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전두환 협박 위해 ‘北과 접촉’ 충격적 카드도 검토 기사의 사진
1980년 8월 14일 육군계엄보통군법회의 대법정에서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내란음모사건’ 첫 공판을 받고 있다. 왼쪽은 문익환 목사. 당시 미국 정부는 ‘김대중 구명’을 위해 전방위적으로 전두환 정권을 압박했다. 서울신문 제공

이전이미지다음이미지

지미 카터 미국 행정부는 전두환 전 대통령과 끊임없는 불화를 겪었다. 전두환의 대통령 취임 전에는 축출을 검토했고, 취임 직후에는 그의 몰락을 야기할 수도 있는 전방위적인 대한(對韓) 제재조치를 준비했다. 하지만 둘 다 실행에 옮기지는 않고 전두환 체제를 묵인했다. 특히 김대중 사형선고(80년 9월 17일)를 앞두고 카터 행정부는 긴박하게 움직였다. 스탠스필드 터너 CIA 국장은 9월 15일 '한국: 정책 옵션들'이라는 문서를 작성했고, 9월 16일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카터 대통령에게 '김대중'이란 제목의 보고서를 전달했다. 미국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사형집행을 막기 위해 메가톤급 제재조치로 전두환 정권을 압박했다.

‘김대중 처형’…호남을 중심으로 한 전국민적 저항 우려

카터 대통령은 ‘김대중 처형’이 실제로 이뤄졌을 경우 5·18민주화운동의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호남을 중심으로 한 국민적 저항을 우려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 80년 11월 4일 치러진 미국 대선을 앞두고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였던 ‘인권 외교’가 치명상을 입지 않을까 걱정했다. 미국 내 인권 단체의 압력도 거셌다.

도널드 그레그 국안전보장회의(NSC) 참모는 11월 14일 작성된 NSC 문서에서 “카터 대통령과 에드먼드 머스키 국무장관이 김대중 문제와 관련해 전화통화를 했다. 대통령은 김대중이 빨리 처형되지 않을까 매우 걱정했다. 머스키 장관이 대통령을 진정시켰다”고 썼다.

“반(反) 전두환 쿠데타로 그의 몰락을 낳을 수 있다”

터너 CIA 국장은 국방부가 제시한 ‘한·미 군사관계 격하’에 대해 “한국 군부 고위 인사들의 분열을 낳고 전두환에 대한 군부 지지가 약화될 것”이라며 군부 불안정성이 ‘반(反) 전두환 쿠데타’로 이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또 “(남한에서 김대중에 대한 동정이 부족한 것을 감안하면) 미국의 내정 간섭에 분노하는 일부 고위 장교들 사이에 반미감정이 발생할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또 다른 강경책은 ‘미국의 대북 정책 재검토’였다. 당시로선 충격적인 발상이었다. 미국은 남한을 통하지 않는 북한과의 접촉을 거부하고 있었다. 그러나 북·미 정부 간 관계 개선을 위한 문화적 교류를 북한과 추진하면서 남한을 압박하는 내용의 제재조치를 검토했다. 미국은 이 정책을 검토하며 남한에 대해 ‘위협·협박(threat)’이라는 단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했다.

터너 국장은 북·미 직접 접촉이 이뤄지면 “군부 내에서 전두환에 대한 지지 약화를 야기하고 이것이 알려진다면 그의 몰락을 낳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전두환에 대한 개인적 호소…“그는 대가를 요구할 것”

미국의 한국 철강 수입 규제에 대해선 부정적이었다. 터너 국장은 “전면적인 금수(禁輸) 조치 같은 것이 도입되지 않는 한 이런 조치는 효과가 없을 것”이라며 “어떠한 금수조치라도 시행된다면 한국에서 미국과 일본의 사업 이익은 피해를 볼 것”이라고 주장했다.

터너 국장은 유일한 유화책이었던 카터 대통령의 개인적 호소를 “전두환이 아마도 받아들일 것”이라며 “그는 대가를 요구할 것이 확실하다”고 예상했다. 전 전 대통령은 김대중 사형을 무기징역으로 낮춘 뒤 새로 당선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 예상은 적중했다.

“남한을 고립시키기 위한 외교적 공세 계속할 것”

터너 국장은 북한의 반응도 면밀히 살폈다. 그는 ‘한·미 군사관계 격하’가 시행되면 “북한은 남한에 대한 미국의 안보 지원을 축소하는 조치로 인식할 것이지만 남한을 군사적으로 공격할 기회로는 인식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남한을 배제한 북·미 정부 간 직접 접촉 검토’에 대해선 “북한은 남한을 고립시키기 위해 미국과의 외교 관계 수립을 추구하는 등 외교적 공세를 계속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발뺌으로 미국 애를 태운 전두환…“나는 재판에 개입할 수 없다”

80년 7월 ‘전두환 축출’을 검토했던 터너 국장과 브레진스키 보좌관이 제재조치 추진에 반대한 것은 눈에 띄는 대목이다. 이들은 전두환의 대통령 취임 이후에는 더욱 조심스럽게 한국 정책을 추진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미국이 제재조치를 단행하지 않은 결정적인 이유는 처형 가능성을 낮게 봤기 때문이다.

브레진스키는 카터 대통령에게 “전두환이 일부 참모들로부터 김대중을 사형시켜 방해세력을 제거해야 한다는 조언을 받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나는 김대중이 처형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미 국방부는 제재조치를 즉각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브레진스키는 “브라운 국방장관의 보고서에 서술된 제재 조치들은 역효과가 발생할 것 같다”고 지적했다.

전 전 대통령은 김대중 구명 요구에 발뺌으로 일관하며 미국의 애간장을 태웠다. 브레진스키는 “윌리엄 글라이스틴 대사가 전두환을 만났는데, 그는 ‘1심 판결에 개입할 수 없다. 확정 판결이 내려져 나에게 올 때까지 손이 묶여 있다’고 답했다”고 썼다.

대법원은 81년 1월 23일 김대중에 대한 사형선고를 확정했다. 하지만 같은 날 전 전 대통령은 이를 무기징역으로 감형하며 미국의 요구에 화답했다. 미국의 인정이 필요했던 전 전 대통령은 김대중 사형선고를 미국과의 협상카드로 활용하며 정치적 실리를 챙겼다.

블루밍턴(미국 인디애나주)=하윤해 기자 justice@kmib.co.kr

▶[美정부 기밀해제 문서 단독 입수 모두 보기 클릭]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