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김준엽] 실패 받아들이기 기사의 사진

이전이미지다음이미지

실리콘밸리 기업의 성공을 얘기할 때 늘 함께 따라다니는 단어는 실패다. 보통 스타트업의 성공 확률을 5% 미만으로 본다. 100개 기업이 창업하면 5곳 정도만 살아남고 95곳은 실패라는 의미다. 그런데도 실리콘밸리는 스타트업 열기로 뜨겁기만 하다. 이들은 실패가 두렵지 않은 걸까.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육성 시스템의 장점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단연 눈길을 사로잡는 건 실패에 대한 이들의 대처 방식이다. 실패한 95개 기업을 실패자로 낙인찍지 않고 두 번째 기회를 제공한다. 실패는 성공을 위해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 과정으로 여기는 것이다. 실패를 통해 배운 것이 있을 것이라는 공감대가 아주 넓게 형성돼 있다.

스티브 잡스는 자신의 젊은 시절 창업 경험을 되짚으며 “모든 것을 잃는다 해도 그 과정에서 얻을 경험은 잃은 것들의 10배만큼 가치 있다”는 말을 남겼다. 실패는 어떻게 활용되느냐에 따라 귀한 성공의 자산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민간 우주선 업체 스페이스X 최고경영자(CEO) 엘론 머스크가 올해 초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올린 동영상 하나가 지금까지 강렬하게 뇌리에 남아 있다. 우주 발사 로켓 팔콘9을 바다에 있는 바지선에 착륙시키는 영상이었다. 우주 개발 비용의 거의 전부를 차지하는 로켓을 재사용할 수 있다면 획기적으로 비용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일이었다. 난도가 높아 실패가 뻔했기 때문이다.

머스크가 올린 영상 역시 성공이 아닌 실패를 담았다. 로켓은 무사히 착륙하나 싶더니 오른쪽으로 기울었고 바닥에 부딪히며 폭발했다. 머스크는 “이륙할 때 짙은 안개로 인해 수증기가 응축돼 얼음이 만들어진 게 원인인 것 같다”고 분석하는 글을 함께 올렸다. 그의 트위터 팔로어는 300만명이 넘는다. 수백 만명에게 자신의 실패를 상세하게 보고한 셈이다. 오히려 당당하기까지 하다.

머스크는 실패가 부끄럽지 않았을까. 머스크는 지난달 팔콘9을 해상 바지선에 무사히 착륙시키는 데 성공했다. 실패 원인을 분석해 석 달 만에 성공으로 만든 것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은 참 매력적이었다. 화성에 사람을 보내겠다고 하고, 전기차 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하고, 환경오염이 없는 태양광 에너지를 대중화하겠다는 머스크를 보며 우리나라엔 저런 기업인이 왜 없을까 싶었다.

그렇다고 머스크처럼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고, 개인 차원에서 노력을 더 해야 한다고 얘기하고 싶지는 않다. 실패를 대하는 태도는 개인의 차원에서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더 크고 영향을 많이 미치기 때문이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유효하려면 실패를 의미 있는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사회적 여건이 조성돼야 한다.

생각해보면 우리나라는 어려서부터 실패를 받아들이는 방법보다 실패하지 않는 법을 체득하게 하는 경향이 있다. 학창시절에는 한 번의 시험 성적이 모든 걸 좌우한다. 시험 성적을 잘 받기 위해선 선생님이 가르쳐주는 것만 잘 받아들여야 한다. 질문은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는 범위 내로 한정된다. 엉뚱한 상상력은 선생님과 주변 학생들을 피곤하게 할 뿐이다. 초·중·고 12년의 성과는 한 번의 수학능력시험으로 평가받는다. 수능에 실패하면 1년 이상 입시 경쟁을 반복해야 한다.

심지어 요즘 취업 시장에서는 재수가 용납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대학생들은 졸업을 늦춰서라도 재학 중에 취직을 해야 하는 실정이다. 그러니 대학이 4년이 아니고 5년이란 말도 나오는 것이다. 뭐든 단번에 성공해야 한다. 한 번의 실패로 실패자가 되는 것이다. 두 번째 기회가 없다보니 실패하지 않고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다.

“괜찮아, 다음에 잘하면 돼”라고 등을 두드려주기엔 한 번의 실패로 입게 되는 상처가 너무 치명적이다. 두 번째 기회가 없는데 어떻게 실패를 위로하고 격려하겠는가. 이런 환경에서 남들이 하지 않는 길을 가고, 꾸지 않는 꿈을 꾸라고 하는 건 너무 무리한 요구가 아닐까.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짓누르는 환경에서 어깨를 펴고 도전에 나서라고 할 수는 없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면 행동을 멈추게 되는 게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무언가를 해서 실패하느니 아무것도 안 하는 게 낫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기엔 우리가 처한 상황은 너무나 절박해 보인다.

김준엽 산업부 차장 snoopy@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