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이재훈] 저유가 시대, 에너지산업 틀 바꿀 적기다 기사의 사진
사우디아라비아의 나이미 석유장관이 전격 교체됐다. 그는 4월 카타르에서 열린 석유수출국회의에서 국제유가 추가 하락을 막기 위해 석유수출국 간 생산 감축을 제안할 예정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사우디 국왕의 전적인 신임을 받는 무하메드 살만 제2왕세자가 나서서 이란이 동참하지 않는 감산 정책은 무의미하다며 이를 무산시켰다고 외신은 전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리더인 사우디의 주무장관 교체가 향후 국제유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셰일가스 축복을 듬뿍 받은 미국의 사정은 어떤가. 지금은 배럴당 40달러대로 회복되긴 했지만 지옥 같던 20달러대 유가를 겪고 나더니 올 1분기 엑슨모빌과 쉐브론의 수익성은 크게 악화됐다. 이미 도산한 크고 작은 석유회사만 60여개다. 석유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 4명 중 1명은 실직했고 생산량은 하루 60만 배럴 감소했다. 세계 경기 침체의 영향도 있지만 지난 수년간 미국의 증산으로 국제유가가 하락을 거듭해도 눈 하나 까닥 하지 않고 세계시장 점유율을 유지해 온 사우디와의 경쟁 탓도 크다. 사우디는 석유의 한계생산비용이 가장 싼 나라다. 양국의 ‘석유 레이스’가 어떻게 끝날지도 관심거리다.

‘불황형 저유가 시대’라고 했던가. 국내 업계도 몸살을 앓고 있다. 정제 마진이 낮아진 정유업계는 물론 천연가스 시장도 수요 전망이 기대에 못 미친다. 석탄은 설자리가 마땅치 않고 신재생에너지 업계의 가동률은 절반 이상 떨어졌다. 뭔가 탈출구가 있어야 하는데 긴 터널의 끝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원점에서 다시 생각해볼 때가 됐다. 저성장, 저소비는 이미 이 시대의 뉴노멀(new-normal)이 됐다. 에너지도 이를 피해가기는 어렵다. 고도 성장기에 경험했던 확대일로의 시장 수요를 더는 기대할 수 없다. 제2차 에너지 기본계획에 따르면 지금부터 2035년까지 우리나라 전체 에너지 수요는 연 평균 1%를 약간 넘는 증가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1990년대 연평균 7%를 넘었던 것에 비하면 엄청난 차이다.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포스트 교토체제 하에서는 화석연료보다 친환경 에너지 사회로의 과감한 전환도 이뤄져야 한다. 에너지산업에서도 뉴노멀을 찾아야 한다는 얘기다. 에너지산업의 구조 개편은 피할 수 없는 과제다. 에너지의 해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로서는 역설적으로 저유가 시기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구조 개편을 모색할 수 있는 적기일 수도 있다.

에너지산업의 구조 개편을 위해서는 진입장벽 해소, 가격 기능 회복, 원활한 시장정보 공유 등 몇 가지 패러다임의 변화가 이뤄져야 한다. 반세기가 넘도록 에너지는 경제 성장과 국민생활 안정을 위해 무조건 안정적으로 공급돼야 했다. 공기업 형태의 시장 독점도 용인해 왔고, 일정 부분 진입장벽에 의한 적정 이윤을 보장해줬고, 공공재라는 인식 하에 정부가 가격 형성에 개입하기도 했다.

이젠 달라져야 한다. 경제 전체로 보면 에너지 수요는 크게 늘지 않으면서도 친환경적인 고급 에너지는 더 필요로 한다. 에너지 분야에 더 많은 투자가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민간 부문이 자율적으로 투자 및 기술 개발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이 바뀌어야만 이를 감당할 수 있다. 반쯤 가다가 멈춰버린 전력산업 구조 개편, 완행열차에 탑승한 천연가스 도입의 경쟁 촉진 등 재차 검토해볼 만한 과제들은 많다.

지난주 정부가 공공기관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발표한 에너지 공기업 기능조정 방안이 그 출발점이 되길 기대한다. 석유 부국인 사우디도 정부조직 개편을 통해 석유 의존도를 줄이는 대신 세계 최대 국영 석유회사인 아람코의 주식을 공개 매각해 조성된 국부펀드로 비(非)석유 분야의 산업 발전을 도모한다고 하지 않는가.

이재훈 한국산업기술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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