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카터 “YS 의원직 제명 고통… 朴 대통령 자유화 기조 필요” 친서 기사의 사진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이 신민당 총재로 있던 1979년 8월 11일 YH무역 여종업원들과 함께 농성을 벌이던 서울 마포 신민당사에서 강제로 끌려나오고 있다. 동아일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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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단은 YH사건이었다.

187명의 여성 노동자들이 1979년 8월 9일 당시 김영삼(YS) 총재가 이끌던 신민당 당사로 몰려왔다. 이들은 YH무역 노동자들이었다. 작은 가발 제조업체로 시작해 크게 성공했던 YH무역은 8월 6일 일방적으로 폐업을 공고했다. 회사 기숙사에서 벌이던 농성을 경찰이 해산시키자 이들이 찾은 곳은 신민당사였다.

여성 노동자들은 신민당사 4층 강당에서 “회사가 폐업을 철회해 계속 일하게 해 달라”면서 철야농성을 시작했다. 또 경찰이 강제 진압할 경우 “모두 뛰어내리겠다”고 결의했다.

하지만 경찰 1000여명이 8월 11일 새벽 2시 신민당사에 들이닥쳤다. 다친 사람을 제외한 여성 노동자 172명이 전원 연행됐다. 이 과정에서 여성 노동자 김경숙(당시 21세)씨가 목숨을 잃었다. 경찰은 김 총재도 당사에서 강제로 끌어내 집으로 보냈다. 강제진압 직전, 김 총재는 “너희가 정말 저 여공들을 뛰어내리도록 할 참이냐”며 당사 정문에 있던 경찰 간부의 뺨을 때리기도 했다.

YS의 분노는 9월 16일 게재된 뉴욕타임스 인터뷰로 이어졌다. 김 총재는 “카터 행정부는 박정희 대통령의 ‘소수 독재 정권’에 대한 지원을 끝내라”고 울분을 토했다. 이어 “미국이 점점 더 국민으로부터 소외된 독재 정권이냐, 아니면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다수(국민이)냐를 분명하게 선택할 시점이 왔다”고 주장했다.

박정희정권은 이 인터뷰를 문제 삼아 김 총재의 국회의원직 제명을 밀어붙였다. 미국에 의존하는 반민족적 발언을 했고 국가원수를 모독했으며 국회의원의 품위를 손상시켰다는 게 이유였다. 공화당은 10월 4일 날치기로 의원직 제명안을 통과시켰다. 김 총재는 “나는 오늘 죽어도 영원히 살 것”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에 앞서 세 명의 신민당 원외 위원장은 YS가 총재로 당선됐던 신민당 전당대회 표결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며 법원에 ‘당 총재단 직무정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김 총재는 배후가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9월 8일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였다. 김 총재는 졸지에 당 총재직도, 의원직도 빼앗긴 처지가 됐다.

미국은 김 총재의 의원직 제명에 항의하기 위해 윌리엄 글라이스틴 주한 미국대사를 본국으로 소환했다. 지미 카터 대통령까지 직접 나섰다. 국민일보는 카터 대통령이 10월 13일 박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를 입수했다.

친서에서 카터 대통령은 “저는 김영삼씨의 의원직 제명과 당직 취소(총재직 직무정지)로 결말이 난 최근 몇 주의 상황에 깊게 고통받고 있습니다… 정치적 비판에 대한 구속과 제재의 기조가 계속된다면 당신(박 대통령)이 최근 이뤄낸 발전의 대부분이 위협받을 것입니다… 이 글을 당신에게 쓰는 목적은 솔직히 협박이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당신이 자유화 기조를 가장 빠른 기회에 재개하는 수단을 찾기를 촉구합니다…”라고 썼다.

블루밍턴(미국 인디애나주)=하윤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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