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희망이다] “눈물바다 됐던 수형소년 공연 잊을 수가 없어”

⑩ ‘국민 아버지’ 최불암의 꿈

[소년이 희망이다] “눈물바다 됐던 수형소년 공연 잊을 수가 없어” 기사의 사진
탤런트 최불암이 지난 13일 서울 홍대 인근 공연장 ‘스페이스 제로’에서 배우를 꿈꾸는 ‘학교밖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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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4월 15일. 소년 수형자 500명이 무대에 오르는 뮤지컬 ‘춤추는 별들’(연출 정일성)이 천안소년교도소 특설무대에서 공연될 예정이었습니다. 불우한 가정환경과 사회의 무관심으로 수형자가 된 청소년들이 주위의 관심과 사랑에 힘입어 분노와 절망을 삭이고 밝은 미래를 열어간다는 줄거리입니다.

대통령이 전화로 “나, 김대중입니다”

“그날 무대를 위해 천안소년교도소에 막 도착했는데 대통령이라며 전화가 왔어요. ‘나, 김대중입니다. 아이들을 위해 연극하러 갔다면서요. 어른들이 아니라 아이들을 위한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기억이 다 나진 않지만 대략 이런 말씀이었습니다. 소년 수형자들과 함께 연극한다고 대통령이 직접 전화를 한다는 게 놀랍기도 하고 감동스럽기도 하고…. 대통령의 전화는 굉장한 감동이고 충격이었습니다.”

탤런트 최불암(㈔제로캠프 이사장) 선생을 지난 13일 서울 마포구 와우산로 홍대 인근 스페이스제로에서 만났습니다. 그는 16년 전의 일화를 들려주었습니다. 독재정권에 의해 사형수가 돼 옥중생활을 했던 김대중 대통령이 소년 수형자들에게 애정을 표시한 것입니다. 뮤지컬에 우정 출연했던 최 이사장이 그날 그 무대의 감동을 이렇게 들려주었습니다.

“무대에 오른 소년 코러스단 500명이 뮤지컬 곡을 합창으로 음∼음∼음∼ 허밍하는데 무대에 오른 소년들과 관객인 소년 수형자까지 모두 울었어요. 물론 배우를 비롯한 관계자들도 울었지요. 지독한 충격을 받으면서 이 아이들을 위한 일을 놓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어요. 안타까운 점도 있었어요. 일본 NHK와 미국 NBC가 와서 취재했는데 우리 언론은 오지 않았어요. 언론이 아이들을 비춰주어야 국민이 사랑을 하든, 환한 빛이든 나눠줄 텐데 그렇지 않았어요.”

제로캠프는 2013년부터 3년째 김천소년교도소에서 뮤지컬 공연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22일 뮤지컬 공연 ‘날개’에는 소년 수형자 20여명이 출연했습니다. 주인공이 된 소년들은 10개월 동안 춤과 연기 그리고 노래 연습을 통해 삶을 반성하면서 새로운 꿈과 희망을 다집니다. 최 이사장이 “소년 수형자들의 공연은 매년 눈물바다”라면서 가슴 아픈 일화를 들려줍니다.

“제가 여진이와 함께 불렀던 ‘아빠의 말씀’(원곡-Life Itself Will Let You Know)이 김천소년교도소 뮤지컬에서 불려 졌는데 가사 중에 ‘나는 누가 이끌어 주나요/ 그냥 어른이 되나요 나는 어떻게 하면 되나요’ 등의 대목에서 아이들이 모두 우는 거예요. 부모의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한 아이들이 자기 아픔에 우는 거지요. 공연이 끝난 뒤에 출연한 아이들의 부모들을 무대에 올라오라고 했는데 한 아이가 눈물을 그렁그렁 흘리는 거예요. 왜 그러니 했더니 부모가 오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파요.”

중앙고 학창 시절엔 패싸움도

‘수사반장’의 박 반장이자 ‘전원일기’의 김 회장 그리고 최근 TV프로그램 ‘한국인의 밥상’ 제작을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다니는 ‘국민 아버지’ 최불암의 청소년 시절은 어땠을까요. 모범생은 아니었답니다. 서울 중앙고 시절 주먹으로 놀았던 그가 패싸움에 얽힌 일화를 들려주었습니다.

“중앙고와 경복고가 농구시합 중에 시비가 벌어지면서 경복고 아이를 내가 손을 좀 봤지. 그 사건 후, 친구 4명과 함께 낙원상가 부근을 지나는데 경복고 우두머리인 중덕(가수 차중락의 형)이가 패거리 10명을 데리고 나타났어. 막다른 골목에 끌고 가더니 자신의 경복고 모자를 내 발 아래 던지면서 밟으라는 거야. 만일 밟았다면 큰 사고가 생겼을 거야. 중덕이 패거리에겐 무기가 있었거든. 그래서 경복고 농구선수를 팬 것을 사과했어. 그랬더니 내가 쓴 중앙고 모자를 벗겨서 땅에 던지더니 몇 번 밟고는 자기 패거리들에게 ‘야, 가자!’하면서 떠나는 거야. 나와 모교의 자존심이 짓밟혔다는 생각에 한숨을 못 잤어. 복수하기 위해 다음 날 아침 일찍 우리 패거리들을 데리고 중덕이 집에 찾아갔어. 눈치를 챈 중덕이 어머님이 아침을 같이 먹자면서 나를 방 안으로 끌어들였어. 집 밖에 대기하던 우리 패들은 내가 명령하면 뛰어 들어오기로 했으니 중덕이에겐 큰 위기였지. 그런데, 어머니 앞에서 자식을 팰 순 없잖아. 그래서 중덕이에게 사과 받고는 끝냈어. 40년 만에 중덕이를 만났어. LA ‘주부가요열창’ 출연 때문에 미국에 갔더니 대기업 임원을 지내다 이민 가서 살고 있더라고. 한인교회의 아주 멋진 장로가 되어 있더라고.”

