에는 아프리카, 동유럽 등지의 호스피스 전문인력이 ‘유학’을 오기도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유가족이 교육과정을 거쳐 ‘자원봉사자’로 다시 돌아오는 경우도 늘고 있다. 다만 유가족 본인의 심리적 안정을 위해 사별 후 1년이 지나야 자원봉사가 가능하다. 역할에 따라 8일에서 8주까지 자원봉사자 교육을 받고 나서 현장에 배치된다.

내년이면 설립 50주년이 되는 성 크리스토퍼 호스피스는 지역사회와 공동체에 녹아드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 사람의 임종 전과 후의 모든 과정을 연속적으로 돌보려면 그가 속한 이웃, 종교단체, 동호회 등 각 공동체의 지지가 핵심이기 때문이다.

성 크리스토퍼 호스피스는 예술의 밤, 콘서트, 사진전 등 다양한 행사를 통해 지역사회에 다가가고 있다. 특히 죽음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는 ‘죽음 대화’ 프로그램으로 영적 유대관계를 형성하고 임종을 두려워하지 않는 문화를 조성하는 데 힘쓰고 있다.

교육 담당자 겸 도서관 사서인 데니스 브레디씨는 “성 크리스토퍼 호스피스는 단순한 호스피스가 아니라 환자와 가족의 사회·신체·정신적 고통을 종합적으로 돌보는 ‘동반자’”라고 강조했다. 그는 “벽을 허물고 공동체가 호스피스와 임종 돌봄에 녹아들 때 도움이 필요한 사람과 도움을 주고 싶은 사람들이 성 크리스토퍼 호스피스로 모여 상호 작용하는 선순환이 이뤄진다”고 덧붙였다.

런던=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

후원 : 한국언론진흥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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