6.25 전쟁 이후 폐허 속에 청소년기를 보낸 그는 “그 시절 청소년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거칠었다”고 했습니다. 학생들이 중무장하고 패싸움을 벌이면 경찰도 개입하기 어려울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래도 그 시절엔 낭만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학교 폭력과 왕따 문제가 심각한 지금과 그때의 차이에 대해 여쭈었더니 이렇게 답합니다.

“옛날보다 잘살게 됐으면 가난한 시절보다 평화와 행복을 더 누려야 되는데 오히려 시기와 질투, 분노와 적개심이 더 커졌어요. 청소년들은 TV, 인터넷, 스마트폰 등을 통해 자본주의의 모순과 폐해를 빠르게 흡수합니다. 부모와 선생에게 지혜를 배우려하기 보다 정답만 써내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의 힘을 키우지 않은 채 자본주의 틀에서 몸부림치다가 좌절하면 생명을 버리기까지 합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청소년 자살률 1위인 국가가 되고 말았습니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전국 후원회장을 31년째 맡고 있는 그는 인간애 상실과 생명 경시의 원인은 탐욕스런 자본주의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미국에서 경험한 오래 전의 일화를 들려주었습니다.

“1984년 어린이재단 본부가 있는 미국 리치몬드를 방문해서 한국 소녀를 입양한 미국인 부부를 만났어요. 일주일에 2∼3번 뇌전증 증세로 발작을 일으키는, 그레이스(당시 22세, 대학 3학년)라는 이름의 한국 입양 소녀를 극진히 돌보는 부부였습니다. 한국인으로선 부끄럽고 한 인간으로선 존경스러워서 ‘당신들 (미국 크리스천의) 정신엔 무엇이 있냐?’라고 물었더니 저를 가리키며 ‘(어린이재단 후원회장으로) 앞장서서 하는 당신의 헌신과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한국이 미국에게 자본주의를 배우면서 그들의 문화예술과 사랑을 배우기보다는 인간을 파멸시키는 탐욕을 숭배하면서 나라가 이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위기청소년 대안예술학교 설립이 꿈

최 이사장의 마지막 꿈은 위기청소년들을 위한 예술학교를 세우는 것입니다. 소년 수형자들을 문화예술로 치료하고, 위기청소년들을 연극으로 지도하면서 ‘상처로 얼룩진 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예술’이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아버지를 일찍 잃은 뒤 홀어머니(문인들의 아지트 서울 명동 은성주점을 운영한 이명숙 여사) 손에 자라면서 방황하던 위기청소년 최영한(최불암의 본명)에게 꿈과 희망을 준 것도 연극이었습니다.

“위기청소년을 위한 대안예술학교를 만들어 희곡 미술 음악 무용 조명 의상 연기 등의 종합적으로 가르치고 싶습니다.”

새한(22·가명)이는 열 살 때부터 엄마 없이 살았습니다. 방황하던 새한이에게 ‘울림 있는 배우’가 되고 싶은 꿈이 생긴 건 제로캠프에서 연극을 배우면서입니다. 지난해 8월부터 연극 공부를 하면서 공연 조연출과 조명 오퍼도 해봤습니다. 새한이를 비롯해 연극을 배우는 위기청소년 14명 모두 제로캠프가 아니었으면 좌절의 세상 무대에서 분노와 증오를 토하며 쓰러졌을지도 모릅니다.

최 이사장은 위기청소년을 위한 공연장을 사비로 마련했습니다. 하지만 예술학교를 세우는 것은 사비로 역부족입니다. 어린이재단 후원회장으로 수없이 도움을 청했으면서도 자신의 단체를 도와달라는 말은 좀처럼 하지 못합니다. 아버지의 자존심이란 그런 것입니다.

“제로캠프 하면서 인연을 맺은 황교안 국무총리께서 예술학교 설립을 돕겠다고 하셨고, 현대자동차 정의선 부회장이 ‘좋은 일 하시는데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면서 깍듯이 대해주었지만 이런(예술학교 설립) 일을 하는 데는 아마추어입니다.”

국민 아버지의 노년이 아름답습니다. 손자뻘인 위기청소년들에게 연기를 지도하고 밥을 사주고, 소년 수형자들의 아픔을 치유해주는 어른의 모습을 보면서 아버지와 어른을 잃은 세대로서 위로 받습니다. 50년 배우생활과 30년 봉사 인생으로 수고하셨으니 그만 쉬어도 될 텐데 세상이 싫어하는 위기청소년들을 살리기 위해 희망의 걸음을 내딛습니다. 국민 아버지의 꿈인 대안예술학교 세우는 일에 벽돌 하나라도 보태고 싶어졌습니다.

가스펠 라이터 조호진(시인) 사진 김진석(작가) jonggy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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